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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잡아 먹힐 양 떼( 슥11:-17)

주하인 2007. 4. 23. 10:52

제 11 장 ( Chapter 11, Zechariah )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떼를 먹이라 
5.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

   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7. 내가 이 잡힐 양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떼를 먹일새 
 
 집에 있다보면 자꾸만 외로워 진다.

내가 식구들에게 예민하게 대하면서

그들도 날 가까이 하기 버거워 하는 존재로 보는 듯.

그리고 난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외톨이로 갈 듯한 두려움이 큰 것 같다.

아내가

아들이 사랑을 주려하지만 난 못받아 들인다.

난 실은 사랑을 주어야 할 자이지만 어찌 자꾸만 받기만 하려 하는가?

 교회에 갔다 오면서

정전도사님이 먼저 혼자 앞에 쭉 간다.

말한마디도 않는다.

그 분도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사람임을 알아서 덜 그렇긴 하지만

속이 상하다.

난 왜 이렇게 온데 간데마다 사람들에게 싫어함을 받아야 하는가?

이게 내 속의 생각이다.

죽을 것만 같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매섭게 보인다.

덜하기는 분명히 덜하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왕따와 버림받음과 그들의 그러한 눈초리가 심하게 두렵고 무섭다.

사람들 사이에 정상적으로 끼어들지 못할 내 운명을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오기도 한다.

 

이게 오늘 아침 묵상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

'잡아 먹힐 양'

 

 산자도 나 몰라라.

 판자도..

 목자들도.

 

 세상에 난 외톨이같다.

버려진 자.

 

그럼에도 주님은 날 '양'같다고 표현하신다.

이것은 그동안의 내가 늑대같고 이리 같이 행동하고 몸부림치고 아니라고 소리소리 냈음을 가만히 지적하시는 듯 싶다.

'넌 버려진 양이다. '

양처럼 순하게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러시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양을 먹일 것을 스가랴 선지자에게 명령하신다.

그 분은 예수님을 통하여 날 먹이신다.

먹이실 것이다.

앞으로도..

아직은 내 의지랑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내 속에서는 난 버려진 양 같은

잡아 먹힐 두려운 상황에 있음을 느끼게 허락할 것일 줄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분은 날 먹이실 것이시다.

내가 늑대처럼 광분하는 몸부림으로 앙탈을 부리지 않고

그냥 양처럼 어쩌지 못할 만큼 온몸에서 힘이 빠질 때,

그 때는 주님이 날 먹이실 것이시다.

 

 Favor , 은총

은총은 조건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은총의 막대기로 날 구하신다.

날 먹이신단다.

막대기로 날 찌르시는 것도 은총이시다.

나한테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은총으로 받고

그냥 순종으로 힘을 빼면 주님을 날 먹이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한 막대기 '연합Union'의 막대기로 쓰신다.

이제 진료 협력센터의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라고 내 모신다.

힘을 빼려 무진 애를 쓰지만

긴장이 된다.

사람들과의 연합, 관계만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오고

얼굴은 굳고 혀가 말리는 것같다.

그러나, 예전에는 무조건 적으로 두렵기만 했지만

이제는 좀 여유는 있다.

강도가 덜하고

상황이 조금씩 들어나는 것같다.

이렇다.

오늘 있을 협력센터 모임에서 아마도 머리가 멍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터질 듯이 뛰고 식은 땀이 마구 나고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며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볼 수가 있다.

말을 더듬고 횡설 수설하다가 나올 수있다.

그러면서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난 아무것도 혼자 할수가 없다는 자괴감이 더 두려울 것이며 멋지게 할 수 없는 이 사람의 장래가 암담할 것으로 한동안 큰 depression에 빠지는 가능성이 더 두려울 것만 같다.

이게 막대기인 듯싶다 .

주님은 어쨋든 죽을 양 같기를 바라신다.

죽을 자가

왕따 당할 자가 그냥 순응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시다.

그러면서 찔리는 막대기에 그냥 찔리기를 바래시는 것이시다.

그러다 보면

내 두려움에 상관없이

세상의 날 방치함과는 상관없이

은총과

연합이

내 주위에서 이루어 질 거라는 이야기 인 듯 싶다.

 

특별히

양떼들 이라신다.

 

이것은

나와 비슷한 내 자식들을 이야기 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내가 느끼는 왕따의 감정을 인식하든 못하든 느낄 수가 있다 .

그들을 위해 주님의 은총을 주님의 연합을 빌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 그리 되는 도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뿐이 아니다.

세상의 가련한 왕따의 인생들에

은총의 막대기와

연합의 막대기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주여

도우소서.

제가 어찌 해야 할 지를 말하소서.

지금 곧 연합의 막대기로 찔릴 위험이 있습니다.

너무 아프지 않게 하소서.

은총의 막대기를 은총의 기쁨으로 인지하게 하소서.

잘못 왜곡되어 있는 나의 모든 인지를 주여 바꾸소서.

주여 말씀으로 인도하소서.

특별히 오늘 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늘어나게 되어있습니다.

drug을 의지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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