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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주님을 위해 행해야 할 일(슥 8:14-23)

주하인 2007. 4. 19. 09:49

(슥 8:14-23)

 
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무얼 두려워 하는가?

은혜 베풀기 전 주님에게 허락받은 환란을 두려워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 큰 은혜를 받아본 기억이 없어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겅보고 놀란 것처럼 은혜의 크기가 너무 커서 오히려 놀란다고 하시는 말씀이신가?

 얼마나 크기에 두려워 할 만큼 크신 은혜라는 말씀인가?

 

어찌되었던 연달아 주님은 축복의 말씀을 허락하신다.

믿는다.

믿긴다.

내 부정적 인지체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분은 날 귀히 보신다고 하신다.

그러니 놀라운 은혜를 주신다고 이리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기분이 좋다.

 

 
  
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

     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9.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다.

 내가 행해야만 할 일이 있다고 하신다.

 

 이웃과 진리를 말하라 하신다.

어떻게 아시구.

요새 스스로 자꾸 열정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으로 당황하고 있다.

어제는 기도원에 낮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니 그나마 마음이 좀 낫다.

좀더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전도하기를 바라시는 듯하다.

 

 진실하라고 하신다.

내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 거짓된 모습을 많이 발견한다.

필요한 듯한 거짓말 조차도 최소한 오늘 하루는 절제해야 겠다.

 

화평하라고 하신다.

아직 힘든 것.

주님은 날 다 아신다.

하나하나...

특별히 화평한 재판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은 사람들을 아직도 정죄하고 자르기 좋아하는 ,

2차 지각체계를 잘 쓰는 날 경고하시는 듯하여서 가슴이 뜨끔하다.

용서할 자를 용서하겠다.

 결국 이것은 남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요

남들을 해하고 싶을 충동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결국 분란은 거짓을 가중시킬 책임을 떠 안기는 경우니

내 속에서 화평을 이루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결국은 진리와 화평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것의 어려움을 아시기에 사랑할지니라 라고 권고형으로 말씀하신다.

 

 

 

 

 

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나에게는 참으로 희망적인 말씀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들이 찾아 올 것이라고 한다.

내가 찾아가 회복의 노력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이곳 저곳 사람들이 모여 들 것이라고 한다.

이게 은혜다.

자기 속에서 진리가 살아나고

진실의 힘이 커져서

거짓의 유혹이 없어지며

이웃과 화평을 이루는 것.

목적과 이익을 따라 이루어지는 세상의 잠정적인 휴전이 아닌

주님의 평강으로 이루어지는 온전한 화평.

진리와 화평을 통한 온전한 내 외적 회복.

사람들이 찾아들고

그들의 입에서 화평을 노래하고

누가 봐도 이루어지는 축복의 모습.

바로 이것이 은혜의 실체이다.

 

역시 전제가 있다.

 

 여호와의 이름이 들어나는 것이다.

내 착함과 화합의 모습이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 졌음을 누구도 알 수 있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얻은 평강의 모습이

하나님의 이유임을 누구라도 알수 있게 되는 것.

나를 찾아오되 주님을 찾아오는 것.

강요하고 나타내지 않아도 주님이 곁에 계심을 누구도 알수 있게 되는 것.

찾아오는 자들이

나를 보러 오지 않았음을 알아도

오히려 더 기쁘고 은혜로운 것.

주님이라는 이름 아래 그리도 갈급해하는 그 분의 자녀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것.

나는 단지 내 육신과 영혼을 그 분에게 빌려 드림으로

세상에 원하시는 하나님의 바라심이

이 땅에 또 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도구가 되는 것.

그것을 기쁨으로 인정하고 내어드리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 보이시는 축복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약간의 노력과 인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주님은 우리가 찾아서 헤매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그 분의 이름을 그 분이 들어내신다.

나를 통하여 ..

기다리자.

 

 

 

오늘은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오늘은 화합하겠다.

용서하겠다.

 

오늘은 걱정을 내려 놓겠다.

주님이 알아서 다 축복의 때가 되시면 이루실 것이다.

 

오늘은 좀 흥분하며 기대하겠다.

주님의 회복과 축복의 약속을 믿으며..

 

 

기도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기쁩니다.

특별히 어제 낮에 잠깐 들러본 기도원에서

주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조금은 크게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은혜로운 말씀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말씀을 믿고 기대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인내하겠습니다.

정직하겠습니다.

용서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니 그리하겠나이다.

주여 그래도 도우소서.

순간 잊어버리고 마는

이 어리석은 영혼의 나약함을 불쌍히 여겨서 도우소서.

주님 약속하신 그날까지

내 속이 온전히 주님의 말씀으로 채워질 그날까지 지켜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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