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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하고 있는가 (룻 3:1-13 )

주하인 2009. 7. 17. 10:22

제 3 장 ( Chapter 3, Ruth )

 

 

 

 

세상이 온통 어두워져도

온갖 더러움이 전선줄처럼 얽혀져 있어도

나 하나 만이라도

오직

주님의 빛을 밝힐 수 있는

그런

등불같은 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여.

 

 

 

 


1.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룻은 자신의 역할이 '룻'의 장래를 이끌어 주는 것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이 '말'....

 분명코 '꽃뱀 姑婦' 간의 대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이 말이

그런 음란하고 간교한 대화가 아님은 어제의 묵상에서도 썼었다.

이 대화는 그날 저녁 당일의 모사가 아니고

보리추수와 밀 추수가 끝난 후의 .. 시간이 한참 지난 때의 대화다.

 즉, 굉장히 의미가 있고 현명한 지시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생각할 게 몇가지 있다.

 

우선, '타이밍'이다.

하필이면 왜 이때에 얘기 했을까?

 정해진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모사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아침에 직원예배가 있었고

거기에 '외과 닥터'로 근무하던 L선생이 'N'국으로 선교사 나가기로 결정되어

선교사 파송식이 같이 베풀어 졌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던 중

훈련 도중 ' 아내와의 갈등'이  힘이 듦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 구절에

'연약한 그릇'의 자기와 '더 연약한 그릇'인 아내 -남편이 될 수도 있다.- 에 대한 묵상을 하며

그 문제가 비단 자신 부부 싸움 문제 만은 아님을 깨달았다고 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자꾸만 강해지려 하는 게 요즈음 기독교계의 추세였고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아내 뿐 아니라 근무하는 동료들에게도 자신이 옳고 강하다는 개념으로

주위에 많은 고난을 끼쳤음을 회개하고 사과한다고 했다.

 더불어 우리 기독교인들의  그러한 태도가

비 기독교인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맞는 말이다.

 선교지에 나가던 어느 자리에 있던 '연약한 그릇'으로서의 자신을 이해하고

'더 연약한 주위 사람'들을 배려 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면서 자꾸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진짜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란 말을 했다.

그리고 주님이 하시도록 기다리는 것이라 하였다.

  옳다,.

 난, 여러번 이 블로그에다 내 이야기를 썼었다.

개인 의원 원장으로 '낙태'와 '분만' , 그리고 '제왕절개' 이외의 것을

다 잊어버리고 있던 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하여

지금의 샘병원, 이 선교 병원에 와서

내 모든 삶의 패러다임이 지축부터 바뀌고

진료의 능력 마져  '복강경'이란 최신 기법으로 개조되기 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정말 놀라왔다고....

 복강경시술을 시행케 된것은 정말 간증거리다.

그 시술을 시행하게 된 극적인 계기가 있다.

그 계기는 어느 때인가  '하루 아침에 바람처럼 찾아 왔다.'

 우리 병원 'H'원장님의 수술 때 '대학병원 교수'님 초빙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내 속에서 강한 '원함' 이 생겨나고...

한번 본 시술에 강력한 자신감이 몰아치며 수술의 능력이 '확' 배가 되었었다.  

그 후 순탄한 변화가 왔다.

 진료실은 날 찾는 환우 분들로 급작스레이 늘어나고.........

 

 오늘 나오미에게 그런 결단의 시간이 '급작스레이 ' 찾아왔다.

그 결단은 자신의 결단이 전혀 아니다.

자신의 계획 속에 있지 않다.

하나님이 연약한 그들 고부의 주님을 향하여 열린 마음에

'때'를 알려준 것이다.

확신할 수 있다.

오늘 묵상구절에서 가능치 않은 결단이 스르르 이루어지는 것도 그렇다.

많은 성경의 예에서도 그렇다.

그것은 내 경험에 의해 맞추어 보아도 그렇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다.

그 계획은 어떻게 짜여진 것인가?

난, 평상 시에도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다

새로운 수술 기법, 기계, 사진, 블로그, 악기,....

 나오미는 세상의 흐름을 잘 읽고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 '사랑하는 자의 장래'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 그런 그녀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찾아온 것이다.

추수가 모두 끝난 후에야.....

 

 그리고 , 그런 생각이 어떻게 보면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방법일 수 있으나

'선'이라는 측면에서 어긋남이 없기에 그녀는 망설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녀의 결단.

자부의 장래를 '멘토'하는 입장에서 어찌 그리 당당히 할 수 있는가?

위에 이야기 한대로 주님의 때에 주님의 느낌대로

인간적인 지혜에 더불어 '책임감'이 그녀를 당당하게 만든 것 같다.

 


 
5.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그러나, 룻의 순종이 없다면 그게 가능할까?

 

 난 저 나오미의 결단을 보며 마음이 답답함을 금할 길없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 답답함은

내 자식들을 과연 내가 옳게 이끌고 있는가?

난 내 주위와 사회에 대하여 저니와 같은 멋진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가...다.

 분명코 저런 순종을 보이는 '주위'는 없기는 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으로 '순종'을 배우게 하는 것도

리더나 가장의 덕목 중의 하나일 듯 싶다.

 

 
 
 
10.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

      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를 보라.

참 좋은 덕목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님 계보에 이름이 들어갈 만한 자이다.

 

 자신의 침소에 들어온 여자를 보고 오해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축복한다.

