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께서만 나를 & 그제서야 나는[딤후4:9-22] 본문
부제) 내 온전함을 위하여 외로움 조차 허락하셨다
너는 내게로 &주께서 내 안에
그래
모두 다 홀로다
아무리 옳은 이유로 모였더라도
결국은
홀로가고야 마는게 인생이다
아무리 좋은 명분
심지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였어도
결국
홀로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게
우리네 인생의 숙명이다
원죄적 영혼의 결국이다
그러하기에
우리 주께서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을 이루어 내신 거다
그게
구원으로 이루어주시는
그의 천국을 위한
가장 확실한 장치시다
우리
외로움이 숙명인
인생들을 위한 ...
그렇다
주께서 내게 원하심이다
그 모든 어려움과 외로움
그러함에도
주 안에 거하며
주님의 구원 안에 머물수만 있다면
난 괜찮다
아니 오히려
그를 위하여
이 모든 인생의 그러함들 허락되어진거다
확신으로 채우기 위하여 허락되어진 것임을
영혼 깊숙히 갈무리하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을
오늘 내게
기대하고 계심이시다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내게로'
'나를' 이 눈에 들어온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등은 '나를 ' '버리고' .. '갔다'.. 한다.
다른 거 다 모르겠다.
오늘 말씀은
오직 주님,
오직 주의 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신 '사도 바울'께서
당황하시는 듯,
갑자기 폭죽 터지듯
그득찬 저금통이 떨어져 깨지듯
바람에 들깨 가루 , 벌레 날리듯 ^^; 사방으로 퍼져나가버리는
'동역자'로 생각하였던
한때는 의지하고 신뢰하던 주변인들이
다 떠나가 버림에
당황하며
안절 부절 못하는 듯한 뉘앙스가 떠오른다.
거기에 아직은 온전히 버리지 못한 자아
'나'가 드러나며
디모데에게 '어서속히' '내게 오라'하며
매달리는 듯한 그러한 느낌이
강하게 나를 사로잡는다.
아... 외로움.. 이다.
그게 .. 영적 외로움이던
오래된 , 이제는 거의 잊혀졌다 생각하던
'심리적 갈증'으로 인한 '외로움'이던
내 깊은 ..
어떤 게 터치된듯
가슴이 좀 시리려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동역자라 생각했던 무리들이
세상을 향해 하나같이 뿔뿔히 흩어지니 - 세상의 사람들로서..ㅠ.ㅠ-
마지막 남은 '하나님의 동역자'라 생각되는
디모데에게 매달리는 듯한 뉘앙스... ㅠ.ㅠ
외로움, 당황, 혼돈..
그런데, 그게
비단 그의 문제 만이거나-절대로 내 오해일 수는 있다, 당연히.. ㅠ.ㅠ- 나의 문제를 드러내 보이시는 거만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아니시던가?
그 분도 '십자가 달리시기 전날 밤' ..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하시던 그 밤,
그 모든 인생의 원죄적 속성
영혼에 깊숙이 뿌리 박힌 '심연의 외로움'을 절감하셨으며
십자가 달리심으로
그 모든 깊은 인생의 문제들을 다 가지고 가셨다.
그리고 마땅히도
그는 부활하셨고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이 한계를 넘게 하심이셨다.
사도 바울의 터치,
이 깊은 본성의 외로움, 영혼의 그러함을
또한번 들여다 보게 하심이 아니시던가?
그게..
'내게'.. 어서 속히 .. 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심이시다.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그리하셨듯
그 분, 사도 바울님은
다시 정확히 온전하신 '대안'..
그 '길'만이 없음,
아니 '그 길'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그러함의 끝... 을
확실히 보여주고 계시다.
보라.
인생의 깊은 외로움.
누구나 혼자 가야할 길.
이 땅의 누구도 '주님'이 아니시고는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절대의 '장애'.. 부족함은
'외로움'이며
그 외로움이 마지막 시험,
광야 연단의 최고 단계의 시험^^;; 일 수도 있음에 대하여
보여주고자 하심은 아니실까?
그 분이 결국 그렇게 선포하고 계신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그렇다.
주께서 '내 곁에 서'계심이 매일 매시 매초마다
이 일상에서 느껴진다면
그보다 더 담담하고 완전한 든든함이 어디 있을까?
'주께서' 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구원'하실 것일 것임이 믿어진다면
더 이상 흔들릴 일이 무엇이던가?
