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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안수해주소서 (마19:13-22 )

주하인 2010. 2. 24. 12:00

예수님 안수해주소서 (마19:13-22 )

 

 

주여

지금껏 인도하셨음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후도

주님

당신 만이

내 삶의 지지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천국의 영생을 위하여

당신의 뜻안에서

굳건한 믿음의 틀을

세울 수 있도록

주여

저를 안수하소서

 

 

 

 

 


  
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어린 아이 머리 위에 놓인 손.

주님 예수님의 손.

안수하시는 그 손.

그 손을 타고 내려오는

천국의 생명의 기운.

그 기운을 받아 들이는

아가의 천진한 영혼.

순수.

순수함에 스며드는

천국의 생명.

주님.

오늘 저의 머리에도 안수하소서.

주님의 생명이 내 살아가는 모든 힘의 원천 되길 원합니다.

계명을 지킬 에너지 되길 원합니다.

 

 천국의 생명이

아무리 예수님께서 손으로 안수하고 싶으셔도 

영혼이 깨끗지 못하면 어찌 받아들일 수 있던가?

예수께서 고향에서 머리 누일 곳이 없다면서

기적을 베풀지 아니하고 떠나시던 그 장면이 선하다.

 내 영혼이 모든 것 다 아는 듯

혼탁한 고향의 영혼같지 않길 소원한다.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영생.

영원한 생명.

지금 같은 삶이 죽지 못하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트와일라이트' 라는 영화의 죽지못하는 뱀파이어 생과 무엇이 다른가?

 

 영생.

영생은 천국의 생명이다.

이 땅에서 은혜만 받아도 날아갈 것 같은데

영생은 그 은혜의 수백수천배의 강도로 영원까지 유지된다니

그 얼마나 환상적일까?

 

 영생을 얻는 것.

'계명'에 대하여 말씀이 나온다.

그 계명은 우선 부자 청년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선한 일'을 무엇을 하면 천국갈 수 있는가..하고...

그의 관심은 '행위'에 있다.

그의 선한 일의 촛점은 '자신' 에 있다.

그는 그가 그런 일을 많이 행했기에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 그리 물어 보는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의 말과는 다른 대답을 하신다.

'선한 분은 하나님이시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

 그러시면서 10계명 중 몇가지를 말씀하신다.

그러자 청년은 자신 있게 말한다.

'내가 다 지켰습니다. '

그러자 주님은 '소유를 팔으라' 하신다.

어찌보면 청년에게 '더 더 더' 하며 행위의 최고 최선을 요구하는 듯하지만

실은 예수님은 다른 관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행위'는 당연히 선하게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 행위는 '목적'이나 '실적' 이 아니고

'결과'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청년,

아니 청년 뿐일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도 자신이 중심이 되어

'행위'를 해내는 자로서 생각한다.

과정에서 그 속에 자기 만족이나 교만은 싹틀 여지없을까?

인간은 원죄적 동물이다.

당연히도 '절대 선'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계명'을 말씀하신 것은

계명이라는 선한 틀을 만들어 놓아야

이들 우리 영혼 속의 야수가 맘대로 뛰지 못하는 틀일 뿐이기에 그러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리 말씀하시는가?

  아가의 안수.

영생.

천국의 생명의 흐름.

그것이 답이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들인후

의지적으로 '계명'을 지킬 결심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영혼을 흘러 들어와

죄를 짓기 싫어지는 것이다.

죄로 얼룩지었던 우리의 영혼은

점차로 물을 부어 희석시키는 것 같이

점차로 맑아 지고 희어져

어느 순간 '아기'의 그 순수한 영혼을 닮아 있을 것이다.

 그 맑은 영혼에서 나오는 행위는

자연히도 순전할 수 밖에 없다.

 '음행'..  생각지도 않게 될 것이다.

' 살인"..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 하셨다.   

             고범죄성 미움은 당연히도 없어질 것이다.

 '이웃 사랑' .. 점차로 커지고 늘어난다.

                 긍휼한 마음이 커지게 될 것이다.

 ' 거짓 증거.' , '도적질' ... 당연히.........

 ' 부모님 공경' .........더더욱 당연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 아이와 같이 되려는 결심'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흘러 나오시는 영생의 기쁨,

 천국의 감정'을 늘 사모하고 받아 드리려는 결심 뿐이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신 계명을 지켜야지..라는 결단 뿐이다.

나머지는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시다.

 

 

 어제 .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하여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지만

내 속에서 흘러나오는 억울함과 속상함 등,

역기능의 흔적은 없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내 영혼의 순수를 들여다 보면

아직도 검은 빛을 띠는 물색깔은 아니지 싶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내 최선의 정중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가슴아픔은 없지 않았을 듯 싶다.

