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잘되길 원합니다 ( 엡6:1-9) 본문
제 6 장 ( Chapter 6, Ephesians )
성당의 울타리.
가족과 걸어가다 올려다본
저녁의 하늘에
참 아름답게 비칩니다.
그냥
어떤 모습이든
주님 안에서
흐르길 원합니다.
가로등이면
하늘을 떠 받치는 마음으로
울타리면
그 하늘을 꾸미는 마음으로
누가 보든 안보든
그리 있다보면
어느 샌가
지나가던 누구의 눈에
아름답게 뜨일 때가 있겠지요.
그게
잘되는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운명이 아닐까 합니다.
주여
주님 안에서
세상과 같이 흐르는 하루가 되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주님안에서
진정으로 잘되길 소원합니다.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부모 순종.
해야지요.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부모 공경
마음으로 더욱 해야지요.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잘되기 위해서라도 해야지요.
잘된다는 개념이 꼭 물질 만이 아니어도요.
잘 된다는 것은
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가며 사는 삶의 여유로움'이라
생각합니다.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식을 노엽게...
교훈과 훈계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을지요.
용서하소서.
주의 교양으로 절 잡으소서.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종은 아녀도
조직의 하부 서열에 있는 사람으로
오늘도 성실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설 수 있길 원합니다.
상전에 반항하는 마음을 갖지 않게 되길 원합니다.
옳지 않아도
그냥 순종하길 원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의 뜻이기에 그렇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기존의 질서'를 못견디는 반항아가 저 였었습니다.
지금은 편안해 보인다고 합니다.
특별히 '윗분' 들에 대한 저항감은 거의 없습니다.
주님 믿고 나타난 '선한 아부감'이죠.ㅎ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더욱 다행인 것은
그 마음이 눈가림이나 억지가 아니고
말씀 읽다가 나타난 제 변화란 이야기입니다.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단,
아직 '주'께 하듯 하지는 못합니다.
그냥 마음을 바꾸고 계신 중임을 알 뿐이지요.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이제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그동안 말씀을 묵상해가며
어찌 나는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는 것에
그리 기쁨을 느끼는 가 하던 것이
박보영 목사님의 말씀 중 귀에 확 들어오며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분께서 말씀하시길
' 땅의 삶은 '좁은 길'을 가는 길이고
그 가는 길은 성령의 말씀을 듣게 되면 기쁨으로 갈 수 있고
말씀을 더욱 선명히 듣기 위함이라면
길가다가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벗어 줄 수도 있다.'라는 것이시고
실제로 그 분은 행동하시는 분이시었습니다.
그 행동이 그냥 '주님을 알고 이해하고 머리속으로 끄덕인 후'
그것을 자신의 결단으로 시행하는
기존의 많은 분들과는 달리
'성령과의 대화'와 '인격적 교제'를 통해
주님을 동행하기 위하여
모든 소유를 내려 놓게 되는
'순서'를 아시는 분이시란 것입니다.
윗분을 공경하고 선을 행하고 무슨 좋은 일을 하던 간에
그게 '도덕적 차원'이거나 '주님의 말씀'이니 들어야 겠지.. 라는
의무적 차원이 되기 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다 보면
'성령님과의 놀라운 교류'가 이루어지는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만남을 통한 엄청난 자유를 놓치기 싫어서
더욱 공경하고 선을 행하게 되는
그러한 매일의 순서가 되어 야 합니다.
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어제는 늦은 수술을 마치고
잠시 트럼펫을 불고 있는데
원우회 총무님께서 들어 오셨습니다.
그 분은 너무도 바쁘신 분이라서 '정기총회' 건에 대하여
자꾸만 뒤로 미루실 수 밖에 없던 차
제 호출을 받고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셨습니다.
전 2달 이상을 delay하는 그 책임감에 대하여 약간은 강하게 말씀 드리고
다시 날짜를 확약하고 돌려 보내는 - 또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일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내고 나서는 마음이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어찌 이 정도 밖에 조직을 이끌어가지 못하는가?
조금 더 온유하고 배려 깊지 못했어야 하는가?
........'
그러면서도 자꾸만 속이 상하려 했습니다.
짜증이 올라오려 했습니다.
주님 만나서 교류하기 위해서라도
좀더 온유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따라야 하는데... .하며
그러지 못하는 이 강력한 부대낌이 답답했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아들의 대책없음- 어디까지나 제 바램과의 차이의 실망이지만.. - 이 또..
주님을 더 집중하지 못하는 내 속의 부대낌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기도원 올라갔습니다.
굴 속에서 묵상하려다가
혼자 깊이 회개만 하고 소리소리 신세타령하다가 내려 왔습니다.
주님은 오늘 다.. 아시고 또 말씀하십니다.
'주께 하듯 하라'
상전에 잘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잘하고
부모에게 잘하고
아들에게 잘하고....
최선을 다해 주께 하듯하라...라고요.
그래야지요.
속 상한 것은 속상한 것.
흘려 보내고 다시 시작하렵니다.
그래도 그리 표현은 많이 하지 않아서 다행이긴 합니다.
마음 속이 문제지만요.
조금 더 온유하길 원합니다.
강력히 주께서 내 눈을 바꾸어 버리길 원합니다.
비판하고 판단하는 대상으로 늘 주위를 보는 이 눈을
사랑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로 보는 눈으로 바꾸어 주시길요.
주님께서 내 영혼에 강력한 메시지를 넣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다른 모습이다' . 라고요.
참 어렵습니다.
어쩌면 틈만 주면 들고 나오는 이 '통제'하고 싶은 욕구와 좌절이 들 쑤시는 지요.
정말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늘 하루는
주님의 말씀대로
정말 친절하고
정말 마음 속으로 주께 하듯 이웃에게 대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도와 주소서.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도우소서.
속상함도 받아 들이고
걱정됨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위와 이웃에게 더욱 온유하고 겸손하고 배려 깊은 자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더욱 더 간절히 빌 것은
그런 온유함과 배려가 주님의 만남을 더 깊이 갖고자하는 의욕에서 그리되길 원합니다.
진짜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리되길 원합니다.
일상에서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간절히 간절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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