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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 내가 너를 기뻐한다.(느12:31-4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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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 내가 너를 기뻐한다.(느12:31-47)

주하인 2006. 9. 23. 12:09

(느헤미야12:31-12:47)  
 

 

(만일 내가 직접 여기에서 이 분을 뵈었더라면  틀림없이 강력한  열정이 날 사로잡을 겝니다.  )

 

 

31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성 위로 항렬을 지어 가게 하는데

대단하다.

백성들이 완성된 성 벽을 두 무리로 나누어 노래하며 행진한다.

찬송이 힘있게 불려진다.

감사하는 찬송이다.

찬송은 그냥 부르는 것 보다 내 감정을 집어 넣어 부르면 훨씬 윤기가 있다.

단순한 찬송에 우리의 감정이 가해지면 목소리가 세미하게 비브라토를 만들어내게 되고

그 비브라토는 세상의 노래에서 갖은 기교와 컴퓨터 조작을 통해서 만들어 내는 매끈한

음악과는 전혀 다른 감흥을 만들어 낸다.

 오늘 특별하게 보여지는 찬송의 형태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대단히 오랫만에 주님의 인도하심에 맞추어서 한마음이 되어서 이루어 놓은 하나님의 역사가 눈 앞에 현실로 있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자부심,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차오르는 열정, 눈물이라도 나올 감동이 겹쳐지면서 나오는 찬송이다.

 이 찬송은 어떠한지 느껴진다.

 상기한 비브르토의 성대를 타고 바이브레이션 할 때마다 수천 배 정도의 증폭이 순간 순간 전신의 근육을 순간순간 타악기 채로 두드리듯이 진동을 유발하고 그 진동은 근육 줄기를 타고 전신으로 확대되어 치닫게 되며 감동을 얻게 된다.

이걸 우리는 '은혜' 받았다는 말로써 표현하며

성령 충만한 느낌이라고 한다.

 

맞다.

거대한 감사찬송의 물결이 두 패로 갈라지며 성벽 위를 행진하는 장면은 은혜 받을 때의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상상하기가 벅찰 정도로 장면이 웅장하게 그려진다.

 

 찬송하려면 이래야 한다.

한 마음으로 모아진 감사의 찬송.

주님은 기뻐 받으신다.

 

 

 

 

36  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악기 조차 다윗의 악기다.

학사 에스라는 또 어떤 분인가?

최고의 찬송을 드리기 위해 마음과 몸 뿐 아니라

가장 좋은 도구와

가장 훌륭한 목회자의 인도가 같이 드려진다.

 

 

 

38 감사 찬송하는 다른 떼는 저희를 마주 진행하는데

 웅장한 장면이 반대편 성벽을 통해 마주 온다.

 

 

40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떼와 나와 민장의 절반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대단히 감동적인 장면이다.

이 양쪽 찬양대의 행렬이 마주치는 한 지점이 '하나님의 전'이다.

이제 하나로 모아진 백성의 마음이 예배로 드려진다.

 

 

 

 

42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우리 양문교회 예배에서 요새 이런 느낌을 갖는다.

쪼개어진 마음들이 하나로 뭉쳐 예배 시작전에 많은 분들이 훌쩍 훌쩍 울며 마음이 깊어진다.

그리고 아주 큰 목소리로 찬양대의 감사찬송이 드려진다.

절정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찬양이 끝나면 열정적이고 겸손하신 목사님의 예배인도가 시작된다.

그리고 기도할 때 묵도송을 떼제 찬양으로 크게 드린다.

 

이런 찬양은 '예스라고 하라'라고 주님이 싸인 보내지 않으실까?ㅎ

실제는 예스라히야 ㅎㅎ

 

어쨋든 교회에 보이시는 뜨거운 느낌과

오늘 보여지는 묵상 안의 열기가 비슷한 것은

주님 예수께서 위로하신 다는 느낌으로 개인적으로 받게 된다.

" 그래 잘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

마치 이러시는 것 같은 개인적 착각이 든다.

 

 

 

43 이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

  하게 하셨음이라

( 이 아이의 즐거움 같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앞으로도 계속 해야할 자세이다.

 예배를 멋지게 크게 드려야 한다.

프로그램 얘기가 아니다.

몸써서 용쓰는 얘기가 아니다.

율법적인 의미도 더더욱 아니다.

 

 기쁨이 넘쳐서 드리는 예배이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라고 나오지 않는가?

이 기쁨은 어찌 일반인들이 알수 있는가?

일요일 선데이 크리스찬이 이 믿음의 기쁨을 어찌 짐작이나 하는가?

이 심령천국의 흔적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는가?

왜 이런 강한 어조로 난 쓰게 되었는가?

모두 주님이다.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보라.

그들이 즐거워 할 이유는 별로 없다.

고생했다.

먹을 것도 충분치 않다.

인터넷도 없고 텔레비젼도 없고 휴대폰도, 노래방도, 피씨방도, 챗팅도, 술도, ... 아무 것도 기쁠이유가 없는 무더운 사막의 가난했던 자들이 저리 기뻐할 이유는 단지 하나다.

누군가 강제적으로 허락한 기쁨이 아니고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보이시는 증거이시다.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기에 이런 국가적 흥분이 가능하다.

 

아..........

이 강렬한 은혜의 열기에 온통 파묻히는 듯 느껴진다.

이 토요일에..

( 이런 세상의 기쁨은 아무리 좋아도 얼마나 갈까 ? )

 

 

 

 

44 그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

    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인하여 즐거워함을 인함이라

 헌신과 봉사와 구제...

모든게 주님의 즐거움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주님이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싸인을 보내심으로 온몸에 터져나오는 근육세포들의 팽창함과

온 전신을 흐르는 신경의 흥분으로 견디지 못해 노래하고 봉사하고 예배드려야 한다.

 

이게 주님의 기뻐하시는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다.

우리가 나가야 할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기도

 

주님

흥분이 됩니다.

저들의 열기가 수천년을 넘어 오늘 제 영혼에 그대로 옵니다.

그 열기의 흔적을 내 주위에서 보이도록 해주셔서 흥분이 됩니다.

주님이 내 하는 일을 기뻐해 주시는 구나 ..느낌이 들어 감사합니다.

세상의 삶과 신앙을 별개로 두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님을 도장 찍어주시는 것으로 느껴져 또 감사합니다.

 

마치 세상사람이 보면 어리석은 삶으로 보이고 유치하게 보이는 것 같아도

이 것을 주님이 진짜로 기뻐하는 것임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행 일치의 기쁨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기뻐하며 찬양하길 원합니다.

찬양하며 예배드리고 세상의 일에 열심이길 원합니다.

기뻐하며 십일조를 드릴 수 있길 원합니다.

기뻐서 열심히 일할 수 있길 원합니다.

기뻐서 이웃에 내 행진에 동참하도록 전도할 수 있길 원합니다.

기뻐서 더 공부할 수 있길 원합니다.

기뻐서 더 인내하고 온유하길 원합니다

기뻐서 겸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뻐서 내 아들에게 점잖고 푸근한 아빠가 되길 원합니다.

기뻐서 좋은 신앙인으로 목사님께 보여드리길 원합니다

예수님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예배를 통해 결정될 것이다.

- 잭 헤이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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