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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가는 자와 살아 있는 자( 렘22:10-19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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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가는 자와 살아 있는 자( 렘22:10-19 )

주하인 2009. 10. 19. 11:31

제 22 장 ( Chapter 22, Jeremiah )

 

 

주여

 

주님 앞에서만

불어올리는

주님의 나팔수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은

제 과거를 불어 올립니다

죽은 제 과거를 씻으소서

저로 인하여 아파하고 있는

제 가족들을 위해 불어 올립니다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인하여

더 이상 엵이지 않게 하소서

아픔을 씻으시고

원망을 내려놓게 하시사

더 이상

잡혀있는 자 되지 않게 도우소서

 

주님의 영광과 평강하에

현재와 미래를

누리게 도우소서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 너희는'

늘 묵상의 중심은 '나'다.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는.. 은 나같은 자들 모두를 말씀하신다.

 

 죽은 자.

이미 지나간 것.

되돌릴 수 없는 것.

 그를 위해 울지 말고

그를 위하여 애통해 하지 말라.

과거.

엎지러진 물.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산다는 것은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

과거에 배운 것들.

과거에 한 잘못들.

과거에서 내려오는 상처들.

...........

모든 과거에 의하여 죽어가는 현재는 내 잘못된 선택에 달려 있다.

주위 환경이나 유전적 영향이나 ...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그 결과물인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 내 선택에 달려 있다.

알코올 중독의 아버지 어머니 (비록 우리 어머니 아버진 아니지만... )

경제적 어려움

친구 관계에서 빚어진 실수........

도저히 용서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거기에 내 최종 결정이 남아있다.

어떤 사람은 지독히도 어려운 환경에서 인간승리를 보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지존파나 강호순 같은 극단적 결과를 가져오는 사람도 있다.

 용서를 선택하고 미래를 선택하느냐

원망을 선택하고 과거를 되씹기를 선택하느냐 차이다.

 

 날 돌아본다.

날 오랫동안 어렵게 했던 그 힘듦의 이유는

이제 돌아보면 '용서를 하기 싫어했던

' 내 잘못된 결심'에 따라 이루어진게 거의 대부분이다.

내가 그리도 힘들어하던 그 환경은 돌아보면 이해할 만한 부분들이 많았다.

속상하던 그들의 나에 대한 대우들도

돌아보면 잘못 표현된 사랑의 일종이었기도 하다.

그 때의 그 분들 나이의 나는 어쩌면 훨씬 더 유치한 자였었던 것이 맞다.

내 잘못은 그들을 그때는 당장은 어려서 안되었을 지라도

크면서 하루라도 빨리 깨닫고 용서를 선택했더라면

아무것도 아닐 잘못들이었다.

 난 돌아보면 지금이나 그 때나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최소한 '동기'면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내 자식들은 나를 보고 아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현재'는 환경과 유전적 배경 하에 나의 잘못된 선택에 의한 조합의 결과다.

내가 살아 있는 생명의 삶을 사는 것은 '용서'와 '이해'를 선택하는 것의 결과이고

내가 죽은 과거에 잡혀 있는 것은 '원망'과 '미움'을 선택한 결과이다.

그것이 현재의 내 삶의 형태를 결정하고 있다.

 내 삶이 우울하고 힘이 들고 무기력한 '죽을 것'만 같은 데도

내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게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것이다.

그 죽은 과거를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것인가?

그 이야기는 비단 나의 문제만이 아니다.

 내 잘못된 선택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가까운 자들에 대한 '죄책감'문제도 포함이 된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고 회개할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과거에 매달려서 가슴 아파만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갈등'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 갈등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말씀 앞에서 침잠하면서

서서히 엹어지고는 있다.

솔직히 난 이제는 내 어려웠던 고난과 고민의 여정이

조금씩 감사해지기까지 하고 있다.

세상을 쳐다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더 폭이 넓어져 있다.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내 의도의 체질화 되어감은

나로 하여 눌려 있던 많은 감성의 개발을 가져왔다.

말씀을 읽어가며 감사의 조건이 더 많아지고

풍성한 감성으로 성경의 구석구석까지 이해가 되는 폭이 넓어졌다.

이제 과거는 최소한 나 개인에 있어서는

꼭 '지우고 싶은 ' 고난이나 '지독한 고통'으로 인하여

현재의 나를 죽이는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풍성한 미래를 약속하고

여유로운 현재를 누리도록 하는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하시는

'잡혀간 자''에 대한 묵상은

나와 연관되어 아직도 과거의 선택의 오류를

자신의 것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자들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죽은 자'는 그들과 엵힌 과거에 대한 내 죄책감 내지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의 과거에 대한 아픔을 말씀하시는 것일 수 있다.

 그들과 더 이상 과거에 대하여 논란을 하지 말기를 권유하시는 듯하다.

그들에게 아픔은 미안하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지만

더 이상 아파하고 그들과의 해결하지 못하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기를

말씀하시는 듯하다.

