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잿빛 눈 맑은 눈(룻2:14-23) 본문
제 2 장 ( Chapter 2, Ruth )
주여.
보잘 것 없으나
주님 안에서
당신의 피조물 자연의 일부임을 압니다.
내가
날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하소서.
^^*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남자 보아스가 - 배나온 중년이 아니었을까? ㅎ- 젊은 여자 룻에게
'이리 가까이 와서 떡 먹으라 '한다.
으...
무언가 수작이 벌어지는 분위기 아니던가?
배불리 먹이고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유치하게도 인부들에게 특별 대접을 주문하고
16.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그것도 모자라 더 많이 줍게
곡식을 조금씩 털어내라고 까지 한다.
그러면서 꾸짖지 말라한다.
듣는 남자들 기분 나쁘겄네..ㅎㅎ
유치한 플레이 보이의 작업 수단을 보는 것 같은 기분..
소름 끼치려 하네.ㅎ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한 에바라 하면 '22리터'
큰 콜라 한병이 1.5리터니
콜라병 큰통 15개 조금 못되는 양.
무게로 따지면 근 30키로 쯤 되는 양이니..
어이가 없다.
그 많은 양을 따서 일부려 버리고 있는 인부의 어이없는 표정들이 우습기도 하다.
그것을 아무 생각없이 줏어 들이는 룻의 두꺼운 얼굴도 생각하면 재미있다.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
에게 드리매
시모에게 들고 가는 나오미의 밝은 모습.
가난한 아빠가 아기 먹을 것을 들고 들어가는 그런 신나는 표정과 많이 닮아 있으리라.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확물로 시모를 기쁘게 할 생각의 룻의 심성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흐뭇하다.
그 얼굴이 마치 보는 것 같다.
20.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나오미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라는 이 축복이
늘 조건에 상관없이 남을 향한 나의 기원의 말이 되기를 원한다.
솔직히 오늘 그리 맑지 못하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급하다.
나오미의 이어서 나오는 말이 흥미롭다.
그녀는 보아스의 마음을 읽었다.
비록 보아스가 이후에 나오는 행동으로 보아
오늘의 저 친절이 반드시 '성적인 흑심'을 바탕으로 한 친절은 아닐지라도
호의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호의에 나오미가 자신의 며느리를 그에게 시집 보내려는 결심을 한다.
그 당시의 풍습이 그랬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아들의 부인을 남에게 보내려는 결심은
더구나 룻이 '먹는 것'까지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통의 사랑의 결단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간에
나오미와 보아스와 룻과 남자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흐름이 묘하다.
22.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마라.
이또한 묘한 말이 아닌가?
우리나라 삼류 에로 영화를 보면
옛적에는 뽕밭에서 남녀의 치정 사고가 많이 난다. ^^;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의미는 '바람피지 말라'라는 말과는 다른 이야기인가?
너무 나쁜 생각만 계속하나?ㅎㅎ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어찌되었든 룻은 '남의 밭에서 ' 다른 사람 만나지 않고
일편 단심 - 표현이 적합한지는 몰라도 ㅎㅎ -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 뿐 만 아니라 밀까지 추수 하였다.
나오미의 은밀한 지도에도 불구하고 일은 그리 쉽사리 성사되지 않는다.
보아스가 더 이상은 작업을 걸어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상은 흑심을 가지고 바라본 '두 과부 이야기' 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현대의 삼류 영화랑 일치하는가?
하지만 그게 정말인가?
보아스의 추후 행동은 결백하고
그 당시 풍습을 고려하고
예수님 계보의 여인들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영적인 면에서 보면
같은 내용이라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진 않던가?
보아스의 ' 善意 '
룻의 '純秀함'
나오미의 철저한 '以他的 사랑'
일군 들의 '순종과 남을 배려함'
룻의 '시모에 대한 사랑과 순진함'
이런 눈으로 보면 보아스가 저토록 선의를 베푸는 것은 자뭇 감동적이지 않는가?
가련한 여인을 가련하게 볼 줄 알고
선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고 베풀 줄 알며
그 당시 인권이라곤 존재하기 어려운 고대의 시대에 자신의 것을 베푸는 심성이야 말로
참으로 귀한 마음이다.
