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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타오르다(왕하13:14-25)

주하인 2011. 7. 26. 13:10

제 13 장 ( Chapter 13, 2 Kings )

 

지난 밤의

폭우를 넘어 섰다

 그래도

아직 날은 흐리다

 

하지만

나 이제

 더 이상 낙망치 않을 것이다

 

내 몸을 타고 흐르는

생기를 펼쳐보이리라

 

죽음의 고난을 넘어

날 휘감아드는

성령님을 누리리라

 

불꽃 같이 타오르는

내 아버지

내 아버지 하나님의

그 축복을 느끼리라

 

그리하여

내 온생명 다하여

붉은 꽃 피워 내리라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님은 돌아가실 때가 되고

요아스는 아직 펄펄 살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아버지요, 병거요, 마병'의 존재로 느껴지고

요아스는 초조한 존재다.

 
18.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번 치고 그친지라 
  요아스는 '겨우' 세번 만 친다.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

     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죽어가는 엘리사는 더욱 많이 치기를 바랬다.


  
21.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 섰더라
 죽은 엘리사는

죽은 자를 살리는 엄청난 생명력을 보이는 데  
 
25.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살아 있는 요아스는 세번 만 회복되고 그치게 된다.

어딘가 부족한 승리.

어딘가 빠진 듯한 생명력.

 

 
 오늘의 묵상은

죽어가는 성령의 사람 엘리사와

살아 있지만 생명력 넘치지 못한 요아스 왕이 대비된다.

엘리사는 비록 생명이 꺼져 가지만

그의 뼈를 통하여 죽은 시체가 살정도로 엄청난 생기가 느껴진다.

요아스가 다급히

'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며

'내 병거와 내 마병'이라면서 매달리는 데서

그의 엄청난 위용을 이글이글 느끼게 한다.

 그 이글거리는 위용, 생기의 체는 무엇인가?

당연히도 성령님이 아니시겠는가?

그 엘리사, 인간인 그가 어떠한 능력이 있어서 저런 기적과 위엄을 자랑하겠는가?

모두 그를 통한 성령 하나님의 강력한 운행 탓이 아니겠는가?

다행인 것은 요아스가 그 엘리사를 찾아와 매달렸다는 것이다.

그의 뒤에 강력한 포스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에너지를 느끼고 찾아온 것이다.

얼마나 강력한 지 그의 입술의 고백이

내 가슴을 친다.

'내 아버지여 , 내 아버지여.

 내 병거와 마병이여...'

내 대신 싸워줄 분이시고

아버지가 아들의 위험을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을

그의 절박한 입술을 통해서 토해짐이 가슴에 온다.

'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나 주하인의 병거이시고

나 주하인이 마병이신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

나도 이리 고백하는 하루가 되어야 겠다.

 

그렇다면, 그러한 그와 죽어가는 엘리사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당연히도 믿음이다.

 엘리사님은 절절한 하나님의 운행을 매일 느끼고

하등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기에 저토록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프리카 선교사 K님의 그 우직한 기적에 대하여

어제 아버지 학교 기도회에서 들었다.

그렇다.

그 분을 간접적으로 알지만

그러한 조금은 모자란 품격을 통하여서도

그의 하나님께 온전히 매달려 기도함을 톻하여

기적 들이 놀랍게 일어나 죽은자가 살아나고 소경이 눈을 뜸을 들었다.

선교지에서는 정말 기적들이 많이 일어난다한다.

그런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 이외는 다른 선택이 없는

그 절절함 속에서 나온다.

 반면,  요아스는 왕이다.

그는 비록 절절한 절박함으로 엘리사를 찾았지만

엘리사는 죽어가고

아람왕을 조금 더 멋지고 뚜렷한 방법으로 힘있게 선언하는 것을 바랬지만

뜬금없는 화살 게시를 통하여

땅에 두드리라니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는 냉랭한 모습으로

하라니 한단 마음으로 세번 만 땅에 화살을 두드리고 말았을 것이다 .

 그 냉랭함.

그 허탈함.

그 내면에는 아마도 '의심'의 차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며 죽어가던 엘리사가 아주 안타까워 한다.

 

그렇다.

성령님의 역사는 어디에서도 일어나고

언제나 일어난다.

그럼에도 아직도 변화없는 내 끈질긴 터부는

'믿음'탓이 분명하다.

믿음 부족함이다.

 

 실은 아직 솔직히 잘모르겠다.

적극적으로 뜨겁게 간구하여 삶을 바꾸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이 어려움을 통하여서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림이 옳은지..

그렇다면 기도의 방향이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는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면서 믿고 뜨겁게 나가야 한다.

금식 기도원에 들어가서 몇날 며칠을 금식하고 응답 받을 때까지

나무 뿌리라도 몇개 뽑아야 한다. ^^;

 후자...

지금껏 내 행태가 선택해온 방향은 후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약함을 통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고

기다리면서 말씀의 인도를 받다보면

주위에 몇가지 선한 변화가 일어나고

나를 통하여 감화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자들의 고백이 나온다.

그래.........그것도 어쩌면........이지 않는가?

난 지금까지 온화하고 절절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왔다.

난... 깊은 은혜를 자주 체험했고

사도행전의 표현대로 '통쾌한 날'이 주님으로 부터 이르는 경험을 자주 했다.

