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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邦人 (룻 2:1-13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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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邦人 (룻 2:1-13 )

주하인 2009. 7. 15. 08:51

제 2 장 ( Chapter 2, Ruth )

 

 

일요일

성가대 연습 중에 엄마 따라온 아가.

성가대원은 아니지만  먹을 게 생긴다.ㅎㅎ

 

우연하게 엄마의 아기로 태어 났지만

아이는 분명코 복을 얻는다.

먹을 것도 생겼지만

하나님의 아가이지 않은가? ^^* 

 

얘야..

죽을 때까지

주님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거라~~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우연히..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히 생기는 일 같지만 절대로 우연히가 없다.

우연히 떨어지는 참새도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의 원함과 주님의 뜻 안에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세상은 그렇게 움직인다.

그러기에 걱정할 일이 없고 당황할 일도 없다.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난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 '

오늘 하루 특별히 더 인정하고 느끼기를 원한다.

 

 난 여호와께 복 받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난 내 이웃이 그리하길 원한다.

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되길 원한다.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참으로 부지런 하다.

참으로 성실하다.

 

 룻이 그랬다.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했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룻은 옳은 곳에 있다.

'떠나지 않고 '있다.

비록 그것이 이방여인으로서 전혀 다른 이질적 문화 속에 있어도

그것이 그녀가 있을 곳을 알기에 떠나지 않고 있다. 


  
  
10.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룻은 겸손하다.

땅에 엎드려 절한다.

 

 룻은 이방여인이다.

결점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곳에 있는 것이 옳은 줄 알기에 인내할 줄 아는 여인이다.

 

 룻은 감사를 할 줄 아는 여인이다.

사람들의 호의를 받을 줄 아는 여인이고 그것을 은혜로 받을 줄 아는 여인이다.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보아스가 말한다.

'분명히' 룻의 모든 것을 다 들었다고...

보아스의 입을 통하여 세상에서도 통하는 '진실'에 대하여 알게 된다.

 

 룻은 이방여인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녀는 낮은 존재로 보일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칭찬으로 받아 들여진다.

왜인가?

 분명히 들려오는 룻의 장점 탓이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였는가?
인종적 차별을 넘어설 만한 어떤 특질이 그녀에게 있는가?

 그것은 그녀의 나오미라는 '시모'에 대한 '사랑'과 의리다.

그 인간의 특질 중 가장 기본이고 가장 뛰어난 '선'을 위해

소녀라 이름 불리우는 젊은 이방여인이 그녀의 일생을 희생하여 가며

이방 민족 안에까지 뛰어 들어와 고난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필요한 '선한 성품'은

하나님의 선민 백성으로 자존심이 그렇게나 높은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것과 함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하나님의 신앙을 의지하는 것.

그것이 그들을 그렇게 감동 시키는 것이다.

 

  이방인의 감정.

세상 누구도 자신을 관심 두지 않을 것 같은..

자신만 세상과 다르고 누구도 자신의 깊은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고립감.

세상은 날로 날로 발달하여 누구나 원하면 앉은 자리에서

서로 서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네트워킹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욱 단절이 심해진다.

겉으로 활달하게 대화를 하는 듯하나

서로서로 원하는 것은 피상적인 것 뿐.

그러다 보니 눈에 보여지는 것 만을 위해

몸에 칼을 대는 것도 불사한다.

대화는 좋은 것만 이야기 하고 자신을 포장하는 기술 만 발달한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껍데기 만의 존재인가?

육신 만의 존재인가?
  그 육신 안에 거하고 있는 영혼은 날로 허전해진다.

아니, 허전해진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고립되어 간다.

마치 세상 속에서 분주히 살고 열심히 관계를 맺고

촛불을 켜면 자신이 그 속에서 환영 받는 자 인줄 알고

열심히 그 불빛 밑에 비춰진 자신의 몸껍질이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참여하고

그 군중 속에 들어간 자신의 모습이 지식인 인줄 알고 참여하지만

실은 그 군중 속에서도 탄탄히 갇혀진 자신의 몸속의 영혼은

자꾸만 외로움을 금할 길이 없어져간다.

그러다 보면 약간의 자극에도 심히 흔들려 버린다.

영혼 전체가 파멸될 듯 허약해져 간다.

 그 공허함.

 그 외로움

 그 이질감

아니, 그 보다  그토록 자신의 몸이 속해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 공허함, 외로움, 이질감이 생기는 그 괴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견디지 못하여

대 지진을 일으켜 버린다.

그들은 그래서 쉽게 자신을 버린다.