이어서 또 그러신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신다.
비단 외로움 뿐일까?
'주께서'
이 모든 절대의 위험, 영적 전쟁터의 모든 위험에서부터
나를 건져내실 것임이 믿어진다면
그보다 더 힘있고 당당할 삶이 어디있던가?
외로움?
배반감?
혼돈?
전투?
전쟁?
폭풍우?
롤러코스터?..
그토록 혼돈스럽고 자주 몸부림치던 그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무슨 문제가 될까?
초연함이다.
담대함이다.
담담함이다
더이상 '나에게' .. 라 외치고 몸부림칠 대상이
필요없어짐이다.
'자아'는 옅어지고 사라지며
내 영혼 깊숙이
나.. 내것.. 내게로 .. 옹그리고 놓치 않으려 했던
그 어떤 것들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지 않겠는가?
'주께서'
내 '심령에 함께 계'시는 것이 확신만 된다면 말이다.
오늘 말씀은
'외로움'에 대한 거다.
홀로만 방치 되어가는 것..
더구나 그것이 그토록 옳다고 생각하고 나가던 길에
동역자로 모든 것을 다 바쳐 희생해도 좋을 듯하던 자들이
순식간에 폭죽 튀듯이
콩볶듯 튀쳐나간다면
누가 있어 그 '외로움과 절망'을 감당할 수 있겠던가?
그 순간,
단 한명이라도
내 존재와 삶의 가치를 확인 시켜줄 주변을 향해
많이도 허겁거리며 돌아볼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절망'.. '사망'의 두려움.. 에 빠지는 것...
어쩌면 인생들의 당연한 마지막,
특별히 나이들어가는 존재로서의 '우리 세대'들에게는
누구나 할 거없이 경험하고야 마는게
인생들의 마지막 운명 아닐런가?
그런데..
사도바울께서도 그랬다.
예수께서 몸소 걸어가신 그 '십자가' 시련의 길을
걸어가시고 받아 들이셨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의 모본이 있으셨다.
그 분이 다 지고 가신 '그 외로움'의 길을
묵묵히 받아 들여 승리하셨음을
오늘 보여주고 있다 .
답이 없다.
그러나 답이 있는 것이다.
인생,
우리 홀로의 생각과 논리와 실제로는
결코 저 절망의 운명,
영적 전투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저 마지막 사단의 궤계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이 없다 .
'내게로'
'내게로'
'내게로'... 아주 많이 외쳐서
마침내 그, 디모데 들이 몰려와도
그들 역시 그들의 본연적인 문제로 '튀쳐나갈 수 밖에'없는 것이
인생이다.
또 다시 배반을 당하고
서로 서로 상처를 입히고 입으며
절망으로 죽어가는 존재들이다.
인생이란게..
그것을 통해
주님은 '인생 광야 연단'의 과제물로 허락하신 거다 .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주께로 '다가와
주님의 십자가를 같이 지며
성령의 은혜로 이겨내야 한다.
그게 .. 답이다.
주님.
오늘 말씀은 소름이 끼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저처럼 대단하신 '바울'께서도
'내게로 '오라고 매달리실 수 밖에 없는
절망의 운명을 요.
그 깊은 , 익숙한 절망을
나 같은 인생의 범생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고
누구나 갈 수 밖에 없는 것을 보 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주께서' 내곁에서서
'주께서' 내안에 계셔
'주께서 ' 건져내시고
'주께서' 구원하신 저 천국을 말씀하시며
마침내 도달하고야 말
그 온전한 '회복'을
감탄하여 견디지 못하고 나오는 실재로서의
사도바울님의 고백을 보게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절망을 보게 하시고
그러나, 주님을 붙들고 끝까지 견디면
결국 이겨내고 승리하게 될 것을
다시한번 확신하게 하심이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이제는 당황할 일 없을 듯합니다 .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주님의 뜻임을 알고 바라보기만 하면
내 곁에 계신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그 당연한 사실을 확신할 수있을 듯합니다.
주여.
주신 말씀이 있으시니
주께서 내 곁에 계시고
주께서 내 심령 안에 계시어
주께서 모든 악한 .. 일들에서 구원하셔서
저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
천국의 심령으로 거하게 하실 것임을 믿어지게 하소서
더 이상 매달릴 일 없는
내 자아의 어떠함을
다 예수님께 맡깁니다.
주께 맡깁니다.
저를 붙드소서.
믿사오며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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