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은 무조건 선하시다 (왕하 20:12-21 ) 본문
제 20 장 ( Chapter 20, 2 Kings )
그렇지요
비 온뒤의 하늘은 더 맑고
개여가는 하늘에야 무지개가 걸립니다
가리는 장애물이 있어야
아름 다움은 더 청초해보이고
귀함은 더욱 더 귀해 보입니다
주님
주님의 무조건 선하심을
깊이 체험 자들이라야
고난이 있을 때도
전심으로 선하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님의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하는 그 목소리가
저 하늘을 메아리쳐
제 영혼에 울리는 듯 만 합니다
13.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라
왜 그랬을까?
교만 만일까?
히스기야가 그렇게 교만하던 자였을까?
아픈 탓은 아니었을까?
아픈 마음에 허전한 그의 마음을 위로하는 바벨론의 굽신 거리는 태도가
그의 마음을 어쩌면 파고 들어서
숨어 있던 교만을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깨닫는 바.
교만은 늘 교만하던 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온유를 설명하던 목사님의 말씀 중
' 온유는 선천적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변해가는 성품'이라는 말씀에 끄덕인 것 처럼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늘 깨어 있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원죄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아무리 겸손한 자라도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죄성이다.
인식하지도 못하고 누구도 모르는 사이..
늘... 깨어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나..
교만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는 자.
그 사이의 겸손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말씀 가운데 깨어 기도로 무장해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늘 겸손해야 함이
내 특별한 오늘의 태도이다.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자손이 고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에도
이리 말한다.
" ' 내 사는 동안에는 태평과 진실 하다' 하시니... '
주님은 선하십니다. "
어찌 받아 들일까?
혹시 '이기주의'는 아닐까?
자손은 어찌 되더라도 자신은 괜찮으니......라니..?
그런데 그 히시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다 한 사람이다.
더구나,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어제는 죽을 지경에서 15년간 살려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했다.
'하나님을 그리 열심히 섬겼는데도
살아오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
그런데도 그는 , 앞으로는... 이기는 하지만
태평과 진실이 있을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등의 의심이 없이
그나마 허락받은 사실을 기쁘게 받아 들이는 자다.
그는 '자신이 이처럼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 그나마 허락하신 그 태평과 진실'을 의심하지 않으며
그 오게될 그 분량 만큼의 축복이라도
하나님의 '선'하심 가운데 주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 감사한다.
자족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진정으로 인정하는 자다.
그래서 그의 삶은 외적 조건에 상관없는 감사의 삶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잘 잘못을 떠나 그래도 자신이 그런 감사함을 누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다.
어제 주일.
오후 예배까지 끝마치고 나니 3시 .
5시 반 부터 하기오스 연습이 있다 하여 두시간 반의 빈시간을 이용하여
수영을 하고 나왔다.
닦는 순간 자꾸 귀가 멍하더니
드디어는 교회를 향하는 차 안에서 꽉 막힌다.
근처 슈퍼에 들어가 귀 파개를 가져다가 조심스레이 뚫어 봤지만
더 심해진다.
완전히 한쪽은 막혔다.
야... 갑자기 장애를 가지게 된 기분.
순간 답답하고 암울해지려 하고 기분이 가라 앉으려 한다.
오래된 습관.
그러나.. 말씀을 아는 나.
'하나님의 뜻'.. 먼저 생각이 난다.
회개할 일인가?
다른 뜻인가?
일단 잘 모르겠다.
찬양 연습하러 무대에 올라서니 귀 한쪽 안들리니 영 찬양을 할 수가 없다.
일단, 귀가 막히니 정신도 반이 나간 듯하다.
은혜가 떨어진다.
노래해도 - 노래다. ㅜ.ㅜ; -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불현 듯 깨달았다.
아..........
'그동안 은혜라 생각하고 두손 높이 들고 하던
그 많은 찬양의 순간 들이 실은
내 전신을 통하여 들어오던 내 목소리의 울림에
내 감성이 자극하던 것이 많겠구나....'
깨닫는 순간,
지금 귀 먹어 안들리는 이 때가
하나님께 더욱 집중하여 하나님 만을 위하여 드리는 찬양을 드리는
그런 기회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 졌다.
아.
그러니 마음이 가라앉고 내 '좌절'이랑 상관없는
찬양의 소리가 나왔다.
목소리가 커지고 자연스러워 졌다.
