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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요한복음16:16-24)

주하인 2006. 2. 24. 09:31

(요한복음16:16-16:24)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펌)

 

 

( 조금만 있으면 시끄러운 소음은 그치고 사랑하는 그 분이... )

 

 

 

 조금 있으면...

 

 십자가로 대표되는 '고통'과 연단의 시간이 오거나 절정이 될 것이다.

그 고통은 조금있으면 이란 예고적 표현에서 느끼는 것 처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만큼 힘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부활'로 상징되는 회복과 성장과 기쁨의 시간이 곧 올거라는 말씀이다.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 라는 성경구절 처럼

환란은 심한 것처럼 느껴지고 오래 갈 듯이 느껴지지만 곧 있을 중한 기쁨을 기대하고 기다리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주님은 세심하게 경고와 격려를 하신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지금 힘들어도..

곧 힘이 들지 모를 불안은 약간있어도

그건 '조금만 있으면' 사라질 경미한 고통이요

조금만 있으면 찾아올 엄청난 기쁨에 대한 전조증상일 뿐이라는 얘기다.

 

 

 

 

 

20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펌)

 

(재물이 도리어 근심이 된 것처럼..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다 !! )

 

 

 주님은 마지막이 가까와 지니 이리 세심하고 적극적으로 위안을 하신다.

비유로만 하시던 그 분이..

 

 조금 있으면.. 이란 의미를 시원하게 풀어 말씀하신다.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라고..

 

 굉장히 소망어린 말씀이시다.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산모 마다 진통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성품에 따라, 나이에 따라 다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통産痛  ' 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병원마다 '라마즈'등의 산모교실이 성행하고 있다.

 

 고통이 그 뒤에 있는 생명탄생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으면 고통이 기쁨으로 변한다.

실제로 어떤 산모는 땀을 흘리면서도 희열에 차 있는 표정으로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으시는 분도 있으시다.

 

 그리고 몇시간의 고통이 지난 후 '조금 있으면' 아이를 받아 안는다.

그 분의 얼굴은 '천사'가 따로 없다.

말구유에서 예수님을 받아든 마리아의 성화가 보이는 표정이 언뜻 보인다.

(펌)

 

( 시원하겠지요? ㅎ)

 

 

 기억나는 산모는  그 고통을 '시원하다'고 까지 표현하신다.

대부분의 산모도 진통 기간의 고통은 잊는다.

진통 중 다시는 아기 낳지 않겠다고 소리소리 지르던 분들도 생명을 맞아 들고는 기뻐한다.

기억하지 못한다.

 

일년이 지나서...머쓱한 표정으로 '애 가졌어요..'하고 웃으면서 진료실 문을 들어오는 산모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애 안낳아서 걱정이다... 기도제목)

 

 우리도 연단 과정은 힘들지만..

시간이 조금 만 지나 그 분 예수님이 내 영혼을 온통 점령하고 성령의 기운이 전신을 힘차게 흐르면 잊는다.

 

 천국의 기쁨으로 고통은 기억조차 못하게 될 것이다.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펌)

 

(참으로 간절히 빌고 있지요? ㅎㅎ)

 

 

 주님이 비유대신 완전한 지시를 하시면서 근심과 고통을 앞에둔 우리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라 하신다.

 눈에 보이듯이 은혜를 퍼부으실 때 보다는 힘이 들 때가 더 기도할 때이다.

기도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듯할 혼란의 시간이 실은 더 기도할 때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야 말로

살아계신 하나님.

십자가의 예수님.

우리의 영혼을 물처럼 순환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할 귀중한 기회이다.

 

 마귀의 방해가 커 갈수록

육신의 고통이 커 갈수록

심령의 어지러움이 커갈수록

인내하고 참을 때의 상급은 더 커진다.

 그리고 기도하면 이루어 주시는 멋진 체험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쑥쑥 자라난 절호의 기회다.

 

 주님 예수님이 세상에 계셔서 그 많은 기적을 보이셨을 때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주님 가시고 난 후 당당한 사도로 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가?

 

 내 일생에서도 마찬가지인 원리를 주님은 부르짖으신다.

 

 "이때가 구할 때이다.

 구하면 받을 수 있다.

기도해라.

그 안될 듯한 상황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기도하여 체험하는 체험과 축복은 네 영혼에

아주 큰 기쁨을 선사하리라"

 

 

 그 체험의 시간이 지나면 '부활'이 있으시다.

 

 

 

기도

 

 주님

힘이 듭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러나..

조금만 있으면 이라 하십니다.

 

그 조금 후에 ..

어떠한 고통이 더 있을지..

지금의 고통이 조금 더 있을 것이란 말씀인지 알수는 없지만. ..

 

이전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변화를 가져보려 노력하겠습니다.

 

고통스럽지만. .

희망적인 고통으로

소망이 있는 시원한 일로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기뻐할 일로

그리 바라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일이 지난 후

조금만 있으면

반드시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으로

내 영혼에

내 삶에 기쁨으로 넘칠 소망을 가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성령님 도와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쁨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 헨리 나우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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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된 고통

 


 절제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계산된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역량과 지구력을 키워 주는 도전 상황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밀어 넣는 행동이다.

 자신을 절제하는 과정에서 실패의 쓴 잔도 마시고, 굴욕감도 느낄 것이다.

게다가 만족과 성취는 자꾸만 뒤로 미뤄진다.

 

절제를 아는 사람은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제의 시기가 모두 끝난 뒤에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박수 갈채와 찬사를 보내는 보상이 찾아온다.

육상 선수, 레슬링 선수, 수영 선수들은 모두 자신에게 더 큰 장기간의 지구력과 더 빠르고 강한 체력을 요구함으로써 자기 몸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밀어 붙인다.

 피로하거나 고통스럽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정신적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몸의 편안함보다는 의지대로 몸을 움직인다.

이 원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엄청난 임무를 감당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영적 성장의 길」

 

 고든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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