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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 , 그 고요한 축복 본문

구약 QT

잠잠 , 그 고요한 축복

주하인 2006. 6. 26. 15:17

스바냐 1:1-13

 

7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찌어다(Be silent)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므로

 

 자주 마음이 바빴다.

무엇을 열심히 해서 이루어 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야만 그 분 마음에 들고 또 그것이 마땅히 열심히 믿기 위한 도리인 줄 알았다.

 물론 나의 열심은 주님의 사랑을 받았던 것 같고 그것은 나의 첫사랑 이후에 내 속에 주님에 대한 지식을 제법 쌓이게 하고 믿는 방법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게 했고 왜 믿어야 하는지도 알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느낌이 자꾸만 들고

첫사랑의 주님의 주권적 은혜부음의 시간이 조금 가라앉으며

나의 성장을 위해 주님께서 가만히 보시고 계시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감에 따라 -마치 동물 들도 새끼들을 둥지에서 떠나 보내기 위해 조금씩 먹이를 덜 주시는 것처럼 -

마음의 빈곳이 다시금 커진 듯 안절 부절 못하게 되어갔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좀 더 좀더...

하지만 내 속의 결손 부위가 고쳐지지 않은 상태의 열심은 더 이상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예전과 별로 다름없는, 아니 가끔은 오히려 더욱 예전보다 안좋은 행위로 나타났다.

 

 이것은 강렬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증거로 가지고 있는 자로서

그 분을 부인하지는 못하면서 혹여나 내 자신의 엄청난 잘못으로 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당혹감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지쳐가는 마음은 자꾸만 냉랭해져가는 마음을 느끼게 하였다.

 그게 한마디로 ’안절 부절’이었다.

 

 그러다가

재작년 부터 우연하게 시작되면서 맞게된 아침 큐티를 시작으로 조금씩 달라졌다.

마치  메마른 땅에 조금씩 조금씩 스며드는 가랑비 같은 효과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내 노력으로나 내 열심으로 보다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맞추어 가는 것이 어떤 것이란 것에 대하여 아주 서서히 나마 알게 되었다.

 

전에는 ’잠잠하라’하면 그 내용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외적인 행동거지 만을 조심하라는 얘기 처럼 들리고 흘러 갔지만 이제는 조금은 다르다.

 

 잠잠할찌어다는 주님을 앞서는 어떠한 일련의 행위도 하지 않는 것.

가만히 주님께 고정하고 그 분이 말씀하시면 움직이고

아니시면 어떤 외적 유혹이 작용하고

어떠한 내적인 용틀임이 부대껴도 , 손해가 나도

주 여호와 앞에서 가만히 쳐다 보고 기다리는 것.

그래서 현재의 손해보다는 더 큰 평강의 이득을 누리는 것.

부수적으로 장래에 주님의 시간에 받을 축복을 이해하고 느끼고 참아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마음으로 알아가는 믿음의 진보 상태다.

 

 이제 주위를 보아도

여러 현상을 보아도

성경에 계시된 그날이 점차로 가까와 짐을 느끼게 된다.

전 세계의 지도자들의 미 성숙화

기상의 이변의 정례화.

오일 값의 70달러 근접

부동산 가격의 상상 불허 폭등

환경의 파괴.

원칙의 파괴 ( 동성애, 생명윤리 파괴.....)

 

그보다 더 무서운 두려움의 마비.

 

 이러한 세기 말 적 현상.

즉 ’여호와의 날’이 임박하였음을 나타내는 이런 현상 앞에서 

너무도 당연히 우리는 더욱더 주 여호와 앞에서우리가 잠잠할 수 있어야 한다.

 

큐티를 통해서

나눔을 통해서

늘 주님과 교제하며

그 분의 말씀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루 하루 살려고 노력하고

그 분의 뜻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놓치 않는 한...

우리는

여호와의 그 날,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때까지 뿐아니라

일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을 유지하고 살 축복을 얻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쁘다.

 

구원,

그리고 그것을 통해 조금은 더  주님과 가까운 자가 될 가능성을 주심을 감사드린다.

 

 

12  무릇 (NIV 자기 만족하며)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복도 내리지 아니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
 반면에

참으로 절묘하게도 ”찌기 같이 가라앉은 ” 자도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거기에 자신의 현세적 성공이 가미가 되며

자기 만족적으로 자신의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나르시스트’적인 감정도

어찌 보면 외견상 비슷한 소견을 보일 수 있다.

 

잠잠하게..

여유롭게..

부르조아적으로..

 

그러나 그   심중에

이런 마음이 든다.

 

” 이 성공은 모두 내것야.

 아무도 필요 없어.

 여호와라니

 그런 존재가 어찌 나에게 필요해? ”

 

 모든 부유한 자가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현실의 성공이 반드시 축복 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란 사실이

가난하고 고통 중에 있을 때 처절히 주님 만 매달리다가도

물질적인 풍요가 오고 더 이상 세상으로 인하여 고난 받을 이유가 없는 많은 자들이 주님을 멀리하고 마음이 강팍해짐을 볼 수 있음을 볼 때

오늘 주님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면서

’찌기 속에서 자가 당착’속에 빠지지 않게 해주실 만큼 물질을 제한하신 주님께

감사 (^^;;) 하다..

 

 

적용

 

1. 잠잠하다’는 뜻을 묵상하자.

    지나치게 바빠서 주님을 잊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자

 

2. 현실의 고난이 찌기가 안되게 하실 축복임을 감사하자.

 

3.  성경을 5장 읽자.

 잠잠한 가운데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을 듣자

 

 

기도

 

주님

잠잠에 대하여 알게 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너무 바빠서 주님 잊지 않게 하소서.

너무 힘들어 주님 만날 기회를 잊지 않게 하소서.

관계라는 이름으로 주님을 관계하기 보다는 사람들로 분주 하지 않게 하소서.

 

차분히 틈내어 주님 만나게 하소서.

늘 여호와의 날을 잊지 않고 재림 준비의 신앙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이성(理性)이 아닌 마음으로 아신다. - 오스왈드 챔버스  
 
 

 

 

 J.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 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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