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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벗어야할 우상 위험인자들(왕하1: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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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벗어야할 우상 위험인자들(왕하1:1-8)

주하인 2006. 9. 27. 11:09

(열왕기하1:1-1:8)  
 

2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6 저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 굿 판의 징소리와 덩더쿵 소리, 눈에 보이는 춤..  위안이 될만도 할 것 같습니다 만...  )

 

  성경을 보면서 자꾸만 당황되는 어리석은 일.

그토록 수없이 징계와 경고를 받으면서도 자꾸만 우상을 가까이 하는 일이다.

수없는 이적과 기적과 위엄과 은혜를 받으면서도 저렇듯 파리가 꿀에 모이듯 , 나방이 불에 달려들듯이 되풀이 하는 어리석은 이유를 모르겠다.

 오늘 왕도 그렇다.

병을 낫게해 줄지를 바알세붑에게 물으란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바보는 아니다.

8절에 신하의 전언을 전해듣고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자의 용모를 얘기듣자 마자 그가 엘리야임을 깨달을 정도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왜 그는 이런 어리석음을 또 다른 어리석은 자들과 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 이유에 대하여 나름대로 묵상해보았다.

우선 우상은 이 땅의 축복을 강조한다.

 주님은 하늘 나라에 대하여 조금 더 강조를 하신다.

그러다 보니 현실감이 없고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분이 아무리 위대하여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우선 믿으려 한다.

아무리 남들의 암이 나았다는 소릴 들어도 내 고뿔보다 못한 것처럼 징치고 꽹과리 치고 본인을 위해서 기복을 해주는 데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더구나 일정한 간격의 리듬이 되풀이 되풀이 되면 인간의 육신의 신경 루트를 타고 진동이 전해지며 뇌의 일정부분이 통제가 풀려지며 사람들이 멍 ~ 해지면서 황홀경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아프리카 토인들의 음악을 보라.

가끔 TV 풍물기행을 보라.

원시 부족들이 단조로운 리듬만 가지고 아주 오랫동안 춤을 추며 침을 흘리고 멍해지는 현상을..

이러한 육신적 반응을 통하여 일정부분 육신의 아픔이 낫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오늘날 강렬한 비트를 빠르게 되풀이 하는 락음악이나 테크노 음악을 들으면서 아이들이 빠져 들어가서 황홀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사탄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그런 음악을 이용하는 현상 등이 이런 것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외에 하지말라하면 더 하고픈 원죄적 속성.

무엇보다 하나님은 너무 엄숙하신 느낌이다.

그 앞에 가면 무엇이든 다 알것 같으셔 더러운 속성이 있는 상처 입은 우리는 편칠 않다.

그러니 적당히 가려주고 심적 부담이 덜한 곳에 가 어울리는 것이 좋을것도 같구..

하여튼 주님을 믿기에는 어딘 지 모르게 편하지 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우상이 제공하는 끝없는 위안은 없는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이유는 신앙이니 영적이니 진실이니 하는 문제들이 삶에서 별로 큰 의미를 주어지지 않을 듯한 사단의 속임 탓인 듯하다.

이스라엘 왕이 내리 우상의 이유로 죽었으나 계속 악함이 되풀이 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일에 치이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 조차 잊게 되는 것이다.

수도없는 간증을 들어가면서도, 스스로의 대단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잊는다.

마치 주님의 하신 일이 우연히 생긴 것처럼...

그러다 보면 주님이 계신게 옛날  이야기 처럼 느껴져서 무의식에 묻어 버리고 살게 되는 것이 한 이유일 수가 있다.

 

 

이 우상을 알아내고 밝혀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우상은 이 땅이 전부다.

그리고 그 후는 없다.

진리이신 주님을 아는 데 철저한 방해가 된다.

 오늘 아하시야 왕이 보이는 주님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가 그 증거가 아닌가?

(난 아닌가?)

 

또 우상은 반드시 주는 게 있으면 달라는 게 있다.

더 큰 손해를 가져온다.

 

실제로 그런가?

죄송하지만 옛 우화에 반드시 '중'께서 지나가면서 '어허 ~ 이 집에 ~' 하고 나서 안 따르면 큰일 나도록 한다.

점 집에 가면 ... 돈내고 부적 쓰라한다.

무당이 신을 받으라고 해서 안 받으려 하면 반드시 보복하려 한단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정서를 지배해온 유교는 또 어떠한가?

사회 서를 잡아가는 데 도움을 준 듯하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가족간의 갈등, 사회 지역간의 갈등을 초래해온 이념인가?

지금 출세를 위해서 , 체면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케 하는 독특한 우리만의 출세 정서가 이런 이념이 바탕이 되지 않았던가?

 

 우상은 성경에서는 이리 나와 있다.

(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눈으로 보아 좋은 것, 육체가 기쁜 것, 이 세상에 자랑하는 것.. 을  반드시 피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추구함은 우상이다.

 

 또한 우상을 멀리해야 할 이유는 이 세상 삶을 살 동안 늘 주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행복하다.

주님의 기쁨이 좋아서 세상의 욕심이 다 내려 놓아진 상태.

주님을 진심으로 만나면 알 수 있는 천국의 마음 상태를 늘 유지하면서 살수 있다.

그게 바로 행복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상을 멀리해야 한다.

 

 

 

 혹시 나의 삶속에 스며든 저런 우상은 없는가?

과거의 상처를 빌미로 무한정 현실에 머물려 하는 나약함은 혹 아닌가?

남들을 용서치 않고 분을 터뜨리는데 작용하는 나의 붙들고 있는 기저 원인은 혹시 내 우상은 아닌가?

묵상하는데 주님을 좀더 의지하고 인도하시는 대로 해야할 것을 슬쩍 쳐다보고 내 손이 나가는 대로 내 감정이 움직이는 대로 미사여구 날리는 것은 또 내 우상이 아닌가?

 남들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며 같이 은혜 나누자고 강요하는 듯한 혼자 만의 찬양은 또 내 우상이 아닌가?

돈은?

아파트는 ?

자식은?

지나친 문화적 탐닉, 즉 매니아는?

...

 

 이땅의 성취가 전부인 듯 행동하며 주님의 뜻을 가져다 대입시켜 부담이 가는 모든 것은 우상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

나를 위해서 그동안 지나치게 해 왔던 것이 없던가 알아내고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난 이 세상이 목적이 아니다.

난 이 세상을 스쳐갈 뿐이다.

난 주님 계신 하늘 나라가 목적이다.

거침이 되는 지나친 바램과 용씀은 피해야 한다.

 

 

기도

 

주님..

감사하나이다.

알게 모르게 어느새 아하시야 왕 같이 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토록 엘리야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바알세붑 같은 세상 것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노후,예술, 아름다움, 인간애, 합리와 우정과 편리와 쾌적과 눈물과 황홀... 의 이름으로 구석구석 내 속에도 주님과 양립시켜 놓은 수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주여

주님 나라에 방해가 된다면 하나하나 밝혀서 놓길 원합니다.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는 날마다 최후의 심판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 마틴 로이드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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