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죄책감 및 낮은 자존감 벗기기(슥3:1-10) 본문
1. 질문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
1) 장면
재판정 분위기다. 사단이 '검사'의 역할. 천사는 변호사. 여호수아는 피고인. 주님은
판사.
2) 여호수아는 과연 죄인인가?
원죄가 있는데 죄인이 아닐자 누구인가? 여호수아는 더욱더 죄에 대해 민감한 의식을 가진 자로서 완전 성화를
위해 가슴아파 하는 자이다.
그의 죄는 '원죄'에 의한 완전히 해결치 못한 죄이고, 그를 이용한 마귀의 '죄의식'이 될
것이다.
3)사단이 오른편에 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본격적으로 '송사'하려는 의미이고 마귀에 의한 어두운 부분은 설령 여호수아 일지언정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고 거룩한
하늘 법정에 마귀가 올라가 있다는 것은 '마귀는 주님의 깊은 뜻'에 의해 허락된 부분임을 암시한다.
즉, 착하고 더할
나위 없이 거룩한 자로 보이는 사람도 완전히 성화되지 않고는 어두운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의미함.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
1) 사단을 책망하시는 주님
책망할 수 있는 사단을 그냥 두시고 주님 앞에서 재판하실 시에야 책망하시는 이유는 주님의 자녀를 위하여 필요한 시간에
사단이 이용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즉, 우리가 겪는 모든 혼란도 주님의 깊은 뜻에 의해 '선하게 '이용됨을 알 수 있다.
2) 불에서 그슬린 나무
나무를 잘라서 젖은 상태로 불에 넣으면 상당 시간 지난 후에 꺼내면 겉은 그슬렸어도 속은 하얀 속살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죄의 불이 거셀 때, 예수나무의 가지인 우리는 잠시 뜨겁고 겉이 숱검댕이 같아 스스로 당혹스러워도 주님이 벗겨 주시면
깊은 속살은 그대로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
1) 더러운 옷
. 여호수아는 수고했다.
. 그럼에도 죄악의 때는 있다.
2) 주님의 대우
. 더러운 옷을 벗긴다.
. 죄과를 없애신다.
. 아름다운 옷을 입힌다.
- 원죄가 없어진,
죄책감이나 혼란이 없어짐.
. 정한 관을 씌우신다.
. 천사가 호위한다.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symbolic of things to come) 내가 내 종 순(Branch)을 나게 하리라 "
1) 예표
여호수아는 '족'이다.
여호수아는 열정, 순종, 변함없는 충성, 그리고 오늘
환상에서 믿음으로 주님께서 때를 벗겨주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고 왕관을 씌워줄 것으로 예수님을 상징하게 되는 인물이다.
2) 순
영어 대문자로 Branch라 표시 했다. 레위 가지가 아닌 다른 '가지의 순', 즉, 유다 종족의 '예수님'을 의미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
1) 한 돌
신약에서 예수님은 흰돌, 모퉁이 돌..등으로 묘사됨
2) 일곱 눈
성경을 통틀어 일곱은 203번나온다. 그만큼 일곱은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구절은 잠언 26:25에 나온다.
"그말이좋을지라도
믿지 말것은 그 마음에 일곱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
눈은 스가랴 2장의 눈동자와 잠언 5:21 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로 보아서.... 꿰뚫어 보는 주님이다.
즉, 일곱가지의 원죄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걸 하나하나 꿰뚫어 보시고 그를 통하여 역사하는 마귀의 장란을 손바닥 보듯이 감시하신다는 의미로 들린다.
3) 하루에 제하리라
예수님, 그 분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원죄와 그에 의한 죄악성, 그리고 선하고 약한 자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모든 죄책감
, 낮은 자존감에 의한 때를 '십자가 사건'으로 '하루에' 없애 버리신다는 얘기시다.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러한 귀중한 예수님의 역사가 개인적으로 임하려면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 같은 귀한 진리'아래로 이웃을 전도하고 나 자신을 귀중하고 감사하게 주님께 바쳐야만 이루어진다.
2. 느낌
그 대단한 여호수아도 사탄의 송사로 부터 완전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주님은 마귀에 의한 여러 증상, 낮은 자존감, 열등감, 죄책감... 조차도 허락하신 상황임을 암시하신다.
얼마나
갈등이 살면서 심했던지 주님은 '불속에서 타들어 가다만 나뭇가지'로 표현하시고 계신다.
만일 우리가 주님에게 떨어져 나갔던 마른 나뭇가지 즉, 불신자였더라면 어쨌을 것인가?
아마도 잠시의 불에도 견디지
못하고 타버렸을 것이다.
재 한줌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그러나, 다행이도 예수님이란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관계로 마르지 않고 있던 나뭇가지다.
그래서 겉은 비록 시커멓다고 해도 주님은
날 벗겨버려진 깨끗한 속살의 나무로 보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가 불가운데 고통 받음을 눈물흘리며 지켜 보셔왔다.
그러다가 드디어 주님은 영원전 부터 계획하고 계셨던 당신의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
그분은 골고다의 만행이 있던 바로 그날, 그 하루를 통하여 '십자가'를 지신 우리 예수님을 통해 이땅에 횡행하는 마귀의 장란으로 부터 단~칼에 해결 시켜 준다고 하신다.
남은 문제는 우리의 그 분에 대한 '믿음'과 그를 알려 이웃을 초대하는 '전도'의 행위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여호수아가 죽어서 주님 앞에서 해결 받은 것을 이 땅에서 우리 예수님으로 인하여 해결 받고, 자유로운 자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을 까?
자유로운 삶...
평강의 삶...
기쁨의 삶...
심령천국
감사하신 주님 ~!
3. 적용
. 일곱 눈을 가지신 한돌 우리 예수님을 묵상하자
. 감사하는 삶을 살자.
. 전도하자.
. 하루 하루의 혼란은 마귀의 제한된 '불'임을 인식하고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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