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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도 희망도(왕하 11:1-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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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도 희망도(왕하 11:1-21)

주하인 2011. 7. 23. 11:06

제 11 장 ( Chapter 11, 2 Kings )

 


1.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2.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3.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아달랴.

이세벨, 그 극악한 왕비의 딸답게  
할머니면서도 손자들을 다 죽이고 유다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그리고는 바알의 세력들이 등극한다.

그러나, 다 죽인줄 알았던 손자 중의 하나 , 요아스가 살아남아

육년 후에 여호와 성전 제사장의 추대로 인하여

바알의 세력으로 대표되는 아달랴 일행을 몰아내고

다시 왕으로 추대된다.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암담한 중에도 하나님의 자손들은 남아

언젠가 다시 주님의 나라를 세운다는 뜻이신가?

 그렇다면 나에게는

암담하여도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고 기다리면

다시 때가 올 것임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일까?

 

어제 저녁

하기오스 찬양팀으로 금요성령집회에 섰다.

묵상 말씀의 '금빛 송아지 ' 정체를 집중하며

들어날 때 마다 내려 놓을 마음으로 찬양을 했다.

 자꾸만 마음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자 하려 한다.

이것이 '송아지 임을 알고는 내려 놓을 선택을 하곤했다.

굉장히 은혜롭다.

주님 기뻐하시는 찬양...을 올렸다.

늦은 퇴근.

목요일 피곤한 당직.

많이 피곤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났다.

멍하다.

말씀에 집중을 못하겠다.

묵상집을 여니 읽어보기에 벅찬 분량에 계속

' 이세벨'의 아류인 ' 아달랴' 의 지독한 행사가 눈을 잡아 끈다.

겨우겨우 읽고 부리나케 닦고 출근했지만

마음이 답답하다.

 무엇인가 인생에도 획기적인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늘 마음 한구석의 바램과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그냥 현실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 들이며 말씀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루하루 내 영혼의 성장을 기대하는 삶.......... 사이의 갈등인 듯하다.

 그 마음의 답답함을

말씀으로 선택함에 따라 성공할 때 날아갈 듯 은혜가 넘치는 반면

오늘 아침처럼 피곤할때

말씀 마져 들여다 보지 못하고 이해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옛 마음의 흔적이 들어나려 한다.

 

 옛 마음?

답답함.

암담함

흔들림.

좌절.......

 

아마도 아달랴 치하의 믿는 자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기다리는 육년 동안,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을까?

아하시야의 딸, 아달랴의 손녀의 손에 의하여 구해진

유명한 '요아스'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까지

그들은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햇을지 모른다.

때가 되어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은 그의 살아 있음을 알고

세력을 규합했을 수도 있다.

희망

 

 아마......

그 마음이 혹 내마음일 수 있으니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그래서 다시 이전 은혜를 놓치지 않도록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아니실까 싶다.

 

그렇다.

그래도 살아갈 이유가 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더라면

살아갈 이유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이 맞다.

 M 목사님.

본원 마취과 과장님이시자 선교사 출신.

이제 곧 다시 선교지에 나가시려고 얼마전 한달의 휴가를 내고

훈련에 돌입하시고는 며칠 전 출근하셨다.

목요일 당직 서면서 저녁 늦게 수술장에서 만났다.

한참을 이야기 하던 중,

'우리에게 하나님이 안계셨더라면

 아무 살 이유와 희망이 없지요...?' 하시는데

난 거침없이 맞장구 쳤다.

'당연하지요.

 목사님....그런데 레지던트 하실 땐 전 목사님이 전도를 해주셨더라면.... ' 했다.

미안하신지 머쓱히 웃고 마시긴 했지만

우리들, 주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한 자들은

소망이 이땅에서는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아야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오늘.

이세벨 줄기들.........

세상과 사단으로 상징되는 그들을 바라보고 비교할 때

암담함으로 절망에 빠질 수 없는

그 답답함으로 그 암흑의 육년을 묵상해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도

주님은 다 아시고 계시고 

다시금 요아스를 통하여 소망의 시간을 배려하고 계심도 보았다.

 

나.

사는 것.

오르는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고

내려가도 다시 반드시 올라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난 주님이 허락하신 그 부분까지 성장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히 누릴 자 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으련다.

그래서 오늘도 괜한 절망에 날 맡기지 않겠다.

 

 

주님.

토요일이 또 왔습니다.

한 주가 급속도로 지나가고 또 한달이 급속도로 갑니다.

그렇듯 시간은 빨리 흘러 주님 나라 갈 시간이 가까워 짐은 좋으나

나의 마음은 가끔 이리 흔들림으로 가라앉으려 합니다.

주여.

그런 어리석은 저를 보시고

다시 한번 절망의 시간 중에도 임하시는 주님의 시간이 있으심을

말씀을 통하여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제 부족한 점 아시는 내 주님

그 마져 주님의 뜻임을 압니다.

가장 선한 것으로 저를 주시고

저를 통하여 또 얻게 하실 다른 분들이 있으심을 믿습니다.

제 경험.

제 토하는 내면의 소리들..

제 영혼을 숙화시키시는 주님의 성령의 임하심을

이리 나눌 수 있도록 하시고

그를 통하여 엮어내시는

우주와 시간의 엮어짐을 통하여

나와 다른 수많은 자들의 선함을 위하여

허락된 잠시의 절망의 기간들...

터부..인줄 다시금 믿으려 합니다.

오늘 아달랴의 육년간의 암담함을 거치고

다시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 위로 받고 인내하겠습니다.

십자가로 받습니다.

제 마음

다시 밝히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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