 

그리고 그녀의 본심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난 네가 현숙한 여인인 줄 안다. '

 

 
12.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그러면서 '원칙'을 지키는 자이다.

자신보다 더 우선 순위가 있는 자를 먼저 생각한다.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지니라
  또한 , 절제하는 자이다.

보라.

이 밤을 여기서 머무르라고 하지 않는가?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남자다.

늑대다 . ^^;;

천명의 여자를 마다 하지 않는 것이 남자다.

그럼에도 그분 보아스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성적으로 분명코 무능자가 아니다.

기업으로 무를 각오를 할 정도의 건강한 남자다.

 

 또한 배려를 하는 자다.

그 저녁에 여인을 돌려 보냈더라면 그 여인의 자괴감은 어떠했을까?

정말 훌륭한 자는 남의 아픔을 배려하는 자이다.

난 어떤가?

회개할 일이 너무 많다. .......오늘...

 

 그의 모든 선한 결심의 중심에는 '책임감'이 있다.

'책임'이라는 언어가 네번이나 연속하여 

13절에 나온다.

 

 이 '책임감' 

책임감이 무엇인가?

책임감은 나와 남의 관계 속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난 의사다.

어떤 책임이 있는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정직하고 성실하고 정확한 진료를 베풀어야 한다.

 난 아버지다.

 아들 들에게 사랑이 넘치며 자애롭고 듬직한 모델이 되어야 한다.

나오미가 룻에게 베푼 지혜와 결단으로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

 난 남편이다.

보아스와 같이 배려심 넘치고 이해심 넘치는 자여야 한다.

 난 가장이다.

책임을 지고 그들을 먹여 살리고 가족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난 집사다.

교회에서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십일조의 책무를 다하며

술을 멀리하고...................해야 한다.

 난 아들이다.

어머니 아버지께 효성스러워야 한다.

....................

난 사회인이다.

이 사회의 건실한 유지를 위하여 세금을 내야한다.

나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순종'하고 '협력'할 의무가 있다.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 서로서로 도울 책임이 있다.

.............

난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 중에서도 더욱 주님의 사랑 받는 자이다.

내 사랑을 , 내 기쁨을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난, 잘 하고 있는가?

 

 지금같이 '포스트 모더니즘'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는

오직 '자신의 느낌' 밖에 기준이 없기에

책임감이라는 것은 애초 부터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세상은 마구 미쳐 돌아간다.

마구 자살한다.

마구 미워한다.

마구 쎅스한다.

마구 고친다.

마구 버린다.

마구 모인다.

마구 욕한다.  

정말 마구.........다.

 책임이 없는 세상.

나 밖에 중요한 것이 없는 세상.

그것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아니, 지옥이다.

 

 책임

정말 중요한 가치.

주님이 베푸신 성령의 열매가 세상에 골고루 퍼져 가기 위한 중요한 덕목. 

오늘

나오미와 보아스 두 분을 통하여

책임감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한번 묵상케 된다.

 

 

적용

 

1. 난 책임있는 자 임을 잊지 말자.

 건전한 사회인의 책임이 필요하다.

 C국 의료 단장은 내가 적임일 수 있다.

 아니라고 도망가고 싶음은 '책임회피'다.

 주님.. 이해하고 받아 들이게 하소서.

 

2. 책임을 베풀 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관계' 속의 나를 이해하는 것이다.

 난 아버지다.

 난 아들이다.

 난 남편이다.

 난 의사다.

 난 사위다.

 난 교인이다.

 난  이러이러한 달란트를 가진 자다.

 난.......................

 

3. 성경 일곱장 읽겠다.

 이것은 나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 자식의 장래를 위한 결심이기도 하다.

 

4.  모든 때는 주님의 뜻에 속해 있다.

 책임져야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임 조차 주님의 뜻에 달려 있다.

 단, 난 책임감 있는 자가 되겠다는 결심 만이 필요하다.

 

5.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

  남의 입장에 자꾸만 서려는 노력을 하자.

 이해하려는 결단을 하자.

 나오미와 보아스는 모두 배려심 깊은 자들이다.

 그들을 통해 주님이 이 땅에 오시었다.

 

6. 원칙을 지키자.

 보아스는 그 저녁에도 여인을 지켰다. 

 기업무를 자를 선택하는 원칙을 지켰다.

 

 

기도

 주님.

참 많은 부분에서

저는 대 변혁을 일으켜져 왔습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전혀 저의 능력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전혀 나이가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나이가 아님에도 그래서 감사합니다.

오직 주님이 임하셔서 한 것임을 알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저,

약한 자를 통하여 그리 되심을 알기에 감사합니다.

주님.

지금껏 저의 내부를 변화 시켜오신 주님.

이제는 눈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주의 뜻대로 그들에 대한 책임의식 있는 눈을 가지길 원합니다.

아직 내 속은 꺼멓게 그으른 부분이 없지 앉지만

그럼에도 책임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배려하는 선택을 하면

내 속이 변하고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주여

제가 누군지 스스로 잊지 않게 하시고

주여 제가 스스로를 기뻐하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변하게 된

아니,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온전하게 될 제가

마치 보아스와 나오미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배려를 하고

그들에게 가르칠 책임을 가지게 하소서.

주여.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만 가능함을 고백합니다.

그런 책임의 선택 마져도 주님이 인도하소서.

난 바라고 선택할 뿐이오니

지금껏 그리하셨듯이

이제 세상에 대하여 책임있는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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