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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역시(삼하17:1-17:14)

주하인 2005. 11. 3. 11:25

 

 

2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5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우리가 저의 말도 듣자 하니라

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아히도벨이 다윗을 포함한 남의 파멸에 대하여 확신하며 기뻐하면서 자신의 음모를 내놓았다.

 

 '분명히 그들은 피곤하고 힘이 빠졌을 겁니다.
 우리가 엄밀히 습격하며 얼마나 놀래겠습니까?
 무서워 놀래 자빠지는 저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
 
하면서 가장 사악한 미소를 씨익 지었을 것이다.
눈에서는 순간 마귀의 음습함이 번쩍하고 스쳐 지나갔을 것이고...


 만일 내가 피난하는 상황이고 나를 쫓는 마귀의 음모가 저랬다면...

순간... 비록 다윗은 몰랐겠지만.. 나중에 후새를 통하여 이 소리를 듣고 얼마나 등골이 오싹하였을 것인가?

 

 그러나..
 이 계책에 그리 반색을 하면서도 압살롬은 왜 후새의 얘기를 더 듣자고 하였던가?
그리고 왜 후새의 이야기가 더 좋게 들렸든가?
그게 비단 압살롬 뿐 아니라 모든 신하들의 귀에...

 

개인적으로 객관적으로 아히도벨이 훨씬 덜 에너지 소모적이고 훨씬 더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고, 그 무서움에 떠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도 있었을 거 라고 생각된다.

 천하에 다윗이 싸움터에서 당당하게 죽어가는 모습보다 자다가 놀라서 꽁지에 불 붙은 쥐처럼 이리저리 당황하며 놀래며 죽어가는 모습이 훨씬 극적이고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너무 사악한 기쁨을 즐기고 있는가?ㅎㅎ

 

 영화의 스토리를 보면 캐릭터가 있다.
그 캐릭터에 맞게 행동하려면 아히도벨의 귀계를 선택해야 당연한 귀결인데..
이유없이 맥빠지는 선택을 하게 된다. 

 압살롬이...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은 희한하시게도 멋지게 소문나게 ( 한동안 다윗의 전성시기에는 가끔 저렇게도 하셨다.   뽕나무 위에서 천사군단이 같이 요~이~땅...하면서 날아가 블레셋 군대 물리치시기도... ㅎㅎ-)하시면 안되는가?

 마치 아무일도  아닌듯이  슬그머니 임하신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손  넣으시고 슬쩍 태엽감는 장치 손으로 붙잡아 돌리듯이 슬쩍 돌리신다 .

 그래서 후새의 말을 듣도록 하신다.

 

이렇게 생각이 된다.

 

우선 하나님은 자식의 성장 상태와 상황에 맞는 도움을 주신다.
 최근의 다윗은 무기력하고 타성에 젖어 있었다.
젊어서의 강력하고 멋진 신앙 대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었다.

 그래서 적당한 고생을 허락하셨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장란이 도를 지나쳐 당신의 귀한 아이에게 위험할 지경이 되자 그 악동들이 모여서서 최종 작전회의 하는 무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꼬마 압살롬 악동 뒤로 슬쩍 다가 서신 것이다.
가셔서 툭하니 밀어서 관심을 끌었다.      
 압살롬 악동 대장이 뒤돌아 보며 관심을 갖자 귀에다 대고 '후새... 저 아이의 말을 한번 들어 봐~바~바'하고 부추킨다.
그러면서 후새에게 눈을 한번 찡긋하고  그 입에 힘을 주신 것이다.
 그러자 어리석은 악동무리들.. 일시에 방향이 선회되어 버렸다.

 주님 아버지, 대단한 지략의 고수 어르신께서 상황을 대 반전으로 몰고 가시는 것이시다.

 

 이처럼 ..

무섭고 피곤하고 지쳐서 마치 아무도 안계신 것 같고.. 심지어 마귀들의 장난으로 인하여 내가 주님의 눈에서 벗어난 큰 잘못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절해 고도 같은 상황에서도...


주님은 우리의 눈에는 금방 도와주시지 않는 거 같아도 가장 최선의 시간까지 지켜보고 계시다가 아주 적절하고 절묘한 순간....
 오직 하나님 당신이 어르신의 판단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될 때 이 인간세상 , 내 주위의 어려운 일에 슬그머니 끼어드시는 것이시다.

 

 그리고는 툭하니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아주 쉽게 위급함에서 건져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시다.

 

 

 

 

기도)

 

 주님.

 

저의 부족함인지
혹은
주님의 철저한 주관적 의지이신지 몰라도
우리의 주위에 끝없는 어려움과 고통이 휘몰아 쳐가고 있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하면 아히도벨의 사악한 미소와 같이
두렵고 무서운 일이 곳 벌어질지도 모를 위급한 상황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주님...
비록 .
부족한 이 자녀의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지 않지만

주님의 따사로운 도우심의 손길이
훈풍처럼
아지랑이 처럼
가을하늘 뭉게 구름처럼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의 한들거림처럼
그렇게 제 주위로 다가오셔서...

 

제가 예상치 못하는 방법으로
저의 지혜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이 자식을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아니 지금 역사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성경에 수없이 쓰여진
결코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제 곧 ..
제 곁에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상에서 가장 기쁜일은 참딘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 R.A. 토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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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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