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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느 길위에 서 있는가 (마 20:17-34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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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느 길위에 서 있는가 (마 20:17-34 )

주하인 2010. 3. 2. 10:44

제 20 장 ( Chapter 20, Matthew )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느 길목에 서 있는가

 

내 가는 길에

주님

같이 하시던가

  

그 길 비록

추울지 모르고

그길 비록

좁고  외로울 지 모르지만

주님 예수님께서 

내 손 잡아 주시면 

내 영혼에

개나리 피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따스한

봄이 온 것을

느낄 수 있게 되리라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 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선택된 소수

열두제자들을 데리고 가시다가

십자가 사건,

그 고난의 길이자

영광의 길이며

좁은 길인

천국을 향한 지름길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원하시며

불현듯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길에서' 말씀하시는 데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제자들의 어머니가 따라오셨던가?

치맛바람을 일으키시며

세상적 이야기를 하신다. 

예수님과 함께  서 있는

그 '천국의 길에서'

제자들과 모친은

'사람의 길'을 이야기 한다.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주님의 길은

고난의 길이고 좁은 길인 십자가의 길이나

천국을 향하는 길이지만

이들
사람의 길은 

육신적이고

물질적 세상적 성공을 향한 길이며

편하고 넓은 길이지만

비교

질투

분노......지옥의 정서가 끼어들 여지가 다분하다.

이게  

세상의 길이다.

 

 난 누구던가?

선택받은 소수가 맞던가?

어느 길에 서 있던가?

 

그나마 다행이던 것은

그들, 그 열두제자조차

아직은 저런 흔들림이 있어서

그보다 훨씬 큰 흔들림이 있는 난

조금은 위안이 된다는 사실이다. ^^;; 

 

    
30.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소경.

난 눈 뜨고 있지만 진실을 잘 보는 자 맞던가?

그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보지는 못하지만 듣고는 있는가?

무엇에 대하여 듣는가?

세상을 듣던가?

하나님의 세미한 흔적을 들을 수는 있던가?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3.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자신이 불쌍한 존재임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이 눈을 뜨기를 원함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주님 예수님 께서 들어 주실 것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전적으로 매달린다.

그럼직한 분들,

권위와 대단한 위세가 있을 듯한 열두제자들의 막음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랐을지 모를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이 아는 최대한의 열정으로 경의를 표했다.

더욱 소리 질렀다.

 그들은 '길 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는 '영적이지 않은' 소원을 빌었다.

 

천국가는 길에서

세상적인 길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그가 '절실'한 소경이고

그것을 스스로 알고

예수님이 그것을 아실 것을 확신하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반면 열두제자는

성장한 소수의 제자들임에도

세상적인 것을

예수님과의 길에서

다투었기에

그들의 모습은 추악히 보이는 것이다.

 

오늘 나는

어떤 길 위에 서 있던가?

예수님과 같이 서 있는 것은 맞던가?

내 원함은 무엇이던가?

난 소경은 아니던가?

소경임을 알고는 있는가?

예수님을 처절히 원하고

그 분이 기적을 베푸실 분임을 알고는 있는가?
난 선택받은 소수자임을 명심하고는 있는가?

내 바램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주님과의 길에서...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주님은

머물러 서셨다.

그리고는 소경들을 불렀다.

 

주여.

저도 그리하소서.

 

 난 어떤  길위에 서 있던가?

난 누구던가?

선택받은 소수가 맞던가?

눈을 제대로 뜨고 있는자던가?

무엇을 원하는가?

주님이 날 긍휼히 여기실 것을 확신하고는 있는가?
영적인 삶은 사는가?

너무 물질을 제한하고만 있지는 않던가?

주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그것이 이루어질 지는 확실히 알던가?

내 안의 부정적인 , 지옥의 감정은 아직도 날 괴롭히지는 않는가?
난 주님과 대화하고 있는 자던가?

 ......

 

 

 어머님 생신이라 3월 1일 예산에 다녀왔다.

가는 도중 도중

'나를 불쌍히 여기실 것'을 화살기도했다.

역기능 가정의 폐해는 깊고도 오래간다.

상처는 다 아물었다 생각하는 순간

다시 아픔을 호소한다.

아무 일도 아닌 일에

이전의 일을 기억할 상황이 되면 여지없이 긁힌다.ㅜ.ㅜ;;;

너무나도 담대히

주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둘째 , 털 아들이 서울청에 발령 받고 나서

과정에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던 여러 분들의 도움에

형님의 도움도 끼어 있었고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려는 의도와는 달리

그 분들,  형님을 포함한 내 고향 식구들은

여지 없이 과도한 자화자찬과 더불어

묘한 비틂 -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으로

늘 그렇듯 내 마음을 흔들었다.

 영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객관적으로 아무 일도 아닐 것을

난 얼마나 오랫동안 아픔으로 느껴왔던가?

 주일 저녁 

십자가 앞에 앉아 참으로 오랫만에

마음을 들여다 보는 묵상기도를 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과 더불어 너무 시원했다.

