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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내게 여쭈어 보신다[수15:1-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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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내게 여쭈어 보신다[수15:1-19]

주하인 2019. 9. 26. 10:06




18.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갈렙의 이 당당함.

나이든 늙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기운이 여전함은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 소리에

더 강하게 느껴진다.

 큰 권위를 가진 대장군(당연히도 젊어야 싸움도 잘하지 않겠는가?) 이나 왕이

쩌렁 쩌렁 울리는 소리,

심령을 파고드는 힘을 가진 소리로 외치는 것 만 같다.

 그게.. 갈렙이다.

당당함.

'복'을 누릴 줄 알고

복을 의심하지 않는 자...



19.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거기에

아버지 갈렙 만큼 당당한

딸 악사가 그런다

'내게 복을 주소서'.

아.. 이 또 당당함.ㅎ

거침이 없음이

성공한 아버지를 모신

'금수저'자녀 처럼 철없이 요구를 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고

모든 과정을 아버지 갈렙과 함께 이루어 낸 자의

그러한  '당당한 울림'을 가지고 

복을  요구하는 느낌으로 그런다 .


"내게 복을 주소서'


오늘

묵상을 진행하는 내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게 복을 주소서' 하는 두 소리가 번갈아가며

내 가슴을 흔든다.

이상히도 '복'.. 축복.. 뭐 이러면

기복을 진저리 치는 습관처럼

물질이 따르면 마음이 나뉘어지는 것을 알아서

슬그머니 뒤로 물리며 관심을 돌리던게

'나'였다.

더더구나, 아주 오랜 시간 전 부터 '역기능'의 소산으로

내 안에 '중독적'성향이 있어서

젊은 시절, 누구나 그런 정도이긴 하지만

'카드'

'당구'

'전자오락'

'무협지'

'만화'

'TV'.........ㅎㅎ ..........비교적 건전하긴 하지만

하루 꼴 딱, 며칠 씩도 빠져 들어가던 습관들이 있던 차..........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일체 멀리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나이기에 ......) 하던 나였다.

 그러기에

세상의 '복'(비록 그게 선교, 봉사.. 등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얻어지는 칭송일지라도..)은

또 나른한 태만을 나에게 가져올 것이며

그러함은또 이전처럼

마음의 혼란이 유발 될까..

이 영적 평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멀리하는 경향이 내게 있었다는 말이다 .


그렇기에

'갈렙'님은

거칠 것 없이 세상의 적들을 해치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냄을 보면서

그 옳고 단순한 믿음을 부러워 하고 그리워 하면서도 (^^;;)

난... 그 외적 이룸을 대하여

머뭇 거리고

적극적으로 그의 그러한 신앙의 방향에 대하여

기도하고 구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슬그머니 힘없이 지나가고는 했다.

 이러함은

주변의 많은 기독교인들의 실적 지상주의,

겁없는 외세 확장의 부작용.. 기복주의로의 왜곡....등을 보면서

조금은 더 단단히 가로 막히는

갈등의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 난..

내 믿음의 방향을 '성화', 주님 안에서의 영적 순화 후

주님 앞으로 소천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던 차

내 특성으로

그 외적 '축복'과 동반한 이룸이 어렵다 생각해왔던 거다.

이러한.. 나름의 방향은

그 마져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날 , 모든 인생을 이끌어 가실 것을 믿기에

내려 놓고 있지만

자주, 자주 ... 일상에서도

내 내면에서도

그 외적 이룸과

내적 추구 사이에 완전이해되지 못한 부분으로

어쩌면 약간은 '힘없는 ' 삶을 살아오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다.



 기도하면 기도한 대로

현실 속에서도 채워짐을

이제는 자주 느끼고 산다.

'주여.. 수술 환우 분.......' 하면 이루어진다 .^^*

주여.. 하면 ..

이루어주시는 하나님..

내 이전의 그 믿지 못하는 성향.. 의심 많은 성향에도 불구하고

어.. 내 예상과는 너무 다르게 쉽게 바뀌네.. .하는

많은 순간순간의 체험들.. 이 쌓이면서

이제는 그 외적인 부분의 기도에 대하여

믿어진다.

그런데..

추석 이후 들어 갑자기 너무 많이

현실에 장해가 생기기 시작하는 듯하다. ㅠ.ㅠ;

 옆 진료실, 여샘과 차이가 나는 듯.. 난. 너무 한산해진다.

또 ... 아시지요.. 주님?.. 하면서 기도했지만

어.. 이전과는 달리 조용~하다.

