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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축복[수17:1-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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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축복[수17:1-18]

주하인 2019. 9. 29. 09:18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안될게 무엇일까

안되는 것은

안될 것이다 소리내는 내 속의 불신들 뿐이고

안되게 하는 것은

아직도 부족한 주님 앞에 서 있음 뿐이지..

 

이제

주님의 말씀이 있으시고

내가 주님께 사랑 받는 자 임이 확실하게 느껴지며

무엇이든

기도하고 기다리는 자

그리하여 은혜 가운데 거하는 것 만 확실하다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힘껏 외치는 일 뿐.

 

참으로

그러함을 알게 하시는

내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이 감사한 아침이다

 

 

 

3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 딸 뿐'이라 나온다

그 시대의 딸.

전혀.. 지금과는 다른 권리, 여권, 거기에 강한 율법적 체제하에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4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 기업을 주므로

그러나 그 모든 장벽, 터부, ......무엇이든

절대로 안될 것 같은 경우에도

'여호와의 명령' 이 있으시면 가능하다.

 

그렇다.

여기에서

너무도 당연하지만

우리의 일상에 유사한,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내 인생을 잡아오던

누구든 인생을 잡아오는

어쩌면 '철학', '인생관' ,'세계관'.. ..어떤 이름으로 불리거나

아니면 '주관'으로 불리던

'성격' 탓으로 불릴 수도 있다.

 

난.. '터부'라고 스스로 부른다.

가끔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 깊은 내면에 자리잡은 생각, 확신, 신념 같은 것이

그들, 우리, 나.. 그리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지금, 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는

그 , 나의 중심, 나의 소리.. 라 지칭되는 것들을 부추켜 세워

세상이 이리도 혼란이 있는 것이고...ㅠ.ㅠ;

 

아... 잠시 곁길로 빠지려 하였지만

그 가장 내면에 자리 잡은 소리.. 를

심리학에서는 '핵심 신념' (아..보통은 오류의 생각들을 지칭하지만..) 이라 한다.

핵심 신념...

솔직히 난. .하나님으로 전제되지 않은 모든 핵심 신념을

'핵심 망상'이라 부르고 싶지만..ㅎ

 

왜 갑자기 이리 부르는가?

'여자는 안된다' ......어쩌면 그 때 사회의 필요,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가장 편한 이유로 해서 흔들릴 수 없는 사회 가치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간들이 율법을 세우면서도.. )

그게 강하게 자리잡아

모든 여인들은 어쩌면 지금이라면 너무도 당연하였을 상황에

(솔직히 한국도 법으로 딸들이 재산 분배를 받는게 명문화 된게 얼마되지 않지 않나..ㅜ.ㅜ;)

저 때.. 저 므낫세 '여인'들의

재산 분배 요구는 어쩌면 목숨을 건듯한 두려움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들은 하나님안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이글거리듯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감 안에서

그녀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갈렙님'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듯이...

 

그러함은

내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엊 그제

'갈렙'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며

딸 악사에게 묻자

딸.. 비록 남편을 끼고(남자의 권리) 말했지만

'복을 주소서'라 당당히 외치던 모습에서 들여다 보이던

그 '터부'의

너무도 당당히 깨뜨림의 모습...

이전까지

내 인생, 우리네 인생을 그리도 잡아 누르던

'안된다'는 그 핵심 신념, 아니다.. 핵심 망상이다.

주님의 뜻이 아닌

그 어떤 핵심 신념, 강력한 터부도

'망상'이 다.

잘못된 강력한 신념,

깨어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한 인생을 끝까지 파멸로 이끄는 나쁜 내면의 소리..

어쩌면 모든 인생의 상황을 딛고 형성된

상처,내적 트라우마를 집어 들어온

'영적 오류'의 존재들... 어쩌면 사단의 소리들일지 모를

그 '핵심망상'을

이들

므나세 여인들의 당당한 요구,

'이산지를.. ' '복을 .. .' 하듯

'기업'을 주라 외치는

(전혀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지 못하는 자들의 눈에는

사회윤리를 깨는 위험한 .. 으로 보일지 모를.. )

그들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뜻' , '여호와의 명령'으로 인지해냈을

여호수아 들의 모습과 더불어

너무도 쉽게

그 전통, 원리, 터부를 깨고

정확히도 나누어주는 모습을 보며

오직 하나님,

하나님 이외에는 어디에도 정답이 없으며

하나님 만으로 사는 자들의

진정한 평화와 행복, 그 당당한 '복'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

 

그것이 깨달아 지고

점차로 매사의 일상에 적용하게 되며

그러한 내 신행일치의 삶, 평상의 영성의 삶이 이루어지게 되어감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어쩌면

복중의 복, 진정한 복이 이러함이 아닐까

다시한번 감사한 아침이다.

 

 

귀하신 내 주님.

내 이러한 마음의 변화..

어떤 상황 중에도 이제는 덜 흔들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이렇게 살아나가면 결국 그리 될 수도 있겠다는 확신 같은 마음...

그리 되어 가는 저를 발견하면서

참으로 감사하였습니다.

주말이라서 다시 집에 올라왔습니다.

아내와 엊저녁 같이 앉아 취침 침상머리 기도를 하면서

들려오는 반주에 맞춘 끝없이 펼쳐지는 감사의 찬양....

기도 끝나고 가장 은혜된 게

나의 그러함, 그러함이 내 구원의 순간 후

20년 넘게 지속되어 옴이

같이 기도하고

그안에 넘치는 감사와 감동의 찬양을 통해 확인되어지며

꿈같다는 고백을 함을 들으며

저도 제 그러함, 끊임없이 커지는 감사함이

복중의 복을 받고 있음을

진정 더 커지게 되었었습니다.

 

주여.

오늘 , 사회에서 발언조차 힘들 여인들이

자신들의 기업, 축복의 실제를 요구함을 보면서

그들이 그 러하기까지 거쳐내고 당당할 만큼까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체험을 거쳤을 것이며

그 하나님의 힘을 입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깰 수 없을

그 핵심 망상의 소리들을

헤쳐나왔을 지

그 마음의 변화가 심상치 않게 다가왔습니다.

 

내 주여.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안되는 '것이 없음을 다시한번 바라봅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것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지 못한 우리의 부족함이 문제이며

어쩌면 같은 힘없음도 그게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주여.

온전 히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봅니다.

주안에서 가장 선한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이 무엇일 지는 주님 만이 아시지만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해야할 것은

주님 앞으로 다가감,

그리함을 통해 허락되어지는 은혜.

주님의 말씀의 지도,

결국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 것을

주 앞에서 이룸.

그리고

그러기 위한 '주님과의 소통' 말입니다.

내 주여

 

이제 빕니다.

내게도 주소서

복을 주소서.

믿고 기도합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한 이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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