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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주님을 늘 의식함에 대하여( 눅 23:13-2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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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주님을 늘 의식함에 대하여( 눅 23:13-25 )

주하인 2008. 3. 20. 10:25

제 23 장 ( Chapter 23, Luke )

 

한 겨울

칼바람이 불어도

그  꽃 만큼은

꽃망울을 터뜨리듯

모두 다 시들해도

그래도

나 만은 노래하리라

주님의 그 평화를...

 무대에서도

교회에서도

혼자 있는 곳에서도

주님을 노래하리라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단역 배우 빌라도가

군중 1- 0000 번 엑스트라들을 불러 모은다.

 

 

18.  무리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군중 속의 사람들 1- 0000 번 군중 각 개인이

군중 속에 파묻혀

무리가 되어 버리니

존재감이 무리의 일원으로 변해지면

잔인 해지고

흉포해진다.

더구나,

'대~~한~~민~~국' 당시의

하나된 소리로 묶이면

놀라운 역동이 일어나게 된다.

"일제히" 소리 지르게 되면

자신은 무리의 일원일 뿐

군중'누구'의 이름은

소실된다.

엑스트라되 무리일 뿐이다.

 

그들이

예수님 보고

"이 사람" 이라 한다

그리고

'없이하라'라고 한다.

 더구나

논리적으로 도저히 맞지 않을

광포한 살인자를 대신 놓아 주라한다.

비판이 없다.

저항이 있을 수 없다.

무서운 집단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들 중

군중 '모모'는

아마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23.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 무서운 기세에

누가 이길 수 있는가?

더구나

빌라도는 정치를 아는 자 아닌가?

그는

저항은  했지만

그 저항은 힘없이 끝나고 만다.

그 무저항은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오점을 뒤집어 쓰게 한다.

빌라도로 하여금..

 

 

 주님이 전제가 되지 않은,

아니

주님의 이름 만이 아니고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전제하는 삶이 아닌

모든 일은

자칫 오류로 빠지기 쉽다.

 

 다수가 옳은 것은 아니다.

아침

목사님의 큐티 인도 중의 말씀처럼

일촌 맺고

리플 달고

모임가지고

방문자의 숫자로 진리를 판가름 하려는 경향이 짙은

현대의 행태는

자칫 위험한 지경이 많다.

 소수의 옳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가도

그들 다수의 소리는

저항할 수 없는 위협으로 다가와

파도에 스러지고 마는

모래성 같은 허약함을 보이게 하고 만다.

 오늘 묵상에서 보지만

다수에 묶임은

혹은

다수에 밀려 버림은

대단한 위험성을 가져오기도 한다.

 

원인이 무언가?

이유가 무엇인가?

일상에서

그 다수 속에 묻혀

편안히 보내려 하는 어리석은 나의 행실은 없었는가?

그들이 그러니..

저들은 그러는데...

나만..

 

 주님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일상의 거의 전부

모든 행실이

하나님이 이유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아야 하고

하나님 때문에 제재가 되어야 하고

그 제재 때문에 기뻐야하고

기쁘기에 평강이 늘어나고

평강이 늘어나서

이웃에 선한 영향이 미쳐져야 한다.

 

삶과 믿음이 분리가 되면 안된다.

믿음의 행위는 하되

삶이 안따라 주는 이원론 적 행실은 위험하다.

일요일과 금요예배와 큐티는 열심히 하되

그 장소를 벗어나면

세속으로 돌아가는 행실은

무리 속에 섞여 버리거나

무리에 눌려 버리는

위험한 경우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늘 주님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 때문에

아침의 말씀 때문에

주일의 설교 때문에

세상에 조금은 더 신실한 모습으로 대하려 노력하고

그리하여

주님의 기뻐하심을 영혼으로 느끼게 되어

그것이 성령의 충만함이 됨을 알게되고

그 기쁨이 좋아

또 다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하는 선한 의지를 발휘하게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

그 주위가

큰 무리로 요동을 쳐도

그 무리가 압력을 가해와도

그리 큰 의의를 두지 않고

그리 큰 혼란을 겪지 않는

영혼의 샬롬을

늘 가지고 사는

이 일생의 심령 천국의 삶을 살게 되다가

주님 부르실 때

온전한 그 나라의

천국 백성의 삶을 누리게 되어야 한다.

그게

주님이

우리에게 보이시는

세상치리의 원리에 부합하고

오늘 말씀에 합당한

태도인 듯 싶다.

 

 

 

 

적용

1. 성경 여섯 장 읽겠다.

 여덟장이다.  

 어제 두장 못읽었다.

 

2. 다수가 꼭 옳은 것 만은 아님을 명심하자.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함을 서러워 할 이유도 없다.

 그 속에 들어가지 않아서 받을 손해에 그리 연연하지 말자 .

 그 속을 너무 터부시 하지도 말자.

 주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 간다.

 주님이 원하시면 무엇이든 한다.

 주님이 기뻐하시면 어떻게든 기뻐한다.

 그리 살려 노력한다.

 

3. 최대한 친절한 하루가 되자.

 

4. 낮아짐을 감사한다.

   외로움도 감사한다.

  아들 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한다.

 

5. 주님의 뜻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구분할 지혜를 주시고

 헤쳐나갈 용기를 주시고

 평안한 마음을 주소서.

 

7. 내일 있을 수술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8. 주님 안에서 옳은 것은 순교의 마음으로 지킨다.

 

 

기도

 

주님

주님의 뜻으로만 살게 하소서.

다수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그게

주님의 뜻일 때만 귀 기울이게 하소서.

포악과 무지의 위험성으로 부터

보호하소서.

옳으면 끝가지 이겨내게 하소서.

그리하기 위해

주님을 위해서라면

온전히 내려 놓을 수 있는

강력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할 담대함도 주소서.

주님

늘 주님을 생각하게 하소서.

단 일초라도

주님을 의식함이 놓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소서.

주님의 뜻을 빙자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원하심을 보이소서.

그리하소서.

저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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