 무엇을 원하시는 가 ..

어찌 기도하기를 바라시는 가.. 당혹스럽다 .


 이럴 때 , 아니다 .. 상당히 대부분...

난 .. 이렇게 기도한다.

성경구절대로.. 말씀대로..

'약한 것을 기뻐한다.

 그러함으로 예수 십자가에 동참하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다 .

 사방으로 욱여쌈을.. 쌓이지 아니하고.. '

그러다 보면 깨어지는 부분들이 있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라는 고백이 나오는 체험들을 많이 한다.

이거.. 굳이 현실의 환우.. 문제에 만 비단 해당하는 것이 아니지만

일반적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게 '평강'이 찾아오고

그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체험하며

'그래 잘하구 있구나.. 주하인아.. ' 하시는 듯한 깨달음과 더불어

내 안의 여러 고뇌와 고민들이 터져나가며

감사로 채워지는 체험들..

아주 오래전 부터 '평강, 샬롬'을 가장 크게 간구해왔던 것이

이루어짐을 느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

 그러한데.....

이 작은 갈등.. 겨우 몇날 며칠의 어려움을 통해

내 안에서 또 '불안'의 소리들이 기승을 부리려 한다 .

 이때..

과연 난 여전히

'약함을 기뻐하며.. 곤란을 기뻐하며.. 약한 것이 강함임'을

기도하고 잠잠히 참아 기다리는 것을

훈련하고 연습하려 하나

잘 되지 않는다 .


 더더구나 어제부터의 말씀이

불현 듯 (정말 불현듯..이다.ㅎ) '갈렙'님이 등장하셔서

'늙은 청년' 의 소리로 외치고

오늘은

그 청년의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외치기도

그 딸은 (갈렙이 나이들어 낳았던가?... 이제 시집가다니.. ㅎ.. 육신의 능력도 갈렙은 젊다.)

'내게 복을 주소서.'하고 외친다.

 마치... 주하인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하시는 것 같고

갈등하던 나에게 '악사'의 입을 통해

' 이제는 현실적 복도 주소서......' 하고 외치라 심 같기도 하다.

아.. 난... 잘 못외치는데.. 복달라고는... ^^;;


 내 복잡한 머리, 불안한 흔들림을 들고

'회진'을 가려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생각들이 막 .. 정리되어 쏟아져 들어온다


 ' 불안의 소리들

그 안에는 늘 .. 나를 괴롭히던 녹음기 틀어놓은 듯

곧 망할 것이다.. 쫓겨날 것이다... 등의 악한 소리들이다.

솔직히 그 오랜 소리에도 불구하고

난 여기까지 왔다.

이루어지지 않음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소리 대신 하나님의 소리로 대치시키는 게 내가 할일이다.

그것을 원하시는게 하나님의 뜻이시다.

 아직도 갈 길이 남았다

오늘은 복을 빌어보자.

더 열렬히 복 달라고 빌어보자.

그리고나면 '약함을 기뻐하는 '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은 어찌하는가?

왜 갈등일까?

일단 말씀이 있으니

말씀대로 기도하자.

 

 복과 내 기도방향.

그것은

외적과

내적 방향에 대한 다른 방향이다.

외적만 추구할 일도

내적 방향만 추구할 것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

설령, 아직은

내 안에서 아직 그 둘을 동시에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그대로 기도하는 것,

그 자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시며

난.. 굳이 외적 내적 기도를 구분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 .

그 자체가

며칠 전 레위 지파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는 것의 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감사하다.

마음이 많이 편하다 .

걱정이 멀~리 사라졌다.

현실.

비단 그게 

갈렙님 등에 비해

열정적 외적 이룸을 이루시는 신앙인들에 비해

아주 좁은 틀일지 모르고

어이없는 고민일지 몰라도

내 일상의 이 작은 틀을 통해서

주님은 또

주님의 기뻐하시는

그 크고 놀라운 원리의 일단을

또 내게 가르치시고 계시는 듯해

감사하고 기쁘다.



주님.

절 짓누르던 인생의 터부들...

제 고민의 일단들을 통해서

영적원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진리를 드러내 보이시는 하루입니다.


