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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 곁에 있는 자( 렘22:20-30 )

주하인 2009. 10. 20. 11:21

제 22 장 ( Chapter 22, Jeremiah ) 

 

 

 

 

내 진료실 벽에 걸려진

詩畵, 아니 詩寫들.

 

오랜 묵상기간 동안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진들과 묵상 시들을 조합하여

저렇게 사진으로 만들어 벽에 걸어 놓았다.

지금은 조금 더 진화하여

벽면에 빈틈없이 채워가고 있다.

 

내 진료실은

외쳤던 기록들로 채워진

주님의 '화랑'이 되어가고 있다. 

 

 


20.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니라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 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2.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예레미야님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외칠 때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 까?

두려워서 벌벌떨까?

짜증이 나서 화가 올라올까?

나랑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죄에 무디어져 아무 상관없는 약장수의 소리처럼 들릴까?

그보다는 더욱 시급한 오늘 계약건 성사나 자식들의 대학진학 문제때문에

무슨 소리하는 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는 않을까?

...............

 난 어떠한 눈으로 예레미야님 같은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듣고 있을까?

아침 버스 안에서 묵상집을 펼쳐 놓고 잠시 상상을 해 보았다.

그분이 외치시는 내용은 절절히 무서운 말씀이시다.

나에 대한 이야기일까?

내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일까?

21절의 내용을 보아 추정을 해 보았다.

'네가 어려서 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습관이라'

 나.

아니다.

 내 아내

아니다.

 내 자식들.

두 놈다 세상적 기준으로 그리 뛰어나지 못하고

솔직히 아직 갈등이 잔뜩 내재되어 언제 폭팔할 지 모르는 상황의

아들들이지만 그 아이들의 어렸을 때 부터 모습은

아무리 화나도 '주님의 이야기'를 하면

다소곳해지고 '청종'하던 아이들이다.

청종치 아니함이 습관이던 아이들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난 오늘 예레미야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이

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님을 알고

일단 마음이 '휴우'한다.

 그 분의 외치는 모습이 '두손을 v 자로 벌리고 '

크게 외치는 모습으로 보인다.

 파워풀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시라면

나에게는 과연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일까?

 

  위쪽에 보이는 사진은

내 진료실 책상에 앉아 환우분과 마주 보고 있는 방향의 벽 쪽에 걸려있는 사진들이다.

 

 

 

 

좌측 벽의 사진들. (10 x15 inch size )

지금은 벽을 거의 채워가고 있다.

 

 좌측 벽에도 위의 사진처럼 사진들이 걸려 있다.

size가 각각 10x15, 11x14인치 로서 30-40cm 사이의 제법 큰 사진들이다.

그 사진들은 모두 내 블로그에 걸려 있는 사진들이다.

거기에 그날그날 묵상하며 적어 넣었던 글이

'詩畵'처럼 들어가 있다.

 주님이 허락하신 시간 동안

나에게 이루어진 내 작품 들.

그 사진들이 30여개나 빼곡히 내 진료실안에 걸려있지만

 내 진료실에 들어오시는 환우 분들 20여명 중 한분 정도만

사진이 걸려 있음을 눈치 챈다.

참~ 놀라고 있다.

다른 진료실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아닌가?
사진이 그리 걸려 있는 곳은 '화랑' 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진료하다가 농담삼아 '한번 쭉 돌아보세요.   눈에 띄는 것 없어요?' 하고

물어 보다도 이상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며

사진에 대하여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소수의 분들 중 '불신자 ' 몇 분은

이 사진과 '시'에 대하여 물어보면서

오히려 감동적이라면서 교회나갈 것을 다짐한 분들도 있다.

그것 조차 그 분이 선택 받은 것이기 때문이란 생각을 금할 길없다.

 놀랍다.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놀랍다.

사람들의 認知력의 한계를 보면서 난 참 놀란다.

사람들이 보고 느낀다는 게 얼마나 바보같은 지 보면서

사람들을 의지하고 사람들끼리 무엇을 이루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고 있다.

 

 오늘 예레미야님이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외침을 보면서

두려워 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생각이 든다.

그 외침을 보면서 무엇인가 회개하는 느낌을 받는 자 몇이나 될 까 싶다.

난 그래도 '다행'임을 느낀다.

아니, 솔직히 오늘 무서운 경고를 들어가면서

그 무서운 경고를 외치는 하나님 사자 편에 서 있게 됨이 다행임을 느끼고

안온하고 있다.

내가 잘나서 인가?

인격적으로 훌륭해서 인가?

성화가 엄청되어서 인가?

