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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히 여길 나 불쌍히 여길 그들(마 18:21-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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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히 여길 나 불쌍히 여길 그들(마 18:21-35)

주하인 2010. 2. 22. 08:48

제 18 장 ( Chapter 18, Matthew )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개역개정: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

용서하는 것.

용서하기 위해서는 마음 속에 있는 미움이 해결 되어야 한다.

미움.

사람의 특질에 따라

자라온 환경에 따라

미움의 성격에 따라

어떤 경우는 쉽게

어떤 경우는 완전히 잊혀질 수는 있게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비슷한 경우가 되풀이 될 때는

다시 올라올 때가 많다.

 그런 경우 용서 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워질 때가 없지 않아 있다.

누가 알지 못해도

스스로 '이런 정도 밖에 내가 못하는 데'라는 자책감으로 변질되어

오히려 더 무거운 짐으로 지워질 수 밖에 없다.

 미움이 오래된 경우.

진득진득한 콜타르처럼 들러 붙어 온전히 벗어내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겉으로는 무표정하고 반응하지 않는 등

외견상의 용서와 더불어

자신은 용서를 했단 착각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온전히 용서하지 못한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운 에너지로 변하여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변하여

우울한 마음등으로 생길 수 있다.

 

 오늘 빚 탕감 받은 하인.

그 하인은 오히려 솔직한 편이다.

그러기에 그가 깨닫고 돌이킨 다면,

즉 회개만 한다면

어쩌면 쉽게 그 미움을 벗어버릴 수 있고

주님 앞에 칭찬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가 있다.

 그 하인을 묵상함으로 쉽게

용서의 본질에 대하여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더 복잡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즉 상처나 더욱 깊은 꼬여진 관계에 바탕을 둔

용서하지 못함은 조금 뒤로 미루어 보자.

 

 하인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일단은 자신의 입장을 모른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자신은 죄인이다.

빚을 잔뜩 진 죄인이고

또 그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 받은

그 주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감성적 장애를 가진 자이다.

그러기에 그는 그것을 회개하고

고침을 받을 노력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

그것이 용서를 못하는

그가 회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용서를 못하는 자.

용서를 못하는 것은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드는 지름길일 뿐 아니라

주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다.

'나를 참으소서.'

이리 하인은 주인님의 징벌을 두려워 했으면서도

주님의 징벌을 해소하는 길인

용서에 대하여는 전혀 이해하지도

해결할 의지도 보이지 못했다.

 용서.

그렇다면

그가 못하던 이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는 다는 것.

일단 , 우리는 그 분이 우리를 불쌍히,

실은 가련히 여기시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깨닫고 '마음' 깊숙이 이해해야 한다.

느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너무나도 큰 빚진 죄인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가 없었다면 어찌했을지 모를 깊은 죄를

짓고 살던 정말 불쌍하기 그지없었던 죄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 십자가 앞에 가리는 것없이 나와야 한다.

철저히 낮아져야 한다.

그리고는 그 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난, 그런 자임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마음 깊숙이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는

그러한 용서받은 자로서

남을 용서할 당위성이 있음을 깊이 각인해야 한다.

내가 어찌 감히 누구를 용서하지 못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계속 '마음' 으로부터 ..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불쌍히 여기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난 불쌍한 자 맞다.

난 주님께 긍휼함을 받았다.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으로

철저히 속죄함을 얻어 구원받은 존재임을 감사해야 한다.

나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셨으면

그 분은 견디시지 못하고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직접 십자가에 달리셨단 말인가?

그것을 영혼 깊숙이 깨닫지 못한다면

아니

그것을 영혼 깊숙이 깨달을 때야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솟을 수 밖에 없다.

 

혼자서는 안된다.

주님 십자가 앞에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그를 불쌍히 여길 수 있길 기도해야 한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진득한 미움 조차

십자가

그 불쌍히 여기시던 사랑의 결실 앞에 놓고 보니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직도 슬금슬금 미움이 올라오려는 자들이 있다.

용서 안될 것 만 같은 '불뚝'함이 올라 올 때가 있다.

하지만,

주님의 그 사랑

그 분의 나를 그렇게 나 불쌍히 여기셨음을 생각하면

난, 정말 그 분이 아니었으면

불쌍히 여김을 받을 가치조차 없던

추악한 인간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제와 용서하지 못하고

불쌍히 여기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만 같다.

 

용서.

아직도 쉽지 않은 이야기일 때가 있고

용서했다 생각하면 자꾸만 부질없이

'욱'하고 튀어나오는 미움의 끈은 없지 않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난 십자가 앞에 가져가길 원한다.

그 분의 그 사랑이 끝없으셨었음을 있지 않는다면

난 가능할 것도 같다.

자주 내 영혼에 느리워지는

내 평강의 흔적들이 그걸 말해준다.

 

 

적용

 

1. 매일 아침 큐티 한다.

 아침에도 출근하여 참가했다.

 은혜가 되지는 않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들과 같이 한다는 사실 만으로 기뻤다.

 내일도 일찍 일어 나겠다.

 

2. 성경 여덟장 읽겠다.

 금식 후 쉬었다.

 나름 , 좌절을 겪었다.

  말씀 가까이 함을 멈춤은 고통이다.

 더 열심히 묵상하고 읽겠다.

 

3. 용서한다.

 누구든 용서한다.

 십자가 묵상함으로 그러겠다.

 

4. 난 용서받은 자다.

  난 회개할 것이 태산 같이 많은 자다.

  그러함에도 날 불쌍히 여기셨다.

 그 분이 내 죄를 다 잊겠다 하신다.

 그 분이 날 불쌍히 여기셨다.

 그 감사함을 묵상하자.

 

5. 회개한다 .

 

 

기도

 

주님.

용서에 대하여 묵상했습니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불쌍히 여김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인식하길 원합니다.

난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임이 감동스럽습니다.

그 감동으로

내 미움의 대상인 자들을 용서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 모든 죄도 용서하셨는데

나도 스스로 힘들어 하던 죄를 용서 받았는데

그것을 불쌍히 여김을 받았는데

제가 누굴 불쌍히 여기지 못할 게 있단 말입니까?

주여.

제 마음의 흐름을 붙들어 주소서.

주여.

저로 더욱 십자가의 그 사랑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여.

그 십자가가 사랑 덩어리 였음을 기억나게 하소서.

그 십자가에 어린 예수님의 피눈물 떠오르게 하소서.

그래서 나도 남을 불쌍히 여기게 하소서.

그들의 모든 잘못된 점을 용서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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