특별히

갈렙님의 '네가 무엇을 원하냐'고 외치는

그 당당함과

악사의 '복을 주소서'하고 소리내는

그 하나님 안에서

신행일치의 삶을 사는 자들의

거침없음을 바라보며

내 작은 이 삶의 테두리에서도

같은 원리를 깨닫고

비단 그 뿐 아니라

내면 추구의 양립할 수 없을 듯한

이 비가역적 상황에서도

주님은 주님의 뜻 가운데

또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걱정과 근심이 멀리가게 하시고

내 일상마져 책임져 주실 것이며

그 가운데서

또 내 영적  성장,

성화와 순화의 길을 열심히 갈 수 있는

그 귀한 원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내 주여.

그래서 감사하나이다.


이 깨달음으로 멈추고

또 스치면 없어져 버리는

그러한 일시적 생각이 아니고

주여..

제 삶에 더 강하게 임하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이 버거운 인생의 길을

힘껏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주시는 것 감사하게 받고

안 주셔도 약함이 강함, 곤란을 기뻐함으로

더 이상 욱여쌈 쌓일 수도 없는 제가 되게 하소서.

주여.

그 원리 잊지 않게

강한 성령의 은혜로 붙들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거룩하신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2013.12.01 묵상 분


 

 건강한 경계 


11 또 에그론 비탈 북쪽으로 나아가 식그론으로 접어들어 바알라 산을 지나고 얍느엘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며

12 서쪽 경계는 대해와 그 해안이니 유다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오늘 말씀은 '경계'에 대하여 계속 나온다.

다른 환경과 맞닦드리는 부분.

내 가진 소유의 끝 부분.

 

 경계가 주는 의미는 여러가지다.

일단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경계이지만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그냥 걸어가서 선을 그은 것은 아닐 것이다.

싸운 것이다.

싸워서 이루어진 국경이란 이야기다.

그렇다 .

경계를 긋기 위해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 경계는 자신을 보호하는 의미다.

하나님은 세상에 나를 보냈지만

수많은 전쟁을 거치게 하고  그안에서 선을 긋고 경계를 가질 것을 허락하셧다.

그 안에서 비교적 안온하고 편안할..

보호받기 위하여서는

경계가 필요하고

경계는 하나님의 허락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허락 받기 위해서는 '싸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싸움을 하고 경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원함'이 뚜렷해야 한다.

갈렙의 딸이 갈렙에게 이렇게 자신의 경계를 원하고 받아낸다.

그렇다.

원하고 지키고 싸워서 그어진 경계.

그게 ... 중요하다.

 

 당직서고

환우, 아주 많이 보고

열심히 찬양을 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쉬는데..

그런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하다.

서운의 개념이 자꾸 나이가 들어가면서 커지려한다.

 

그것.

내 존재를 타인의 알아줌에 맡기는 습관 탓은 아니던가?

내가 열심히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으면

쉼은 당연한게 아닌가?

그런데 육신은 쉬는 데 마음이 쉬질 못한다.

 

 경계 문제.

자신이 건강을 위해서는

정확한 원함으로 정확히 경계를 치는게 건강한 일이다.

자신의 행복 마져 남의 위안과 남들의 눈빛에 고정시켜 판단하려 하는게

경계가 부족한 탓일 것이다.

잘했었는데

괜히..............그렇다.

 

하나님이 경계를 말씀하신다.

건강한 경계.

하나님 만으로 내 위안을 삼고

더 이상 다른 생각들이 침범하지 못할 '경계'를 치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내 원함은

하나님의 위로로만 든든함을 느끼는 것이다.

남들의 어떤 얽힌 상황으로 인하여 흔들릴 이유가 없다.

그렇지 못함은

아직 보수할 경계선이 남아 있고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사단'의 장난이 있음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듯하다.

 

 

주님.

오늘 토요일.

굉장히 바빴습니다.

어제 저녁 내내 찌르는 듯한 통증이 편두통처럼 와서 힘들었습니다.

마음이 힘든데 머리까지 그러니 더욱 그러네요.

힘없이 느즈막히 일어나고

하루종일 바쁘다 보니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다시 묵상을 시작하니

건강한 경계에 대하여 다시 말씀을 주십니다.

옳은 원함과 영육혼의 건강한 경계를 생각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전 하나님 만으로 제 기업을 삼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만이 제 든든한 버탐목의 경계선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다른이의 위로나...

다른이의 도움은 그냥 감사할 뿐이고

오직 하나님의 위로와 존재 만이 내 생명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

절 도우소서.

제 앞길 인도하시고

제 바램을 뚜렷히 하소서.

남편으로, 아버지로 , 닥터로, 아들로 ,.. 주어진 경계를 잘 흔들리지 않게

선을 정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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