구제와 헌금을 많이 해서인가?

 아니다.

 난 그냥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을 떠나면 혼란스러워

뒤죽박죽 영혼이 헝클어질까 두려워

그냥 매일같이 말씀을 내 영혼의 중심을 잡는 지표로 삼다보니

내 스스로 난 '외치는 자의 곁에 있는 자 '로 인식하고 있다.

자랑스럽게...

 

 오늘따라 두 분이나 반가운 환우 분이 들르셨다.

한분은 목사님 사모님으로 수년전 그 분 언니께서

우울증과 폐경증상으로 내원하셨다 전인적 치유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 후

급격히 좋아지시면서 내 팬'-스스로의 표현이시다.ㅎㅎ - 이 되신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수술환자로 수술 다음날 부터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던 분으로

'씩씩하다'는 표현에 기뻐하며 단골이 되셨던 환우분.

 오랜 시간 찾아오시면서 '하나님'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가시는 분들.

내 진료가 밀려 있어도 수분은 더 할애 하는 애정이 있으신 분들이다.

 그 분들이 나가시면서 그러신다.

'여기 왔다 가면 마음이 뿌듯해요.

 얻어가는 게 있어요.'

난 쑥스러움을 굉장히 많이 탄다.

그 안에는 '난 자격이 없다'는 자격지심이 오랫동안 훈련된 열등감탓이다.

내 인생을 어렵게 하는 것.

하지만 주님이 당신의 천사들 두 분을 보내어 확인해 주신다.

동일한 말씀으로 ..

내 사진을 보면서 같이 공감하면서..

그래서 그냥 자연스레이 받아 들였다.

 

엊저녁.

자식, 아내..갈등이 조금씩 내 머리를 누른다.

가슴이 멍하고 미어지려 한다.

그래서 늦은 저녁에 잠바를 걸쳐입고 하천변을 나와

한번 빙 .. 돌다 들어갔다.

머리가 뒤죽박죽 곤죽...

자꾸만 '성질'이 올라오려 한다.

소리한번 '꽥'하고 지르고 내 주장을 하고 싶지만

그것도 그리 옳은 것 같지 않다 .

 일단은 예전보다 좋아진 내 태도가 이것이다.

먼저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하늘을 올려다 보고 땅을 쳐다 보고

옆에 흐르는 개천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억지로 찬양을 불러 올렸다.

그리고는 밀고 올라오는 '내 지식'과 '내 판단'을 가만히 제어 했다.

어둠 속에 붉게 타오르는 근처 '가정교회'의 십자가를 보며

'주님 아시지요.. 주님아시지요'

마치 주문외우듯이 복잡한 생각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았다.

조금 더 돌아나와 우측개천변을 끼고 도니

내가 제일 아름다와 하는 '석수교회' 십자가가

석수교회 옥상 높은 곳에 하얗고 커다란 자태로

아랫쪽으로 부터 올려 비치어지는 등불을 받아

그 늦은 밤시간의 어둠을 뚫고

아랫쪽에 받쳐진 두손 처럼 나무의 꼭대기 부분에 놓인 것처럼

내눈에 들어온다.

기도했다.

이처럼 복잡한 심사일 때는 전혀 기도의 줄이 안잡히던 것이

이전의 나였었다.

그렇지만 ' 난 모른다.   주님 아시지요.. 하며 계속 중얼 중얼 거리며

돌고나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리고는 아직 죄는 안지었다. ^^;

 

 그렇다.

내가 무엇을 해 보겠다.. 는 의욕이 날 초조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갈등의 소지였을 뿐이다.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주님은 내 해결 방식을 좋아하셨던 것이고

그것을 증거로 오늘 말씀을 내리시는 것이다.

 ' 내편이다.

 내 곁에 서 있는 자다.

 네 자식들도 최소한 날 청종하려는 자세는 되어 있으니 마찬가지다.'

이것이 오늘 묵상이 날 위로 하시는 것이다.

이것만큼 큰 위로가 어디 있는가?

언제 또 넘어질 지 모른다.

그런데 자꾸 일어날 것이다.

일어날 때는 그냥 안일어난다.

주님의 손 붙잡고 일어날 것이다.

 

 

기도

 

주님

늘 위대하신 주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묵상을 진행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늘 그렇듯

주님 곁에 서 있기만 하면 주님이 인도하심을 느낍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전혀 묵상의 진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음에도 그냥 써집니다.

나름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여 .

감사합니다.

저와 제 가족.

주님의 곁에서 늘 서 있게 하소서.

놓지 마소서.

주여.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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