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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으로 앓다( 마 19:23-30 )

주하인 2010. 2. 25. 11:07

제 19 장 ( Chapter 19, Matthew )

 

주님

 

그래도

주님은

내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그래도

주님 십자가는

내 영혼의 지주가

맞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온 영혼 다바쳐

주님 만을 사랑합니다

 

 

 
 
 

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주님 따라다니며

수많은 이야기와 기적을 듣고 본 사람들이

이처럼 '심히 놀란'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천국이 부자가 쉽게 갈 곳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난 안다.

부자는 못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뜻을..

부자는 육신의 붙드는 것이 많으니

그 자신,

인간의 노력으로 주님 나라,

영적인 그 순수 절대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영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은 같이 설수 없다.

너무 부하여 주님을 잊어 버릴까 두렵다는

시편의 말씀도 있다.

 그런 '육신' , 세상의 세력

즉, 내 자아의 융성함이

주님의 나라 , 천국, 성령

그 평강의 온전함을 방해한 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 수 있지만

이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자들이 이처럼 놀라는 모습이

 주님을 열심히 사모하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어쩌면  아직도 세상의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성장하지 못한

나의 이 어리숙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여

씁슬하기 그지없다.  

 

 

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주님은 말씀하신다.

'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 '

당연하다.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도 주님은 하신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그 분은 우주도 말씀으로 만드신 분이시다.

지금도 별을 만드시고

지금도 별을 소멸케도 하시고

지금도 그들 사이의 인력과 공전과 자전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그 분은 그 광대한 일을 하시면서도

이 땅, 이 지구 , 이 먼지 보다 적은 곳에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으로 오실 수도 있는

기묘막측하신 분이시다.

 

 그런 그 분이 무엇을 못하실까?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육신의 틀에 갇혀 있는 우리 아니던가?

그 육신이 생각을 막고

육신이 부요로 강화되면

영혼은 그 틀안에 점점 더 갇혀간다.

 '단절.'

하지만 주님은 단절을 여시는 분이시다.

저 광대하시고 무궁무진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 무엇을 못하실까?

 물질이나 세상의 부요는

주님이 그러신 분이심을 잊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가난한 게 반드시는 아니지만

가난한 자는 진실을 볼 기회가 많아진다.

물론, 너무 가난하여 주님을 생각할 기회를 얻지 않게 해달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지나침은 또다른 장애이긴 하다.

 

 주님이 다하신다는 말씀은

주님의 그 다하심을 얻지 못하는 이유의 나머지가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부하지도

지나치게 가난하지도 않게 하소서.

주여.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세상이 새롭게 된다.

 영광의 보좌에 그제야 앉으신다. '

 

새롭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전의 '육체적, 물질적 세계관'에서

새로운 ' 영적'인 세계관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성령님을 완전히 받아 들이는 그 세계관으로

내 영혼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쉬운가?

수십년간 담배에 찌들고 술에 절고 여색에 눌리고

성공지상주의로 살아왔고

자식과 아내와 가족만이 모두인것 처럼 달려왔던

그 육체의 삶이 어찌 한 순간에 변화가 될 것인가?

하지만, 가능하다.

하나님이시면 된다.

하나님의 평강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고

그 분의 사랑을 온전히 알게 되면

그러한 동기가 부여되고

절절한 사명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 사명을 넘어

영혼이 온전히 '주님의 세계관'으로 바뀔 때

그때 내 인생의 목적은

예수님을 보좌에 앉혀 드리는

매일매일의 영광의 삶을 사는게

유일한 것으로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일매일은 힘이 있게 되고

늘 감동에 젖어 살게 되고

세상의 어떠한 것도 그를 흔들수가 없게 되고

어떤 유혹도 그를 잡아 다닐 수 없게 된다.

늘 감동으로 살고

늘 기쁨으로 살게 되고

늘 고요한 여유로 살게 되어

세상을 관조하게 된다.

 

 

 아침 진료하는 데

한분 환우 분이 들어오신다.

마르신 분이시다.

빈혈이 심해서 헤모글로빈이 8.2g%로 떨어져 있다.

영양제와 철분주사를 원하셔서 처방을 드리니

당신이 그러신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상사병에 걸려서'라 신다.

꺄우뚱하며 한마디 가시 있는 말을 던졌다.

'50 다되셨는데 그러시면 되나요..'ㅎㅎ

그 분은 슬쩍 웃으시며 나가시려다가

내 진료실에 잔뜩 걸려 있는 액자를 그제야 보셨는지

멈칫..하시며 들여다 보신다.

