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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으로(행20:28-3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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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으로(행20:28-38)

주하인 2007. 10. 29. 13:20

제 20 장 ( Chapter 20, Acts )

 

양화진..

가을이

주님의 뜰 안에서

깊숙하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따로 불러 만난 자리에서

위하여 '

 '삼가라''라 하신다.

 


 
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

      을 내가 아노니
 당부의 말씀 중

에베소 교회에 들이닥칠 흉악한 이리에 대하여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그 중

장로 들 자신에게서도 이리가 생겨날 수 있음도 경고하신다.

 


 


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가을과

감과

하늘이

절묘히 익어갑니다.

주님의 작품이시지요.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사도 바울의 눈물.

왜 눈물로 훈계를 했을까?

인간관계의 애정 탓일까?

훈계하였음은

더 높은 차원의 영적인 사랑이 그 이유다.

 

주님 예수님의 그 절절한 기쁨을

그들에게 옳게 전하기 위하여

촉박한 시간을 아까워 하며 

생명을 전하는 절박한 사랑의 마음.

 

그게 눈물로 훈계,

그것도

삼년이나 변치 않고

쉬지 않고 전하는 이유다.

 

 

 

 

 

32.  지금 내가 너희를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말씀은 은혜롭습니다.

딱딱한 듯함은

은혜를 모를 때 이야기지요.

양화진의 십자가는

타는 가을로

너무도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 딱딱한 십자가가

너무도 은혜롭고 감사하게 보입니다.

 

 

 

 그분의 하나님의 비밀을 아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아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이리 고백한다.

 

주'와

'그 은혜의 말씀' 께 부탁한다.

 

주님께 부탁함은 이해가 가나

말씀께 부탁한다는 말은 좀 그렇다.

거기에 은혜의 말씀이라 한다.

 말씀은 주님이다.

주님은 말씀이다.

헬라의 로고스..라는 표현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그 분

그 전능하신 분은

모든 가능태- 양자의학적 표현-에 말씀으로 의지를 불어 넣음으로

우주 모든 것 부터

미세한 미생물까지 다 창조하시었다.

그 말씀은

성경에 '말씀'으로 기록되어져 형상화 되어 있다.

그 말씀은

성령의 은혜로

성령의 감동에 영혼이 개벽하고 전율하는 자들이

그 격동에 못이겨 적어 놓은

살아 있는 글이다.

 

 말씀으로 든든히 서야 한다.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고

매일 같이 그 말씀에 대한 적용을 노력함은

살아 있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영혼에 받아들이는 행위가 된다.

그것은

수천년전에 살아 계셔서 직접 일생을 간섭하시던 하나님의 말씀이나

지금 이 자리의 성경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말씀이나

하등차이가 없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그 분은 말씀으로 오늘에 우리에게 임하신다.

그 말씀으로 든든히 서 있어야 한다.

말씀을 묵상하고 사모함은

은혜를 보증함이요..

은혜는 우리가 든든히 서게하는 'Drive' 가 된다.

 

 말씀을 묵상하고

준행하려는 노력은

아는 새 모르는 새

우리의 영혼이 정결화 되고

우리가 거룩히 되어 가게 한다.

 그것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한다.

 

 아무 것도 염려 하지 말고

주님께 의탁하면

모든 것을 다 이루시는

그 말씀이

일상에서 넉넉히 일어나

반드시 영적인 영역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이 땅의 부함도 같이 있게 되면 그 얼마나 좋은가?
 

 

 
 
 
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이 복이 있다. "

비단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주는 삶을 사는 자들이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보고도 있다.

 

 사도 바울의 그 열정의 이유가 여기에 나온다.

주는 삶.

위한 삶.

그래서

남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삶.

 3년 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물로서 가리칠 수 잇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주는 삶에 대한 힘은

주님 예수님을 만나야 만 한다.

자신을 위한 봉사의 한계는 분명하다.

한계가 있다.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함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없으면

주님 예수님에 대한 나날의 보고와 간구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함께 기도한다.

모여서 기도한다.

혼자서는 안된다.

공동체에 포함이 되어야 한다.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37.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이러한 크게 울음.

나이든 장로들.

