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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에겐 주님이(습1:14-2:4)

주하인 2006. 6. 27. 12:19

(스바냐1:14-2:4) 

 

15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 너무 생각이 많으면 안 좋습니다. )

 

  지극히도 대단한 은총을 통해 '성경'에 주님의 모든 영감을 다 모아 놓으셔서 주님의 원리를 깨닫고 그 분의 사랑을 알아가는 성경의 지식을 너무도 많이 알게 되니 성경 속의 인물 들의 그 척박한 삶의 환경과 주님의 원리를 하나도 모르면서 짓는 어리석은 죄의 시대에 비하여 얼마나 얼마나 대단한 은혜인가?

 

주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하셨지 ..

성경 통해서 하나하나 예시하셨지..

그러나.

그때의 삶과 뭐가 다른가?

지금도 여전히 '그 날'에 대하여 얘기하고 계시지 않은가?

성경 속의 어리석은 사람들의 행태와 오늘날 우리가 하는 행태가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

 

 그날.

하도 성경에서 많이 봐서 겁주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예수님 보내셨으니 감사해서 받아라....아이구... 유치해라... 이런 마음 들지 않겠는가?

어제 '찌기 ' 말씀하시면서 하신 '하나님이 없는 자'의 모습과 내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아니하는가?

이런 마음 누구도 들텐데..

 

그래서 무서운 얘기는 들춰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성경에 틀림없이 계시록에 대하여 써 있는데

그거 얘기하면 '이단'으로 정죄하는 목사님들 조차 있다고 한다.

아마..

그런 원리 아닌가?

자신의 '찌기'가 휘휘 저어져서 평온한 듯한 이 세상의 '물질 축복'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념이 휘휘 틀어질 듯한...

 

그래서 !

사람이 겉넘으면 못쓴다는 말이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얘기도 있다.

 

우리의 앎이 너무 지나쳐서

십자가의 은총이 우리의 자격에 비해서 너무 과해서

이런 과유 불급의 죄가 우리를 지배한다.

 

 그러나

엄연히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이다.

우리의 감정이 용인하지 않아도 곧 있을 진리의 날이다.

 

우리는 매일을 '경외'의 감정으로 살아야 한다.

경건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에 나온대로 이웃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날마다 상고해야 한다.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 겸손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주님은 이러한 두려움에 의해 억압할 것을 피하고

주님이 좋아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위하여

무서워 피하고만 싶은 그 날에 대한 대비책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기특하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어느 한 사람을 지칭하지도 않는다.

부드러운 느낌이다.

겸손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미덕임을 넌지시 나타내시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이란 표현에서 '물기어린 따사로움'이 느껴진다.

 이러한 사랑스러운 세상에 널리 퍼져서 눈에 들어나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우리 주님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쓰러지고 다시 힘겹게 일어나서 또 주님을 향하고 .... 하는 고군 분투하는 겸손한 자들에게는  숨김을 얻으리라 , sheltered 즉,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시면서 다시한번 다정하게

권면하신다.

 

이것은

그 무서운 진노의 날이

아주 약간의 이러한 노력 즉,공의 겸손으로 벗어날 수가 있다는 약속의 말씀이시다.

 

주님은 이러신다.

 

 과유불급의 정보를 제공하시고 넘치는 사랑의 은혜를 퍼부으신 이유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살면서 주님을 기뻐하고 성경대로 순수하게 기뻐하는 자들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을 아시고

그러한 자들은

그러한 시험을 통과해서도 순수성을 유지하기에

실은 누구보다도 더 진솔한 성도일 수있다는 얘기다.

 

 ( 주안에서 내가 드러나지 않길 원합니다.)

 

 

그러시기에  그러한 자들을 그 분은 물기어린 목소리로 "  "세상의 모든 내 새끼들아... " 대신에

앞으로의 겸손할 부분에 대하여 다짐하시고저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라 하시는 것이시다.

 

 겸손의 정의는 이렇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사랑을 지극히 받는 고귀한 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드럽고 온유하게

자신에 대하여서는 담대하고 편하게 쳐다볼 시선을 가진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이야 말로

세상에 거침이 없을 것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편하고 기쁠 것이다.

 

 

주님의 평안이 늘 함께 하시는 우리 묵상 방 여러분 .

주님 오실 그날 까지 화이팅 !

 

 

 

 

 

적용

1. 오늘 큐티책에 나온 기도 제목을 묵상하겠습니다.


● 심판 날에 죄에서 자유로운 자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의 분깃에 만족하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 나의 공동체는 공의와 겸손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나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공의와 겸손으로 이웃을 대하고 있습니까? 
 
심판의 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명령을 두려워하며 항상 겸손하게 살기 원합니다. 

 

 

2.  성경을 대할 때 나의 태도는 어떠한 지 돌아 본다.

 

3. 이웃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 지 돌아본다.

 

 

 

 

기도

 

주님

오늘은 마지막 날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솔직히

그 날이 그렇게 두렵지도 안두렵지도 않습니다. 

어제 말씀하신 찌기 안의 마음이 제가 아닌가 순간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예전과는 다르게 만나는 어르신에게 두손 모아 공손히 태도를 취하고 싶고

가끔은 성공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날에

저를 보고

'세상에 거하던  겸손한 너'란 지칭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대견한 마음도 듭니다.

이건..

주님. ..교만이라기 보다는

주님을 날마다 묵상하며

저에게 찾아온 변화임을 알고

살아계신 아버지의 흔적이 제 영혼에 아주 조금의 변화를 유발 하셨음을 알고

기쁘게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제

좀더 공의롭기를 원합니다.

이제 좀더

겸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언제가 주님오실 날인지

언제가 제가 주님 만나러 가야할 날인지

익히 알수 없사오니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오늘 주신 말씀을 붙잡고 살길 원합니다.

도우소서.

잊지 않도록 늘 말씀으로 붙잡고

은혜로 인도하소서.

내것이 아닌 것에 비교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신다.

- 이사벨 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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