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애도의 시간[마27:57-66] 본문

신약 QT

애도의 시간[마27:57-66]

주하인 2023. 4. 8. 06:44

(펌) 무덤 앞 마리아들

그들은 무덤 앞에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절망이 누르는 그 앞에서

그들을 그리 떠나지 못하게 하는

그 깊은 내면은 무엇일까?

 

신세한탄일까?

소망이 사라진 어두움 뿐일까?
사랑했던 분의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일까?

그 분의 살아계실 때의 행사를 그리워함일까?

.......

그 무엇이든

그들을 사로잡는 것은

끝, 마지막에 대한 절망 뿐이리라

 

하지만........

그게 아님은

우리

믿는 자들은

누구나 다 안다

 

부활.

새로운 시작

놀라운 새로운 시작

 

따라서 

죽음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

예수 그리스도 앞의

더 이상의 장해물이 되지 못할

사망의 의미 말이다.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저물었을 때' 

마음이 어두움, 남의 시선이 신경쓰이는 느낌

 

부자이면서 '예수의 제자'라는 신분은

그러하기 힘들게 하는 조건이지만

그 모든 안되는 제약들을 물리치고 '예수의 제자'로 서게 된

인간의 내면을 움직이는 여러 복잡한 동기들,

그 살아 움직이는 성경의 실제를 믿어지게 하는 세미한 증거들이

'부자'이지만 '제자'

그 제자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두웠을 때..라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성경에 숨겨져 있지 않던가?

 

 부자가 무엇이 아쉬워 

부자는 바늘 구멍 보다 통과하기 힘든 '예수님 제자' 되었을까?

그리고 그 갈등이 느껴진다.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가진 것을 통하여

최선을 다해서 깨끗한 세마포로 예수님을 싸서

자기 새무덤(자신의 것을 , 새것을 ... 최선 다해 존중하는 분의 마지막을 모시는 모습)에 모셔두고 

'큰돌'로 '무덤 문'을 막아 놓고 간다. 

 

 이것.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다닐 정도의 부자라면

그 깊은 내면적 차분함과 성실함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자신의 손해 및 위험'을 감수하고

'모든 절망의 상징'인 '시체'를 마주하는 고통을 넘어서는

'제자로서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 절제와 

존중할만한 예수님의 이전 행적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모습은

그러나 

그러한 그 마져도 예수님의 돌아가심을 

끝으로 보아 

더 이상의 '소망'이 없는 것을

상징적으로 '무덤을 큰 돌로 막아 놓고 감'에서 볼 수 있다 .

 

아리마대 요셉은 

인격적으로 아주 우수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부활은 전혀 생각 못하는 '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최선의 '예의'를 차리는 과정 중

그의 마음에 어떠한 생각이 있었을까?

 '죽음'을 마주하는 인간의 절망,

그러나 끝까지 관습 안에서 최대한의 예의...

그 안의 '자기 결단' 아니던가?

 

 끝을 바라보는

가장 뛰어난 인간의 시선.

그게  요셉님을 통해 느껴지는 마음이다. ㅠ.ㅠ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그리고 '제자'그룹에속하지만

전혀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아.. 더 정확히는 '애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여자

그 중에서도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여인과

가장 사랑 받았지만 가장 비참한 여인이었던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아서 

하염없이 무덤을 바라보고 있었다 .

 

 어땠을까?

그 심정이.. 

어떠한 마음으로 

가장 존중하고 사랑했던 분의 

오직 유일한 그 절망의 시대에 '소망'이 되었던 분의 

상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끝,

그들의 존재 이유

그나마 그들을 살아가게 만들던 소망이 단절 되는

무덤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마음으로 , 생각으로 있었을까?

 

'무덤을 향하여 ' 

'앉았더라'

 

아마.. 

아무 생각 못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앉았을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마리아들 모두

끝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끝이 끝으로 단정하고 그리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 끝을 최선을 다해 '애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그 마음을 왜 보게 하시는 것이신가?

 분명코 

'부활'하실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

그들의 모습을 보며

'보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제대로 믿지 않으면 쓸데 없는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예수님 부활 있으실 것이니

우리는 죽어도 산다. 

슬픔을 거두고 오히려 기뻐해야지.. 

죽음은 끝 아니야.. 

오히려 시작이지... " 하고 

쉽게 이야기 할 것인가?

 그냥 '설교'로 끝나고 

십자가가 그냥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도구로 끝나고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 주시는.. 뭐 .. 그런.. ?

성경을 보면

그 안에 꿈틀거리는 '인생'들의 모든 마음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결국은 

모두 '자아'다.

 

 아리마대 요셉도 

그 뛰어난 지성과 훌륭한 품성, 결단과 마지막까지 보여주는 충성.. 

어느 하나도 흠잡을 데 없는 '인성' 인격을 지녔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안위와 현실을 염두에 두는 게 없을 수 없음을 보고

'마리아'들도 

정말 끝까지 주님을 아쉬워 하지만

그 깊은 내면에는

이 끝 이후...............

결국 또 마주해야할 '현실'......의 나락...

다시 절망으로 들어감이 너무도 무서워

예수님과의 추억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함이다. 

 

 대제사장들은 또 어떤가?

철저한 자기 이기 주의 와 더불어 

그래도 혹시 모를 영적 기현상을 경험한 후의 더 조심함........

 

 

 전혀 다른 세 부류에

공통점이 있다. 

 

'자아'다. 

自我.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 볼 수 밖에 없음이다. 

그게 한계다. 

육신을 떠나시는 영에 대하여 어제 묘사되었다.

육신을 입고 있다고 사도 바울께서 많이 표현하셨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고도..

 

결국.. 

이 3차원의 세계를 살아가는 데

하나님의 허락하신 연단을 이루는데 필요한 

육신이라는 틀에 갇혀 있기에

이 안에서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함에도 

우리는 이 육신을 통해서 느껴지는 모든 것이 

다 끝이고

모두 '자기'임으로 착각하고 있다. 

 

예수 께서는

그 육신을 통하여 

허락되어진 '끝'을 십자가에서 보이시면서

그 끝이 끝아니고 

새로운 시작이심을 

누누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직도 

가장 뛰어난 믿음과

가장 신실한 인격과

가장 절절한 자들의 모습 조차

그 끝에서

결국 '육신 안에 갇힌 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직 '자기의 관점' .. 

자아로 바라보고

그 결론과 결국은 

'끝이 끝이구나' .........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예수님은 

3일 후 다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여 오셨고

그 말씀을 붙들고 가슴에 믿게 되기를 기대하시며

부활까지의 애도 시간을 허락하셨다. 

 

그러하다. 

 

저들의 모습을 보며

옳은 애도.. 

슬픔을 슬퍼하고 

예수님과의 귀한 시간들을 회상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돌아보며

자신의 살아왔던 육신적 삶,

자아의 충만함도 

같이 예수 계신 그곳에 장사하는 시간.. 

옳은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는

저들이 없는 

부활을 아는 우리는

기대와 감사로 겸허하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게 주시는 말씀이시다..

 

주님.

말씀을 정리하다 보니

주시고자 하시는 뜻이 깨달아 집니다. 

 

끝이 끝이 아니지만

돌아보면 주님이 저와함께 하셨던 

그 모든 순간들을 '애도'하길 원하십니다. 

너무 슬픔에 빠지는 이유도 없지만

막연히 부활에 대하여 좋은 것만 생각하고 

주님의 십자가 의미를 잊어 버리길 원치 않으심도요.

감사합니다 

하루 종일 붙들고 살 수 있도록 도우소서.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