더구나 그것을 넘어서서 일군 들에게
룻 모르게 곡식을 털어 흘려 주라고 했던 배려.
( 절대로 알게하지는 안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코미디다.
생각해보라.
남자들은 털고 여자는 허리도 들지 않은 채 정신없이 줏어 가는 장면을...
강아지에게 고기 던져 주면 하나하나 주어 먹으며 따라오지 않는가?ㅎㅎ )
참 가슴 벅찬 감동이다.
눈을 선하게 바꾸면 그게 가능하다.
이전에는 난 '잿빛 눈'으로 세상을 그렇듯 보아 왔다
내 눈에는 보아스는 '젊은 여인을 유혹하는 혼인빙자 간음 범'의 전 단계 인물이었었다. ^^;
룻.
넋살 스럽게 호의를 받는다.
30키로 무게를 따면서도 이상을 느끼지 않았던가?
그 호의를 감사하며 안절 부절하지도 않더란 말인가?
눈을 바꾸면 이렇게 보인다.
그녀는 순수한 여인이다.
자신이 했던 사랑의 행동들은 그냥 그것일 뿐이고
보아스의 베푸는 애정은 그냥 감사한 일일 뿐이고
줍는 데 재미를 붙혀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
그냥 순수할 뿐이다.
우리 아내가 '신학교 다닐 때' 동급생 들이 백치같은 기질이 있다는 소릴 들었다며
그게 무어냐고 배시시 웃을 때
나도 따라 웃었다.
그 아내는 단순하고 강력하다.
영이 맑다.
가난하지만 사랑많은 장모님 장인어른 아래서 커서 인지
별로 의심이 없다.
그게 나랑 어떤 때는 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했다.
남을 의심할 줄 모른다.
지금껏 날 의심했던 경우는 한 두번 정도 .
그것도 약간 꺄우둥하다 다음 날이면 전혀 ........
지금은 그 아내의 그 것이 맑음임을 안다.
그 맑은 기도 탓에 나의 오늘이 여기까지 왔다.
그 아내의 그 단순한 믿음 탓에 이 시간 난 '블로그'에 '묵상을 올리고 있다.
이 강력한 골수 불신자 강팍덩어리 '주하인'이...
아마도 룻은 그런 심성이 몇배는 더 했으리라 짐작한다.
첫날 부터 대박을 터뜨린 것만을 기뻐하며
배고프실 시모를 위해 '룰루 랄라'하면서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30키로 되는 무게를 무거운 줄도 모르고..
나오미.
그 지혜로운 여인은 그게 평범한 일이 아님을 벌써 눈치 챈다.
물어보는 첫마디가 '주인이 누구더냐' 아닌가?
세상을 많이 살아본 자로서 30키로의 곡식이
이삭줍기로서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아는 것이다.
그러면서 룻으로 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그녀는
벌써 '보아스'의 깊은 속내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음란을 읽은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밀추수 보리추수 끝날 때까지
아무 작업도 걸지 않고 기다리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꽃뱀이나
앵벌 계통의 심성의 흑심(^^;;;)을 품었더라면
벌~써 그날 저녁에 밤이 맟도록 계책을 꾸몄을 것이다.
그녀는 젊디 젊은 룻의 앞날을 위하여 걱정하던 차
그녀의 영혼에 하나님이 영원 전 부터 예비해놓으신
계획 , 즉 룻의 몸을 통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한
뜻이 감지 되게 되었을 것이다
성령께서 그녀 자신 도 모르는 느낌을 주고
어떤 확신을 가지며 한마디 하게 했을 것이다.
' 다른 밭에서 남을 만나지 말라'
이것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때가 되면
깨끗한 , 의혹이 없는 관계로 보아스의 배필이 될 운명이 되게 하기 위한
자신도 모르는 결심이 틀림없다.
주님은 이렇듯
이전의 행실 - 그녀가 순수한 처녀가 아니지 않는가? - 과는 상관없이
현재 이후의 주님의 성령의 감동아래서 순종하는 자를 통하여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기왕이면 '마리아'처럼 순수지신이 처녀를
보아스보다 훨씬 젊고 왕자 같은 남자를 만나게 해서
예수님 계보를 꾸몃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으셨다.