사람이 어찌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온전히 영적과 지적으로만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만
이런 .. 주님이 허락하신 상황이 되어서야
진짜의 찬양을 드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연습이 끝나고 아내와 저녁 먹으러 간 곳에서
아내와 대화를 하는 데 아내가 아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잘한다.
가만히 보니 내가 잘 안들리니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경청'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
또 깨달았다.
겸손으로 낮아지게 하시는 훈련.
거기에는
오전 및 오후 찬양 예배에서 찬양하시는 여 집사님들의
불협화음을 견디지 못하고 '피식 거리며 ' 많이 웃었던
내 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늘 예민한 내 감성..
그 중에서도 '귀' 부분을 저리 막으신 것이시다.
'회개'가 나왔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겸손을 깨닫게 하시니
오히려 약함이 강함이라는
어려움이 하나님의 사랑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아내의 수술 했던 그 시절 이후에
다시한번 깊이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아내가 기뻐한다.
귀가 약간 뚫리니...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었다.
아마.......
히스기야님의 저 고백.
'주님은 선하시다'
히스기야님의 일생이 그리 편치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벽을 향하여 돌아서서
두손 높이들고 기도했다.
회개했다.
그리고는 다시 주님의 열렬한 은혜 속에 거하게 되었다.
그러한 그의 모든 '감사'는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다.
그의 존재의 이유가 하나님이심을 그는 절절히 고백한다.
그의 그러한 감사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선하시다'는
그의 고백에서 알 수있다.
하나님을 선하게 고백함은
그 분의 선하심을 매사에 인정하는 삶이야 말로
진정 '긍정적'인 삶의 태도 이고
그 삶의 태도는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의 논리에서도 합당하다.
그러나, 그 하찮은 긍정의 논리를 넘어서는 그 무엇.... !!!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우주가 열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하나님의 그 강력한 에너지' ,
소위 말하는 은혜의 그 강력한 에너지를
우리 영혼이 깨닫고 고백하든 못하든
그 사실을 인지 하고 그 인지함을
우리 영혼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주님을 '늘 ' 선하시다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고백은 '주님은 늘 선하심'을 먼저 우리 가슴 속에 인식함이 우선이다.
나.
귀가 막혀서 잠자다가 수도 없이 깨어났다.
참... 장애를 가진 다는 것은
그 장애 뿐 아니라 다른 기능까지 제한 받는 어려움이 같이 옴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이 오래지속되면 그것은 '두려움'이고 '우울'에 빠질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 어려움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뜻'이 선하심을 깨닫는 순간,
고난은 감사로 변하기 시작했다.
할렐루야다...
귀한 히스기야님의 고백이
참으로 낯설지가 않다.
요새와서 특별히 그 분의 감성이
꼭 .. 공감이 간다.
주님은 .........
무조건.........
선하시다.
적용
1. 주님은 선하시다... 잊지 말자.
상황에 아무 상관없으시게도 그 분은 선하시다.
일단 무조건 믿자.
2. 그분이 선하심은 그 분은 모든 내 상황을 다 아심이다.
그리하기에 내 상황은 모두 선으로 끝날 것이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4. 중국어 공부한다.
주님의 영광 위해 언젠가 쓰기 위해 그냥 준비한다.
5. 아버지 학교 간다.
내 부족한 부분, .. 중보를 훈련하는 기회다.
6. 히스기야의 감사를 배우자
묵상하자.
7. 매사 주님의 뜻을 생각하자.
귀막히던 시간을 잊지 말자.
기도
귀하시고 놀라우신 주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하는 저희의 인생의 이유가
자꾸만 제 욕심을 위하여 살아가는 그런 매일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는 것은 불안이고 불만 뿐이었습니다.
주님.
다시 한번 주님을 쳐다봅니다.
그러니 이해가 갑니다.
모든 어려움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선함 속에 존재하고 있엇습니다.
잊지 않게 하소서.
특별히 귀가 막혀 들리지 않던 경험을 통해서
조금은 더 깨달았습니다.
불편함..
그때에도 주님의 선은 반드시 존재하고
우리가 겪는 매사의 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주여.
쉽지 않지만 매일 말씀 가운데 거하며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그 은혜에 감사하고
주님의 기뻐하시는 은혜로
그리하게 하소서.
매사, 모든 일에
주님이 선하게 인도하심을 믿고 기도합니다.
주여.
저와 제 가정 저희 나라 모두 인도하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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