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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 어디고 기쁜 성이 있나?(습2:5-15)

주하인 2006. 6. 28. 09:47

 (스바냐2:5-2:15) 

 

15 이는 기쁜 성(carefree city  걱정없는 도시)이라 염려 없이 거하며 심중에 이르기를 오직 나

   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 어찌 이같이 황무하여 들짐승의 엎드릴 곳이 되었는

   고 지나가는 자마다 치소하여 손을 흔들리로다

 

 중환자 실에 있던 산모 - 전에 올렸었습니다. - 임신 17주로 경과가 그리 뚜렷하게 호전되지 않으면서 패혈증이 동반되면서 어제 초음파 소견상 아가가 사망이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유산시술이 시행되었습니다.

 

깊은 무의식의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어제 기도를 해주면서 '태아 사망'에 대하여 알려주었습니다. 

호흡기 차고 식물인간의 상태로 표정의 변화가 없던 분의 얼굴에 제 착각인지 몰라도 순간 고통이 표정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탓인지 몰라도 눈물 한방울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어제 약을 투여하고 오늘 아침 시술 후에도 위로의 말을 건네자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저에게   
느껴졌습니다.

 반응성으로 의미없이 나올 수 있는 눈물이지만 , 그리고 경련에 의하여 얼굴이 찡그러진 것이겠이겠지만 느낌은 그게 아녔습니다.

가슴이 아린 것이요.

 

 참으로 젊은 분이었습니다.

다정한 남편과 사는 분이었구요.

기도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어찌 그런 가정이 이런일이 있을까는...

모두 주님의 뜻이 아니고는 그 내용을 알길이 없지만...

 

잠시 얼굴을 내려다 보면서 다양한 생각이 교차가 되었습니다.

우선 아이에 대한 것입니다.

엄마 없는 장애아의 가능성을 주님이 위로한 것이고

천국에서 어쨋든 다시 만날 수 있는 가정이라서 한결 위안이 되었지요.

엄마에게도 ..

임신이 지속이 될 수록 더욱 큰 위험성이 유발되기에 어찌 생각하면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게도 헤어짐은 상처이지만

더 큰 아픔이 있기전에...

 

어찌 되었던..

이런 긍정적인 생각은 가벼운 판단이고 그들의 깊은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픔은 껴안고 삭이기 보다는 주님 안에서 가벼이 생각하는 것이 나을 듯도 싶어서 입니다.

 

그럼에도..

 

이 청천 벽력같은 젊은 여인의 중환자실 행과 아기의 사산은

멀쩡하고 평안하던 한 가정에

주님의 뜻으로 이해하고 맡기기 전에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입니다.

 

 비단 이 뿐이겠습니까?

 멀쩡히 잘 가던 아이가 교통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일요일에는 기도원에서 잠시 미끄럼틀에 올라갔던 쌍둥이 동생이 꺼꾸로 떨어지는 큰 사고도 보았습니다.

 

가슴은 아프지만

역으로

그런일이 나지 않았다고

난 '기쁜 성'   걱정 없는 도시에 있으니 걱정이 없다고 자고하고

주님을 포기하거나 잊고 산다면 그게 가능키나 하겠습니까?

 

두려운 소리 한다고요?

 

인간이란 어차피 약간의 칼슘으로 이루어진 뼈 를 둘러싼 단백질과 질긴 교원질로 형성된 근육, 그리고 비율상 훨씬 더 많은 결합조직을 포함한 피부 등으로 이루어진 아주 연약한 유기체 올시다.

 

거기에 우리 주님께서 양자장 -  얼마 전에 올린 글입니다.  아이콘 누르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으로 추정되는 마음과 영혼을 덧 입히셔서 인간으로 만들어 주셨지요.

 

 그런 자들이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하며 현실의 아무 사고 없음과 물질적 성공 안에서 안주 한다면 그게 가능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위에 쓴 두려운 일들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날수를 얼마나 더 연장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실은 믿는 우리도 육적인 우상에 탐닉하고

현세의 성공에 모든 수단이 제한되지 않으며

심지어 주님 마져 세상의 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는 현상은

비단 일요일 나가서 헌금하고 주님을 찾아 기도하고 눈물 흘리지만

그 안에는 실은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는 자와 큰  차이가 없을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갑작스레이 다가올 주님과의 면담날...

혹은

불의의 예상치 않은 사고로

연약한 유기체가 망가질 시.............

 

오늘 묵상 구절에서 말씀하시는

전 세계적 징계의 소용돌이 안에 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찌 장담하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 믿어도 고난은 필연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 분은 확률은 떨어 뜨려주실 겁니다.

고통 중에서도 피할 길은 주십니다.

감당할 자격 있는 자에게 우리가 모를 더 큰...

도저히 인간의 두뇌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선의 비밀이 있다고요.

그 선은 이 땅의 것을 넘어서는 개념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고통이 주님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리고 훨씬 큰 두려움과 저항할 수 없는 폭풍같은 어려움이 됩니다.

피하려고 애쓰지만 피할 수 없는...

 

오늘

아침 환자를 통하여 조금은 깊게 생각케 해 주신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받습니다.

 

 

 

적용

 

1. 중환자실 환자 분의 기적적 회복과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한다.

 

2. 기쁜 성은 나에겐 없는가 묵상한다.

 

3. 전도한다.

  기쁜 성에 거할 자를 인도한다.

 

 

 

 

기도

귀하신 아버지

늘 주님을 집중하길 원합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현세의 성공과 이룸에 만족키 원치 않습니다.

아니..

이루지 못함에 오히려 기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쁜 성을 허락지 않고

대신

아침 마다 진실이신 주님의 소리에 귀기울 수 있게 해주심을 요.

 

사랑의 하나님.

막상 저에게도 혹여 닥칠 수 있는 환란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을 주세요.

이겨나갈 수 있으면 바꾸는 용기도 주십시요.

지혜도 주세요.

 

늘 동행하는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아멘

 

 

 

 


 
  정녕 마지막인 것만 같은 순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튼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 앤드류 매튜스  
 
 
  
 

 

 

Verdi/ Requiem 제2곡-1 Dies I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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