방문을 붙드시고 잠시 보시기에

다시 들어오시라 하니 얼른 들어오신다.

그 분은 사진에 '십자가'가 눈에 뜨인다 하신다.

그래서 열심히 설명을 해드렸다.

가끔 이런 분들..

내 묵상하며 벌어진 이 기적들을 설명하면

기독교에 대하여 마음 문이 확 열리시기도 한다.

그러면서 '작가'로서 열정적으로 하나하나 설명했다.

감동의 연속이시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영접한 첫사랑 체험 후 12년 만에

이제 다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너무 강렬하게 밀려와

목이 메어 식사를 못하신지 오래시란다.

아..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예수님 때문에 건강이 해친다는 뜻이 아니신 것 같다.

아마도 그 감사함에 '금식'을 하시고

그 감사함을 이렇듯 극적으로 표현하여

전도하시고픈 환우 분의 열정이셨던 모양이구나.

 액자에 적혀 있는 '기도문'을 하나하나 설명하니

모든 것을 다 적어 가고 싶다고 하신다.

 감사하다.

이 공유된 감동은 누구가 알수 있던가?

예술하는 자들은 비슷한 느낌으로 자신들의

감정, 영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공감하고 기뻐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 단련되고 연습하고

자신에 깊숙이 몰두한 훈련을 한 자들 뿐이다.

거기에 재능 , 즉 탤런트를 겸비한 소수들이다.

 하지만,

나같은 예술에 대하여 배우지도 않고

시간도 정렬도 배출하지도 않았던 50줄의 남자가 찍어놓은 시화를 

50 가까이 된 평범하신 아주머니( 이분 뿐 아니라 아주 많은 분들...)가

그보다 더 깊은 감동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흔적을

아주 많은 분들이

육체적으로 증거를 발견할 수는 없지만

영적으로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 분은 살아계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주님은 살아계신다.

그 분은 모든 능력의 근원이시다.

그 분은 이 땅에 고정된 눈을 들어

천국을 향하길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

자꾸만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털어내는 결심을 해야 한다.

의지적으로 영적인 노력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그분의 도우심을 체험하며

그 분과 대화하는 듯 갈구하여

그 분이 내 영혼을 정화시키는 과정을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늘.

조금은 손해볼 각오를 하고 살겠다.

주님의 원리에 어긋나면

나의 이익이 침해가 될 지라도

조금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겠다.

조금은 더 겸손하고

조금은 더 낮추리라.

 주님을 위하여

조금은 더 약함을 기뻐하고

조금은 더 곤란을 기뻐하리라.

그게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오늘 하루 삶의 방향인 듯하니 그러리라.

 

 

 

적용

1.  주님의 원리가 아닌 富는 기대하지 말자.

 .  관습화된 부정직한 부는 철저히 피하자.

    그것은 영적으로 맑지 못하게 한다.

    죄가 아닌 듯 누구라도 그러하는 것 같은 죄 -리베이트.. -는 사단의 발톱이다.

    파리의 꿀이다.

 

2.  깨어 있자.

 . 나에게 오늘의 제자 같은 어리석음은 없는 지 돌아보자.

  - 작은 죄. 

    죄가 아닌 듯한 죄.

    그러면서 자아를 잔뜩 부풀리는 죄는 없는 지...

 

3.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뻐하자.

 .  3일 금식 후 흔들리는 것.

    하나님은 아마도 기억하실 것으로 믿자.

    날 안타까이, 어여삐, ...........

 . 걱정하지 말자.

   감사함으로 기도하자.  

   주님은 모두 다 하신다.

   믿자.

   기뻐하자.

 

4. 성경 여덟장 읽겠다.

 

 

기도

 

 주님.

늘 생각해보아도

늘 부족한 것이 저 입니다.

그토록 많은 살아계신 증거를 보이셨어도

시간이 지나가면 의혹속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약간의 어려움만 있어도

흔들립니다.

나름대로 열심을 보인 것...

주님께서 주님의 선하신 의도로 가만히 계셔도

전 흔들립니다.

주여.

이게 저 제자들의 저 놀라는 모습,

그 미련한 모습이

바로

미련한 내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왜 놀라야 하는가요?

왜 흔들리어야 하고

왜 처음있던 일처럼

왜 이게 사실이 아니었던 것인가

의혹속에 흔들리어야 하는지요.

주님

주님은 다 아시고

주님은 다 하신다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걸 믿게 하소서.

이 어리석은 자

주님으로 앓게 하소서.

주님으로 절절히 앓게 하소서.

그래서 당연하지만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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