발칙한 QT
주님의 기쁨을 전한다 ( 행 20:1-12 ) 본문
퇴근 시간에 마주한
아름다움
십자가에 올려진
보름달이 어찌나 아름다운지요.
주님을 믿은 후
사소한 게
자꾸만 기쁨으로 옵니다.
이게 행복합니다.
내 영혼이 맑아짐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제 20 장 ( Chapter 20, Acts )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어제 혼란스러웠던 속이
소요가 그쳤다.
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제자는 아녀도
아침에 '마취과' 기도모임에 초청을 받아
'내가 찬양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기쁨을 나눴다.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오늘 부터
안양시청에서 '열린 아버지학교'-불신자 대상-이 열린다.
거기 간다.
바울님과
전혀 다르지만
난 나름대로 주님의 기쁨을 전한다.
성경과 우연히도 비슷히..
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엊그제
갑자기 전화가 오셔서
마취과 문과장님 - 목사님이시기도 하며 베트남 선교사님이시기도 하다-이 토요일
어떤 스타일이던 나누기를 권하신다.
머리가 지진이 나듯 복잡하지만
'예' 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
그리고 나서
어제 늦은 저녁까지
마음은 타듯이 답답하지만
아무 것도 전할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냥
'내가 기뻐하는 이유?'
'내가 살아갈 이유?'
' 찬양을 하는 이유?'
'......'
다양한 내용으로 떠돌다가
복잡한 머리 중에서도
내가 아직도 기쁨이 식지 않는 이유는
주님의 기쁨이 절절하기에 그렇고
그것은 표현하는 내 달란트가
찬양이고
그 찬양을 통해 지금 나름대로 쓰임을 받고 있기에
그냥 '찬양을 하는 이유'로 하기로 정해만 놓았다.
처량한 마음이 들어도
외로운 마음이 들어도
황량한 듯 해도
예수님은
늘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아내의 강권에 못이겨
심하게 피로한 몸을 일으켜
늦게 기도원에 갔다.
굴 속에서 기도하기 전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그런다.
'삼겹줄에 꽁꽁 매였으니 얼마나 기쁜가?'
주님의 기쁨을 맛보고
도망갈 수 없이
게을러 지면
여지없이 복잡한 심사에 빠지니
그것이 축복이 아닌가 하고...
기도하는 도중,
풍성한 은혜가 온다.
시나리오는 없지만
아침의 모임인도가 잘 될듯하기도 하다.
20분내에 하라는 주문이 문제긴 하지만...
오늘 아침
가슴은 잠잠하다.
아무 것도 내용 준비가 없지만
오랜-?- 경험 탓에 주님 인도하시면 된다는 개념을 가지고 앉았다.
40분 넘게 찬양과 간증이 이어졌다.
바울님이 내일떠나야 하는데
늦게 까지 시간 끈 이유를 눈치 챌 수 있다.
8. 우리의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였나 보다.
덥고 눅눅하기는 했겠다.
5명 이상 안모일 거라는 모임에
오늘은 10명이 훨씬 넘게 모였다.
풍성했다.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개 중에는
젊은 간호사들도 있고
나이든 의사들도 총 4분이나 더 있었다.
젊은 간호사에게
내 찬양이 어쩌면 지루했었을 수도 있다.
아마 그 분은 어쩌면 졸았을 수 도 있다.
보지는 않았지만...
바울님도 미리 보았다면
걸터 앉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 틀림이 없었을 것을....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이걸 보며
바울님의
그 영육간에 대단한 믿음을 보며 부러워 할 수 밖에 없다.
아직도
난
육신의 차원에서 머물러
신비라든가
영적인 능력에 대하여 잘모르며,
실은 아직도 마음 속 한가운데 '난 아냐..'라는 부정적 생각이 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기적은
꼭 내 상식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 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아이큐는 된다.
앞으로
기도와 믿음의 수준의 폭을
주님께로
사도바울처럼 넓혀야 할 것이다.
나의 찬양에
아픈 분들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이거다.
사도 바울님은
정열이 넘친다.
그 정열은 자신의 그 영적 신비적 능력에 대한 자랑이 하나도 아니다.
그냥
주님 안에서
떡을 떼는 화합이 기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는 사실이
그냥 너무나 기뻐서
날이 새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잠 한잠 자지 않고도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나님 이야기 일 것이다.
유두고 가정사에 대한 한담은 아니리라.
나도 이러고 싶다.
주님 앞에 이 기쁜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전하고 싶다.
내 전함 통해
내 주위에 간증거리가 많이 생겼으면 한다.
내 마음에는
유두고를 더러워 하지 않고
그 피에도 불구하고
그 땀에 절은 육신에도 불구하고
시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엎드리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사람을 기뻐하는 화합의 마음이 넘쳤으면 한다.
또한
하나님 이야기라면 밤을 새는
그 열정을 끝까지 유지 했으면 한다.
주님 앞에 갈 때까지..
거기에
그 마음이 순수함을 잃지 않으면 너무나도 좋겠다.
주님 일을 한다면서
기교만 남는 그런 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적용
1. 은사를 사모한다.
2. 오늘 아버지 학교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원한다.
영적인 부대낌을 이겨날수 있는 능력을 기도한다.
3. 성경 다섯장 읽겠다.
어제 죄송합니다.
못읽었습니다. 주여..
4. 순수한 열정을 유지하길 원한다.
5. 주님 말씀을 공부할 마음이 생기기 원한다.
기도
주님
오늘 아침
같이 은혜 나눌 수 있는 도구가 되길 허락하심 감사합니다.
앞으로
그 분 바울님 같은 은사도 주소서.
주님의 영광 나타낼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도구로만 쓰게 하소서.
마음이 그렇게 굳어지기 전에는 허락지 마소서.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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