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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여 힘들여 낳으라[미4:1-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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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여 힘들여 낳으라[미4:1-13]

주하인 2013. 2. 24. 10:00

 

 


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그 날'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나의 때가 되어서 임하실 주님의 그때..그날.

 

'저는 자'

부끄러운 일.

괴로운 일.

고쳐야 할 일.

 

' 쫓겨난 자' 

세상에서 도외시 된 자.

밀려난 자

왕따된 자.

그보다는 그리 느낄 자.

 

 그들을 모으신다.

그날에..

 

주님 감사합니다.

제 안의 '저는 마음'이 있음을

'쫓겨난 것 '같은 괜한 허전함과 허탈함을 읽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 읽어주시니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리 알아 주시는 것 만으로 괜한 힘이 납니다.

모으신다시니 희망이 생깁니다.

어쩌면 저는 것과 쫓겨난 것 같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려 함은

세상의 어떠한 사실도

세상이 모르는 나만의 어떠한 막힌 일도

모두다 해결되고 오히려 소망의 일이 됨을 느끼게 되어

진정 감사하게 됩니다.

주여.

내 소망의 하나님이시여

감사합니다.

 

 

7.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나의 저는 부분을 통해 '남은 백성'이 되게 하신다 신다.

내 되풀이 되는 걸림돌.

그래서 타인을 보기에 미안하고

나 자신을 보기에 속상하고

주님을 뵙기엔 너무 죄스러운 부분들.

그 저는 부분,

아니.. 실은 절어야 할 것 처럼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늘 칼에 찔리듯 아프게 뭉쳐 있는

그런 '저는 자' 나를 '남은 백성'이 되게 하신다.

 '저는 자'의 아픔을 가지고

말씀 앞에 지금까지 기어서라도 오기에

주님은 그런 나를 '남은 백성'삼아 주신다시는 것이시다.

힘이 된다.

위로가 된다.

 

'쫓겨난 자' , 그것도 멀리 쫓겨난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신다신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느낌은 다르다.

한번 더 어루 만지시는 것 같다.

어제는 쫓겨난 마음을 피하고자 ^^;;  연극을 다녀왔다.

'라이어라이어' 씨리즈 중 3탄.

굳이 알고자 하지 않았지만 '쿠팡'이란 싸이트에 들어가서 연극을 치니

20년간 시리즈로 3탄까지 제작이 되고

이 연극을 통하여 '황정민'...등의 날리는 배우들이 다수 픽업되었다길래

한시간 일찍 조퇴하고 (다른 의사 있어서 괜찮았다.ㅎ )

좋은 날씨에 - 난 춥고 쾌청한 날씨를 좋아한다. . - 카메라 어깨에 메고

전철을 타고 1시간 40분 정도를 걸려 대학로에 도착했다.

사진은 전혀 못찍었지만 그냥 사진은 내 자유의 상징이다.

그냥 변하지 않는 일상에서 피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연극은 너무너무 재밌었다.

배우들이 사랑스러웠다.

한참을 웃고 한참을 걸려서 다시 돌아 왔지만

마음은 더 무겁다.

이 시간에 기도를 했으면 뻥 뚫렸을 것을...

그렇다고 그러한 부담은 없었지만

내 쫓겨난 듯한 마음에 밀려서 그랬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쫓겨난 자들을 '강한 나라 ' 만드신다니

이 아침 , 조금 일찍 일어나 내 화장실 기도처 ^^*에 앉아 묵상하니

기쁨이 몰려 오려 함을 느낀다.

내 소망의 하나님이 또 말씀을 통해서 이리 만지시는 구나.

 

 

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그 분은 그러신다.

"네가 어찌 부르짖느냐?

 네 왕,

 네 눈에 보이는 목표 , 가치.. 등이 서서히 약해지고

 남아 있는 세월의 버퍼가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지고 (왕이 없어졌고)

 네 노력하여 이루려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 가서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처럼 그리 힘들어 (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함이냐?"..

 

맞지 않는가?

내가 저는 자같고

내가 쫓겨난 자 같은 마음이

그게 원인이 아니던가?

그래서 괜히, 유난히 고통함이냐?

 

 

 

10.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

    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그러나, 내 딸 시온이여...

내 사랑하는 주하인아.

해산하는 고통 같지만 '힘들여 낳으라'하신다.

'힘들여 낳는다"는 말씀이 가슴에 온다.

고통은 당연하다.

고통이 있는 것이 '낳는 결과'를 가져온다.

절대로 고통없는 해산은 득이 아니다.

진통은 '태아'에게는 폐속의 양수찌거기를 배액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산모로 하여금 '모성'을 크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고통이 없는 삶은 축복이 아니다.

저주다.

그래서 '힘들여 낳을 ' 당위성을

어제 괜한 흔들림을 가진 나에게 다시한번 확인시키시는 거다.

 

주님.

이 주일에 깨댣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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