 '우울증'

  '자살'

유명인, 어른, 아이, .........상관없다.

그러다 보니 똑같이 허약한 수많은 현대의 이방인들이

잠재적 자살자로 그들을 공감하고 동참하려 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러한 이방여인 같은 의식은 '사단의 궤계'이다.

눈에 너무 뚜렷이 보이는 유치한...................

 

 얼마전 부터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다.

C국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기독교 단체의 지원 모임에

의료지원 단장으로 참여 해달라는 원장님의 부탁을 받고

눈치를 보아가며 그러마하기는 했지만

그 창립총회 날짜가 다가오며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임원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의 이름이 대단한 분들 뿐이다.

 속에서 또 오래된 감정이 스물거린다.

'나 같은 자가...............'

 

 룻의 상황에 들어 가 보았다.

 

'온통 나와는 다른 사람 들 뿐이다.

 난 이들이 무시하는 '모압'사람이다.

 난 과부다.

 난 힘도 없다.

 난 아무도..........아는 사람이 없다.

 나............................는....................'

  그러나, 그러한 룻의 있을 듯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룻은 차분했고

룻을 대하는 사람들은 호의적이고

보아스는 오히려 칭찬이 대단하다.

 왜인가?

거기엔 '분명코'라고 한 이후의 말에 이유가 나와있다.

그들은 룻의 선행을 들었다.

그의 며느리로서의 덕행을 들었으며

의리를 들었다.

그리고 일을 열심히 하는 - 열심히 하였지만 그녀도 쉼은 가졌다 - 성실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가 이방  과부 여인이었지만 받아 들였다.

아니 받아 들인 정도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었다.

 

생각할 것은 무엇인가?

 우선 '사랑'과 '의리'등 가장 기본적인 것 만이 '벽'을 무너 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방인과 선민의식 사이에는 얼마나 큰 벽이 존재할 것인가?

위에 썼지만 영혼을 고립시키는 그 이방의식의 벽-외로움-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병이 아니던가?

 또한 , 사랑 만이 사람과 사람 사이 뿐아니라

자신과의 타협을 이끌어 내는 기본적 진실이라는 이야기다.

룻은 엄연히 열등의식과 눈치와 가슴앓이로 자신을 병들일 이유가 다분하다.

그러나, 그녀는 건강하다.

시어미 나오미를 모셔두고 온갖 핍박이 예상되는 들판으로 일을 나왔다 .

 땀을 흘려 일한 후에 잠시 쉬고 난후 다시 열심히 일을 하는

건강한 노동을 아는 자이다.

 절대로 workholic (일중독자)가 아닌 것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여인이다.

그러한 그녀의 선한 성품은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기본 만으로 가능한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자들인가?

절대로 착한 사람이라고 이방 사람들을 받아들일 자가 아니다.

룻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의리 하나가지고 그 상황에서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처음 묵상 시작에 '우연히' 보아스가 있는 곳에서 일을 시작하였다고 나온다.

우연이 우연이 맞는가?

우연이 위에 지속적으로 설명하는 '이방인이, 스스로에게, 남에게 ' 받아 들여지는 현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전혀 별개라고 설명하기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던가?

 이런 것이다.

 당연하지만 세상의 어떤 일도 주님의 뜻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세상일이 꼭 우리가 바라는 선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룻만해도 보라.

기본적으로 선하고 사랑이 많은 성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난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환란 덩어리다.

그러나, 우연처럼

정말 우연처럼 바람처럼

보아스와의 만남이 이루어져 간다.

 그 우연을 통하여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신다.

그렇다면 환란과 고통이라는 인생의 빠질 수 없는 도구는

우연을 위한

어떤 도구이란 의미가 되지 않던가?

 그것은 돌려 말하자면

우리가 받는 환란이나 고통은

우리의 잘못이거나

우리와 연관을 맺고 있는 어느 분의 실수의 결과일 수 있기도 하지만

그런 모든 삶의 움직임을 통하여 '우연처럼' 가장된

어떤 필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져 간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안에서 우리의 선택의 결과로

인생의 그림이 그려져 간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없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선한 결심이 있으면

우리는 '건강하고 ' 축복 받은 삶을 살 수 있으며

우리가 가진 현재나 과거의 조건이 어떻든 상관없이

마치 룻이

모압여인으로서 예수님의 계보 안에 들게 된 것 처럼

모압여인으로서 대 환영을 받는 계기가 된 것처럼

외톨이 이방인으로서 겪을 고립감, 외로움 , 자괴감, 열등감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받아 들이게 된 것처럼

모든 상황을 이겨내는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그런 삶을 살 수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나 주하인은

모압여인 룻 같은 마음이 아직도 많다.

