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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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죄지면 이렇다 (창50:15-26)

주하인 2005. 8. 21. 16:34
1. 상황

 

 야곱의 장례를 모두 치루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형제들의 발걸음은 천근 만근이었다. 
죽을 지경이었다.  

서로 말은 못했지만 ’불안’이 그들의 뇌리를 깊게 누르고 있었다.


드디어 형제 중의 하나가 가지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자 형제들 모두 긴장하며 눈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라 할 것 없이 앉았던 자리에서 엉덩이를 끌고 그 형제 주위를 모여 들었다. 

그리고는 얘기를 시작했다.     

 

 ”아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의 운명은 어찌 될지 몰라?”   

 

알면서도 부인하고 싶었던 형제 중의 한 사람은 침을 삼키면서 얘기했다.


”그게 무~슨... 얘기야?”   

 

그러자 그 형제가 다시 말한다. 

 

”요셉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은 다 아버지를 봐서야.. 

요셉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극진했잖아... 그리고 요셉의 효심도...  

그래서 우릴 눈에 가시처럼 여기면서도 참고 있었던걸 거야..”  


그러자 다른 형제가 거든다.

 

”맞아...난 어제 지나치며 인사를 먼저 했는데 ..

 아는 체도 안하고 지나가는 거야... 그러면서 슬쩍 보니까.. .

그 눈빛이 번쩍이고 눈꼬리가 올라가 있는것이... 예사롭지가 않았었어.. ”  

 ............


 계속 말꼬리가 이어지면서 억측이 시작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가기 시작하자 그들의 불안은 서서히 증폭이 되어 드디어는 예상될

시나리오가 생각이 났다.


  ”우리 들을 어느 순간에 불러내어 갑자기 감방에 넣은 후 굶겨 죽일 지 몰라”
 ” 아냐.. 우리가 굴 속에 던져 넣어 버렸으니까.. .깊은 굴속에서 가둬 버릴 거야..”
 ”아니.. !!  노예로 팔아 버릴지도 몰라...” ........

 

이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안’은 ’공포’로 변하기 시작했다.

 

드디어는 대표격인 형제 - 아마도 유다일 가능성이 높다-가 나섰다.

 

” 형제들... 진정합시다.. 이리 있다가 죽을 지도 몰라..

우리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어?”


”어찌 하면 좋겠는가?”   

 

” 우선은 사람을 보냄세..

그리고 아버지 야곱의 이름을 들이대며 그 분의 뜻이라고 형제를 살려주라 하세..”   

 

 ”그래도 안들으면?”  

 

 ” 직접 찾아가서 무릎꿇고 빌어야지..”  

 

 드디어는 사람을 앞세워 그들의 말을 요셉에게 전했다.

요셉의 반응은 그들의 생각과는 너무도 다르다.   

 

운다.(울보 요셉 ~~^^;)

 

그래도 형제들은 불안하다.


다시 찾아와 빈다.

 

”우리는 종입니다. ” 

 

아마 멀리서 무터 무릎꿇고 요셉에게 갔으리라...

 

 요셉은 다시 한번 강하게 그들을 안심 시킨다.


전혀 그들의 미련함을 탓하지도 , 그들의 두려움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21)” 하고 위로한다.

 

 그 위로가 간곡하다고 표현이 되어 있다.

 


 2. 느낌

 

 수천 년 전 사람들의 감정 흐름 역시 다시 보지만 똑같은 것 같아 당혹스럽기도 재밌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옛날 사람들 얘기 만이 아니다 ...

현대에도 똑같은 감정흐름이 있어 ..

의외로 많은 교인- 목사님들 포함 -들이 몰래 정신과를 찾는다고 한다.  


일반인 들 보다 많이..

 

아니...? 
모든 걸 용서 하시고 안아 주시는 예수님이 계신데.. 이게 합당키나 한 말인가?

 

 이유가 오늘 잘 나와 있다.

 

많은 정신병의 근원에는 ’분노’와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이 그 근원에 있다. 

 

이 죄책감을 해결하면 되는 데 그렇지 못해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형제들은 ’요셉’을 믿지 못한 것이다.
자신 들의 죄가 용서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들은 전혀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솔직하지 못했다.
형제들끼리 미리미리 마음을 털어놓고 양지에서 말렸더라면..

.이런 마음 고생은 없었을 것을...
지금 교회의 문제점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교회는 정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식 즉, 복음을 듣고 쉬러 가는 곳이다.
쉼이 필요한 곳이다.


그러나, 거기의 사람들은 율법적 잣댈 가지고 손가락질 한다.
’죄인이...  아니.. 예수님이 계신데 뭘 걱정야... ... 예수님을 믿는데 아직도 그런..쯧쯧..’
솔직할 여지가 별로 없다.  

엄숙 만 있고 사랑은 없는 것이다.

 

. 피했다. 
 아버지 야곱이 죽도록 십수년간 도피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떠했는가?

그는 울었다.
왜 울었을까?

. 형제들의 십수년의 마음 고생이 불쌍해서...
. 믿지 못하는 그들이 가련해서.
. 고백하려 찾아오는 그들이 사랑스러워서.
. 너무나 사랑이 넘치는 본성 때문에..

 

 

 

 3.  생각

 

 우리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두려움이나 죄책감으로 고민할 수 있다.
그것이 어찌나 깊은지 지옥에 떨어질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일 수 있다.
신앙 생활을 아무리 해도 주님의 얼굴은 ’공의로운 무서운 분’으로 만 보여서 기도는 할 수록 더 답답해진다. 
 
 그러나, 주님이 과연 그러하신 분인가?

그분은 항상 내 곁에 계시다.
언제나 내가 고백하기 만을 기다리신다.
그리고 ’주님 제가 잘못했어요...”라는 말 한마디만 하면...
’그래 내 새끼야.. ’하시면서 우실 분이다.
그리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내가 네 자녀까지 책임 질 것이다. ’라 하실 것이다.

’회개하라.’  ’두렵지도 않느냐..’  .. 소리가 들리거든 외쳐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물러가라.”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날 위해 우시고 계심을 믿자.  묵상하자.

 


 4. 묵상

 

. 주님은 날 위해 우신다.
. 내 죄는 예수님께 고하는 순간 용서 받았음을 믿자.
. 기도 많이 하자.
  기도할 때 솔직하자.
.  아픈 사람 불편한 사람 모두 감싸자. 예수님의 사랑으로

 

 

5. 사족

 

 회개하지 말자는 소리는 전혀 아닙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정말 깊이..

 

그런데 회개란 명분으로 찾아 드는 마귀의 정죄감을 전 표현 한겁니다.

 

그렇다면 회개랑 정죄감은 어찌 다를 까요?

회개는 회개한 후 잊어버리고 마음이 편한 상태가 외적으로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그 후 한층더 깊어지면 맞습니다.

 

정죄감은 할수록 할수록 자꾸 커지는 것입니다.

무거움이 커지는 거....

마귀영역이지요.

 

이상. ... 혹시 있을 '부드러운 음식'이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한마디 더했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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