 그래서 난 잘 모르겠다.

오늘 엘리사님이 보이시고 K 선교사님등이 보이시는

그 성령 하나님의 절절한 운행,

마치 불이 붙어 활활타오르는 듯한 믿음으로

내가 지금껏 지니고 있는 이 '가시' 같은 것,

단칼에 뽑아 져야 옳은지...

 

그런데 그럴 때 '물어보고 여쭈어보는 기도'를 해보면 좋을 것을

나 어찌 그러지 못하는가?

실은, 지금은 이제 좀 가능할 듯하다.

그러나, 이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이 많이 돌아다녀서

집중하지 못함은 주님도 잘 아셨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날 기다려 주시고 계셨음을 믿는다.

이제 , 말씀을 매일 내 삶의 등불,

내 발을 비춰주는 등불임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살아가는 바,

오늘 말씀은 '"성령'의 뜨거운 불을 한번 간구해보아라" 하시는 말씀 같다.

 

 그래..

그렇다면 난 오늘 이리 외쳐야 한다.

'내 아버지 , 내 아버지시여............!!'

이런 절박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리 성령의 내 마음 가운 데 불을 지르심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한다.

마치, 오늘 요아스가 털썩 뛰쳐 들어와

내 대신 하나님 앞에 외쳐 대는 것 같다.

'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주님은 내 대신 싸워 주시고 날 지키시는 병거와 마병이 아니신가요?'

그리고는

뼈에서도 살을 돋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그 역사를 기다리고 기대해야 한다.

 

 

감사하다.

오늘도 그 말씀을 머리속에 담고 하루를 지내리라.

그러다가 저녁이 되어 드디어 깨닫고 경험하게 되리라.

내 이글거리는 성령 하나님을 ....

 

 

 

적용

 

1. 성령의 운행을 기대하자.

 

2. 오늘은 내 '원함'을 강력히 고해 보리라.

 그리고 기대하리라.

 주님.. .나.. 이게 부족해요.

 주님.. 나 .. 이게 필요해요.

 주님.. 나... 이렇게 하고 싶어요.

 주님... 나.. 이렇게 되길 기대해요.

 마침 10년 후 내 모습과 병원의 모습에 대하여 제출하라는 병원의 요청이 있다.

 그래 보리라.

 

3.  기도하자.

 . 녹음 취입하고 싶다.

 .  책을 몇권 쓰고 싶다.

 . 논문 다시 쓰고 싶다.

 . 의사로만 할 수 있는 도발적 사업의 틀을 만들고 싶다.

 . 인생의 후반에는 조금 더 공부하여 술기를 늘이고 싶다.

 . 존경받는 의사로 성공하고 싶다.

 . 남 들의 인생을 들어주는 자가 되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전하고 알고 싶다.

 

4.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내 병거여  내 마병이여.. 외우자.

 

5.  시체를 살리는 엘리사의 뼈를 묵상하자.

  그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의 그 생명력을 묵상하자.

 

6. 이제 머리속을 넘어서 느낌으로 영혼에 받아 들이는 때가 되길 원한다.

  성령의 그 펄펄 끓어 넘치는 기세..  

  생각과 환영 만 넘어서 느낌으로 내 영혼에 받아 들이자.

 

7. 상황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역사와 뜻을 믿자.

  엘리사는 죽어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내 상황은 차가와도 주님은 가장 선하시다.

 

8. 차거운 믿음을 뜨겁게 해주세요

    여쭈어 보자.

    어디까지가 차거운 것인지 어디가 기다림인지..

    차분함과 열정 중 원하시는 것은 어디신지..

    오늘은 주님의 뜨거운 역사를 기대한다.

 

9.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내 하나님.

엘리사의 죽음과도 상관없이 이글거리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느껴집니다.

그 성령님이 얼마나 뜨거우신지

엘리사의 생명은 꺼져가도 주님의 생기가

시체마져 살리시는 역사를 봅니다.

그를 찾아와 매달리는 육신의 생명만 살아있는 요아스를 봅니다.

 

대비되는 묵상의 포인트를 통하여

성령의 도우심만 입으면

주님만 믿으면

내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는 '승리'를 봅니다.

육신의 죽음과는 상관없는

영원한 생명의 원리를 느낍니다.

주여.

저 ....

미련한 주하인 ...

믿음 부족했던 주하인...

이제 이리 외칩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내 싸움을 이기게 하시는 내 병거 하나님이시여

내 인생을 승리로 이끄시는 내 하나님 마병이시여.

내 성령하나님이시여.........

 날 돌아보소서.

날 이기게 하소서.

이처럼 곤고하고 어려운 저를 돌아보시사

절 도우소서.

살려주소서.

이 끝없는 질곡에서 절 건지시고 이기게 하소서.

믿습니다.

시체마져 일으키신 내 아버지 하나님의 성령이시여

나에게도 임하셔서 내 절망의 영혼을 일으키소서.

오래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 노력하다가

부족한 믿음으로 인하여

또 다시 냉랭한 의혹으로 빠져 들어가려는

저의 이 부족함을 불쌍히 여기시사

다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날 일으키소서.

간절히 비나이다.

간절히 붙드나이다.

내 적은 믿음 보시고

주여 절 살리소서.

제 가족

제 나라

이 지구를 살리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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