 이제 현재의 그들의 과거에 대한 잡혀갈 상태 - 원망, 분노, .....등 , 사단의 감성-에 대하여

미안해하고 아파하기 보다는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하여야 할 상태이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유는

그 과거의 죽을 죄로 부터 '사'함을 통해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신 데 있다.

부활하심으로 성령을 준비시키시고

그 성령이 내 영혼에 주님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연결시키시게 하는 데있다.

 십자가로 인하여 죽음은 떠나가고  생명은 가까와 진 것이다.

 

 저녁에 자기 전 테라스 밖 창문으로 내다보았다.

산허리에 십자가가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서 있다.

뒷 능선 너머 거대한 하늘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에너지가 뭉쳐 있는 듯하다.

그 어두운 하늘은 그 전능하신 분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사단의 방해인 듯..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 내려오신 '십자가'라는 형상물을 통해

예수님을 마음 속에 받아 들이고

그 십자가를 컴퓨터 단말기 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하나님이라는 어마어마한 씨스템과 연결되는 것이고

십자가 컴을 켜는 순간

하나님의 위대하고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성령의 라인을 타고

내 영혼과 연결되어 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죽은 과거를 십자가 앞에 내려 놓아 왔었다.

그 개념이 뚜렷하지 않을 때도 ..

난 그 십자가를 통하여 '성령'께서 내 영혼에 접속을 하셨고

그 때마다 주님 하나님의 놀라운 에너지가

사단 바이러스로 헝클어진 내 영혼 하드디스크를 청소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바이러스가 조금씩 가끔씩 반항을 하지만

내 영혼 디스크는 조금씩 깨끗이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 컴을 운행하는 주체인 '나'는

나 혼자 만 고립되어 살아가는 그런

비 넷트웍 컴이 되어서는 안된다.

 내 자식 컴들에게도

하나님이 연결되도록 하여야 한다.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죽은 과거에 의하여 흔들리고 있음을

과거 바이러스 에 감염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주님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난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 늘 중보기도를 해야한다.

아파하고 미안해 하기 보다는

안타까워하고 잘되도록 중보하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인내해야 한다.

그들의 영혼을 위해 진심으로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길

슬피 우는 긍휼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걸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주님은 늘 나를 바로 잡아가시길 원한다.

많이 깨끗해졌으나 아직도 오동작을 하는

이 영혼디스크의 가치 체계를 바로 잡길 원하신다.

세상의 너무도 혼탁한 영적 인터넷에도 그리되길 바라신다.

난 그들을 위해 '슬피 울어야 한다'

 

 

 

적용

 

1. 과거는 내려 놓는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미안해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현재를 슬퍼할 것이다.

 

2. 자식들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으시길 기도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생긴일임을 깨닫고

 내가 주 안에서 그랬듯이 '용서'하는 결단을 하길 원한다.

  그들이 세상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올바로 서길 기도한다.

 

3. 과거의 죽음의 힘은 너무 강하다.

  가정 안에 사랑보다는 아직 갈등이 강하다.

 이것은 비단 우리 가정 만은 아닐 것을 확실히 안다.

 아버지 학교를 통해서, 진료실 경험을 통해서...

 과거로 부터 자유로움은 '십자가'를 통해서 만 가능하다.

 주님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또다른 당위성이다.

 

4. 현재를 열심히 살자.

 나에게 주어진 의사, 아버지, 남편, 아들, 사회인...

그리고 무엇보다 '집사'로서 최선을 다하길 결심한다.

 과거는 주님께서 해결하셨다.

 앞으로도 계속 바이러스를 잡아가실 것이다.

 

5. 성경 일곱장 읽겠다.

 

 

기도

주님.

살아가는 것이 '희망' 만 있기를 원합니다.

과거,

도저히 돌릴 수 없는 죽은 것들에게서

더 이상의 악영향을 받지 않길 원합니다.

 제 개인 적으로 이제 많은 부분 용서가 되고 융합되었으나

저로 인한 제 주위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려간

악영향도 그리하소서.

그들을 자유롭게 하소서.

받아 들이게 하시고 용서하는 삶을 선택하게 하소서.

주여.

 혹여 내 자식들에게 악영향을 끼친게 남아 있다면

그들의 영혼을 깨끗이 청소하시오소서.

눈물로서 날 중보하게 하시고

가슴아픔은 이제 고만 남겨 놓으소서.

희망찬 미래를 위해 웃음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주여.

저에게 허락된 풍성한 삶을

제 자식들에게도 누리게 하소서.

 주여.

저로

그들에 대한 걱정을 내려 놓게 하소서.

주님이 다 인도하실 것을 믿게 하소서.

부족한 저의 믿음을 풀어 주소서.

현재의 어려움을 긍휼한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화'나 '억울함'이나 어이없는 사단의 눈으로 잡히지 않게 하소서.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께

십자가로 연결되게 하시고

성령의 선으로 이어주시는 하나님.

참으로 깨달음이 귀합니다.

늘 주님 아래에 가져와 십자가 단말기로 접속하게 하소서.

잊지 않도록 도우시고

주님 성령님께 늘 연결되어 있게 하소서.

하나님께 다 맡깁니다.

제 자신,

제 식구들.

모두 주님이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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