그들이

바울과의 울음이 왜 나오는 가?

 

사도 바울의

이타적 노력.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함께 하기에

그들은 이렇게 처절히 울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적 만남에 의한

단순한 관계적 만남이었으면

이러한 헤어짐은 어려웠으리라.

 

 

 

 

 바울 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에베소에 들르질 않고

장로들을 부른다.

그들 장로 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 간다.

 그러면서

참으로

깊은 영적인 사랑과 그들에 대한 염려로 권면을 하고 가려한다.

눈물 바다가 이루어 진다.

 그 눈물이 보통 남녀가 헤어지는

눈물의 양 보다 훨씬 많음에 이채롭다.

 거기에 참여한 자들이 장로와 바울 일행인 '나이든 남자'들로 이루어 진게 더우기 그렇다.

그렇다면

감정의 파문에 의한 일시적 눈물

정분에 의한 찢어짐의 고통이 저리도 깊게 나올 확률은 덜하다.

더우기 ,

바울은 가르치는 사람이고 , 객관적으로 잔소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며

장로는 현대의 입장에서 본바, 행정을 담당하는 자들로서

자칫 부딪치지 않아도

그리서로 눈물을 흘릴 위치는 아닌 듯 싶다.

 

 여기는 치열한 전투를 넘어서온

'동지애'가 훨씬 가까운 감정적 발로일 수도 있다.

 

그 동지애라는 것은

불신의 시절로 부터 이어져 오는 '사단'의 흔적과

새롭고 진리이며 은혜인 '예수님'을

영혼에 받아 들이게 하는 지휘관으로서의 바울과

영혼에 받아들이는 '영적 전쟁터내 거민'의 에베소 교인들 사이에

삼년 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똘똘 뭉치며

영혼 내 사단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없애가며 이루어진

처절한 동지애 때문일 것이다.

 

 사도 바울 께서는

이제 어느 정도 잡혔지만

아직도 전쟁의 포화가 온전히 꺼지지 않은 곳을

가련하고 안타까운 그들만 두고 가기에

안타까움으로

 

장로들은

그 치열한 전투의 선봉에서 선 지휘관 바울의

더 큰 적진으로 불려감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

감사함,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하기 보다는

자신들을 위하여

불러서 당부하고 권면하는

그 사도 바울 지휘관의 빈자리가 너무 큼에 대한

눈물일 듯 싶다.

 

 이천여년 전

에베소 근처 항구에서 우는 남자들의 소리가

지금 내

진료실 의자 위

주하인 육체속

머리 안

영혼 깊숙이

울려 퍼지는 듯 하다.

 

 

 

 

적용

 

1. 삼가라

 남을 위하여 나쁜 말을 삼가라.

 나를 위하여 더러운 일은 삼가자.

 

2. 말씀은 살아 있다.

 말씀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게 성경이다.

 성경을 다섯 장 읽겠다.

 성경을 겸허히 다루겠다.

 

3. 은혜의 말씀을 놓치지 않겠다.

 오늘 아침은 조금 일찍 일어나 묵상했다.

 훨씬 은혜롭다.

 

4. 말씀 가운데 익어가면

 주님이 날 든든히 세움을 믿는다.

 일상의 것도 다 책임 지실 줄 믿는다.

 

5. 눈물로 함께 울어줄 자들을 사모한다.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서 환심을 사려는 마음은 버린다.

 영적으로 하나로 묶일 공동체가 필요하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 님의 거룩한 행보를 보고 있습니다.

매사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의식하는 그 분.

주님을 전제로 하여

이웃을 위해 사는 삶의 전모.

그리고 ,

그 귀한 만남에 대한 관점을

누구도 감동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말씀 가운데 철저히 서고

그의 에베소 교회 마져 이룸을

그리고,

그를 찾아오는 장로 일행의 울음을

자신의 성취로 보는 마음이 전혀 들어 있지 않는

그러한

주님 앞에 선한 사도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저도 닮게 하소서.

찬양하는 자로 서

박수와 갈채와 칭찬을

주님 대신 갈구하게 하지 않도록 하소서.

못들은 듯

귀를 털어버릴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도우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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