눈을 바꾸니 이렇듯 생각되어 지는 것이 많다.
이 바꾸어진 내 영혼의 눈은 웬일인가?
모두 주님의 은혜다.
주님의 은혜.
그러시다면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나를 룻에다 대입시켜 보았다.
호의 .
남의 호의를 받으면 난 어떻게 반응하던가?
솔직히 남에게 도움 받는 것을 못한다.
아쉬운 소리도 잘 안한다.
남에게도 그렇다.
그것은 웬일인가?
호의 베푸는 보아스 같은 자를 '흑심'을 가진 자로서 삐닥히 보고 있는 적이 많았다.
이차 지각 체계.
한번 비틀어 보는 것.
그러기에 삶이 그리 개운치 만은 않는 행로를 걸어왔다.
이제라도 그래야 된다.
단순하자.
호의를 받아 들이고 맑게 보자 .
보아스에 대입해 본다.
남이 뭐라 할까 진정한 배려 조차도 조심스러워 한다.
그러다 만다.
그 사람처럼 있는 대로 베풀지 못한다.
난 많이 일상에서 막혀 있는 부분이 있다.
좋은 것은 좋게 베풀고
기쁜 것은 기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나오미에 대입해 본다.
자주 은혜 가운데 감동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 그것을 실행하고자 할 때
내 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위의 흑심의 눈으로 바라본 생각들....
이제 주님의 뜻이라면 선한 선택을 하자.
남을 위한 것이면 단순히 베풀자.
남을 위할 수 있어야 한다.
돌아보면 참 좋지 않은 소리 들이 내 속에 있었었다.
이제 주님을 믿고
주님의 주시는 선한 영감이 어떤 것인지 뚜렷이 안다.
그럼에도 아직도 완전히 벗어 버리지 못한
이 생각들.
주님이 곧 가져 가셔서
위의 어두운 눈 대신
맑고 선한 성령의 눈으로 날 채울 날이 곧 오리라.
내 완전한 성화의 그 날을 위하여..
적용
1. 선한 것은 선하게 받자.
2. 안 좋은 것도 주님의 뜻 안에서 선하게 생각하자.
실제가 주님이 원하시는 뜻 아니던가?
3. 사랑하자.
사랑 만이 내가 해나가야 할 가장 귀한 삶의 태도이다.
4. 성경 일곱장 읽겟다.
5. 호의를 호의로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성령이시여..
6. 축복의 말을 입에 많이 담자.
"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7. 몇달 전에 여러번 찾아와 도움을 청하던 '선교사역' 하는 청년이
개인적으로 제법 많은 후원을 요청해 와서 망설이던 중
아내와 기도하고 나서 그러마 했다.
그리고는 자동이체하며 주었다.
그 후로는 연락이 없었다.
연말도... 연초도.......미리 메시지를 보내도 답도 없다.
그리고는 오늘 왔다. 인사드린다고...
젊음의 치기라고 생각하지만 속이 좀 상한다.
주님은 그것도 선하게 받으라고 하시는 모양이다.
호의와 선한 눈.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
선한 눈으로 보라신다.
어렵긴 하다.
8 . 과거는 흘러갔다.
과거는 더 이상 족쇄가 되지 못한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다 아문다.
과 부 룻이 보아스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 때는
처녀가 아녀도 선한 순수한 영혼의 여자였다.
세상의 모든 상처로 고민하고 죄로 고민하는 '주하인 같은 자'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모두 깨끗해지고
성령으로 인하여 주님의 뜻 가운데 크게 쓰이고 치유됨을 믿자.
샬롬.........................하자.
기도
주여
단순하고 선한 마음을 주소서.
선한 호의를 기쁘게 받아 들이게 하소서.
잘못한 것은 얼른 돌릴 수 있는 회개의 영을 허락하소서.
주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은 성품은 버리게 하소서.
걱정과 근심은 내려 놓게 하소서.
귀한 하나님 ..
나를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이 넘치는 단순한 자가 되게 하소서.
눈을 맑게 하소서.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고
그 눈으로 내 속을 들여다 보게 하소서.
내가 날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자신 감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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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은혜(이정림) -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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