하지만, 이정도의 절제된  선은 필요할 거라는 생각으로

나름위로는 삼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이전 ,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 하나님 내 예수님으로 인격적 만남하기 전까지는

고향집은 늘 양가감정의 대상이었다

인정받고 싶은 대상이면서도

늘 받을 상처가 싫고 두려워 멀리하고 픈..

관계가 좋은 형제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가슴앓이를 많이하고 자란 어린시절을 가진 자들은

내 말에 공감이 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어느새인가 주님의 사랑이 내 가슴을 채워가며

한발 멀리 했던 시간이 있어왔다.

그러다가 말씀은 늘 나로 하여 부담을 가져와

그 말씀 따라 나도 모르게 관계회복을 시작하고 있었다.

관계회복도 가끔은 그들의 내 옛 아픔을 자극하는 상황에 부닥치면

가슴이 얼얼해지며 나도 모르게 깊숙히 웅크리고

또 한번 선을 긋고 멀리하고 픈 충동이 든다.

억울한 마음이 날 '미움'으로 몰고 가려하고...

 하지만, 그 마음을 아시는지

주님은 이러신다.

'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도 사랑하는 데 '형'... 그 어리석으신 행위마져 이해못할 것은 또 무엇이던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죄송하다.

남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을..

그냥 가만히 인내하면 더 좋았을 것을...

마음의 부담이 온다.

 아침의 묵상.

묵상에서는 다른 것은 정말 잘 조절된다.

거짓.. 잘 안한다. 

 아주는 아니어도.ㅎㅎ

음행... 멀리한적 아주 오래된다.

 마음 속으로도 점점 옅어진다.

 나이 탓인가?ㅎㅎ

도둑질.. 더더구나.

살인.. 형제를 미워하는 것을 살인에 포함시키면 .... ㅜ.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님의 그 평강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미움은 내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부모 공경.

이제 곧 더 잘 되리라.

이전에 행하지 않던 정중한.. ^^;; 태도의 이야기는

주님께서 더욱 다져주시리라.

 

 이 모든 것.

돌아보면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40몇 년을 되풀이 해왔다.

중독적 증상을 벗어버림도 오래걸렸고

위의 고백한 것들을 이루는데도

그후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게 돌아보아도 '절대 내 혼자서는 못하는 것'임을 안다.

 마치 머리에 안수하듯

아이같은 내가 되기를 권면하고 기대하시는

주님의 끝없는 기다리심과

그 분의 놀라운 생명력이 없으셨다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 일 줄 안다는 것이다.

 

 부자 청년

그 사람의 말과 행동거지,

그리고 마지막에 머뭇거리면서 돌아가는

그 마음의 어진 면을 볼 때

그는 고생을 하지 않고 성장한

유복하고 다정한 가정의 소생인 듯 싶다.

그런 사람들.

이 현대의 삶 속에서도 많은 그런 사람들은

계명을

율법과 구분하지 못할 성향이 많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너무나 옳다는

기본 전제가 되어 있기에

즉, 자신이 틀릴 수있다는 것을 가슴 아파 고뇌해볼 기회가 없었기에

오히려 율법적 성향을 일단 배우게 되면

회개나 고민을 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아픔을 겪는다는 것.

그것은 아프고 힘이 들지만

주님의 내 영혼 속에 임재하시고

그 분의 생명이 영혼 속에 임하실

그 평안을 더욱 감사함으로 체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에

오히려 행운일 수 있다.

그들에 비하여 오히려 더 나을 수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약할 때 강함'이라는 이 역설이

다시한번 되뇌어 지는 하루다.

 

 

 

적용

 

1.  아이와 같이 되길 원한다.

 . 의심없고

  단순하고

  믿어버리고

  걱정 없고..

 그리되게 하소서.

 

2. 예수님의 안수하시는 손을 묵상한다.

 예수님 저에게도 안수해주소서.

 

3. 성경 여덟장 읽겠다.

 

4. 부모님을 공경하자.

 결심한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5. 형제를 미워하지 말자.

 주님을 위해서.

 

6. 영생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한다.

  영생.

  영원한 생명.

  그 안에서의 자유.

  그 영원한 기쁨

 

 

 

 

 

 

기도

늘 감사합니다.

주님이 안계시면

이 어두운 세상

어찌 살아갈 수 있었을 지

어찌 살아올 수 있었을지

정말 감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 주신

그 놀라운 평안

그 격렬한 기쁨의 충만함

주님 주신 그 생명의

물흐르듯 흐름.

그것은 저로 하여금

지난 어두움을 헤칠수 있어왔던

원동력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남은 내 여생동안

남아 있는 내 자식들의 삶동안

주여

인도하소서.

그들의 머리에 안수하시사

제 머리위에 안수하시사

살아가는 동안

주님 주시는

생명으로 에너지 삼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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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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