C국 의료지원 단장으로서의 나를 아직도 용인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많은 부분...우리 주님은 내 일상에 축복을 퍼 부어 주셨다.

내가 크게 기도하고 바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우연처럼 다가온 주님의 손길은

그 이방인 같은 나를 많은 부분에서 칭찬을 받게 하고 이해를 받게 하시고 축복을 주셨다.

마치 룻이 받아 들여진 것처럼..

어쩌면 난 나 스스로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되겠는가?

룻은 어떠한 마음으로 그 녀 자신을 그들 이스라엘 타민족 속에 들어가게 했을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어머니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이 그것이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C국 지원 단장도 주님이 허락하신 우연의 연속 속의 하나이다.

내가 해야 할 것은

그런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지금껏 훈련되어온 나의 그나마 좋은 성품인 '성실성'을 통하여

'사랑'의 훈련을 더 하면 된다.

주님이 원하시니 그러할 것이다.

그게 주님의 나에 대한 뜻이시다.

 

 

적용

 

1. 나를 사랑하리라.

  나는 주님이 사랑하셔서 동행하시고 축복을 베푸시는 자이다.

  그런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2. 우연처럼 다가오는 모든 것은 주님의 뜻이다.

 주님의 뜻 안에서 '사랑'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리라.

 성령의 열매 안에서 모든 것을 보리라.

 

3.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

 버걱거리는 내 심사를 가지고도 그냥 열심히 살자.

주님이 아실 것이다.

 

4. 나를 축복하자.

 나는 주님이 동행하시는 자다.  

 

5. 남을 축복하는 자가 되자.

 너는 여호와의 축복이 함께 하는 자다.

 

6. 성경 일곱장 읽겠다.

 

7. 세상 모든 일은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자.

  우연처럼 보이는 일도..

 내 고통도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8. 남을 의식할 일이 없다.

  의식으로 해결될 일이 없다.

  가까운 이 들을 사랑하고 배려하자.

 주님을 의지하고 기다리자.

  사랑하고 배려하자.

  그러면,  주님이 인도하신다.

  남들의 인정은 주님이 알아서 가져오신다.

  경험으로도  안다.

  체험으로 안다.

 

 

 

 

 

기도

 주님.

그렇습니다.

룻이 보여주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룻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받아들여짐과 칭찬과 사랑이 베풀어 짐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 괜한 부정적 판단의 제한을 둘 필요가 없음을 또한 번 보고 있습니다.

우연처럼 다가오는 모든 일이 실은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을 또 보고 있습니다.

주여..

사랑으로 깨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음을 보고 있습니다.

인종편견, 재정적 편견 마져

룻의 사랑과 인내와 더해진 하나님의 역사로 인하여

마치 살얼음 봄빛에 녹듯이 없어져 버리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이 어지럽고 말세의 세상에

온통 사단의 발톱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와 서로에게 의지하다가

깊은 상처를 입어가며 고립감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지요.

정말 두려운 것은

진리이신 하나님 그 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원리 속에 거하려는 약간의 노력만이 있으면

그들은 회복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기독교'인을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받도록 획책하면서

그들에게 기회 마져 박탈 시켜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여..

정말 이러한 이방인으로서의 고립이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파멸의 징조가 되고 있습니다.

주여 .

오직 주님 만이 기회입니다.

이 세상에 다시한번 주님의 큰 손길을 펴소서.

이들에게 천국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베푸소서.

이 이방인의 시대에 다시한번 긍휼을 베푸소서.

주여.

저의 남아 있는 이 이방적 성향을 다시 한번 더 제하소서.

주여.

주님 만이 답입니다.

주님 만이 기회입니다

주님 만이 제 유일한 도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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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은혜(이정림) - 펌 

 

내 힘으로 안되는 것

하나님이 해결하셨고

내 모든 계획 하나님 뜻대로

아름답게 이루셨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도와주셨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니

나의 삶은 하나님은헤라

오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은혜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은혜라

하나님은헤라

지금의 나 된 것은

 

 

미련하고 부족한 나를

하나님이 불러 주셨고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바꿔

하나님이 사용하셨네

여호와라파 하나님이 치료하셨고

엘로힘이 하나님이 능력주셨고

여호와 샬롬 하나님이 평강을 주셨으니

나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라

오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은혜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은혜라

하나님은헤라

지금의 나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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