이 실체감을 자주 느낀다.

미움이 사라지고 흔들림이 소실 ~ 정말 소실 되어 버린 체험을 했다.

어제 , 내려 가서 아무 흔들림이 없었다.

내 담담함은 그 역기능을 오십여년간 되풀이 하던 흐름에

제동이 걸리게 했던가?

참으로 맑고 선한 느낌이 사로 잡았다.

 형님.

그 강하신 분이 나중에 전화를 했다.

'고마웠다. '

'뭐가요..?'

'그냥...'

난 안다.

그 속에 담긴 사연을 ..

그 마음을..

나 개인으로 보아도

우리 집 정서를 보아도

악하지 못한 사람들.

그러면서 '언어의 폭력'과  알 수없는 부대낌에 의하여

휘둘려 오면서 겪었을 스스로의 고뇌가

예수님을 믿어가면서 - 참으로 감사하게도

이 형님께서 새벽교회까지 나가시게 되고

어머니가 솔선수범해서 교회를 나가시게 되었다.

은혜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쓰신다. ^^* -  나름대로 마음에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얼마나 강팍하신 분인지...ㅜ.ㅜ;;

 

 아침에 일어났다.

잘 견뎌내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길을 잘가고 있다는 느낌으로 뿌듯한 것과는 달리

또 억울한 느낌이 스물거리려 한다.

'아무도 자신들의 잘못을 모른다.

 나 혼자 만 고뇌하고 속상해 왔던게 수십년이다...'라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물론 동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래된 부정적인 생각의 습관이

또 꼬리를 물려 한다.

 한마디 씩 가서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로

당신들이 잘못했고

그러니 나에게 이러이러한 사과를 해라.. 라고 하고 싶다.

 

 말씀을 들여다 보았다.

'제자'

선택받은 구원의 백성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더 선택받은 자.

12제자들.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추악한 논리'와 '감정'들.

 예수님 영접하고 13년.

말씀을 묵상하고 감동하길 5년 이상.

주님과 나름대로 열심히 손잡고 왔다고,

아니 손을 안 놓치려 노력하면서

그 분의 철저한 보호와 사랑아래서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잠시

돌아보는 '회한의 길'위에서

난 여지없이

어리석은 12제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의 잘못.

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오류의 삶의 태도.

과거.

그것을 분노해야 무슨 이익이 있는가?

어찌 난 주님의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주님과 걸어온 세월을

이처럼 허송세월 한것만 같던가?

 마치 '소경'이 바로 나 인거 같다.

어찌 눈을 뜨고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아니다.

소경인지도 모르는 영적 장애자가 맞다.

어찌 변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 못하던가?

어찌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못하는가?

그런 내 자신을 더 깊숙이 가련히 여기지 못하던가?

 자주 깨닫긴 한다.

그러나 더 깊이 주님께 고침을 받길 간구하지 못하였다.

 

오늘.

묵상이 역시 예사롭지 않다.

늘 그러시지만

말씀으로 날 잡으신다.

늘 그러실 것이지만

이 길.

주님과 동행하던 길을

손놓고 다른 길로 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깨달았은 즉, 돌이켜야 하겠다.

 

 

적용

1. 난 '천국가는 길'  위에 서 있는 자다.

 더욱 영적으로 깊이 깨닫는 자 되어야 겠다.

 

2. 난 혼자 있는 자가 아니다.

 주님 예수님이 늘 함께 계시다.

 그분이 가실 길을 나도 간다.

 성령님이 인도하실 것이다.

 늘 함께 계신다.

 

3. 어리석은 제자들과 그들의 식구들을 닮지 말자.

 미움은 버린다.

 비교도 버린다.

 억울함도 버린다.

 

4.  모든 거 주님 앞에 내려 놓는다.

  주님은 내 기도 제목에 영적인 것 , 세상적인 것 구분하지 않으신다.  

 열렬한 믿음과 간구 만을 기억하신다.

 하지만, 내 수준에 맞는 것임을 기억하실 것이다.

  난 어린이인가?   

  제자가 될 자던가?

 소경이던가?

 소경이 아니던가?..

 

5. 성경 여덟장 읽는다.

 

기도

주님.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늘 내 손을 잡아주시고

내 가는 길 위에 서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 소경같은 자.

주님께 외칩니다.

'주여 절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절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은 날 긍휼히 여기실 분 맞습니다.

주님이 날 늘 애뜻한 눈으로 보시는 분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것이 늘 기억되게 하시사

저로 하여 든든한 삶을 이어나가게 하시고

영육간에 왜곡되지 않는 삶을 이어나가게 하시고

자아가 앞서는 기도제목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절 붙드시고

절 인도하소서.

절 불쌍히 여기시고

제 눈뜨게 하소서.

저로 균형잡힌 믿음 유지하게 하소서.

 간절한 간구의 기도를 하게 하소서.

제자식들

제식구 기억하시고

늘 인도하소서.

지구적으로 힘듭니다.

모두 붙드시고

진리이신 주님 안에서

죽을 때까지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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