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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와 고급은 통한다 (느13:15-22)

주하인 2006. 9. 25. 08:25

(느헤미야13:15-13:22)  

 

15  그때에~ 그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7  너희가 어찌 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신앙생활하면서 어찌 자꾸만 믿음이 약해지고

뜨겁던 신앙이 차가와지고

심지어는 믿음 자체가 유치한 행동이 아닐까 의혹이 들기도 하며 -그게 의식적이든 아니든 -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기독교인 임을 드러내기가 쑥스러워 지고

보는 사람이 많은 식당에서 기도도 쓱하고 모르는체 지나가기도 하는 현상이 웬일인가?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믿음이 약해졌다.

식었다 하는 현상의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은 영혼, 육체, 마음 3 부분으로 되어 있는 전인(全人的) 존재이다.

그러기에 어느 한부분 채워지지 않으면 고장이 나게 되어 있다.

한부분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다른 부분은 눌리게 되어있다.

 

이러한 전인의 증거는 '종교적 본능'이 사람에게는 있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 수 있을 뿐아니라

역사 어디를 보아도 사람이 제사를 드리지 않은 적이 없고

사랑과 영혼이란 영화를 들어 보아도 과거 우리 할머니에게 들은 저승사자와 너무도 유사한 장면이 마지막 장면에 나올 정도로 알게 모르게 비슷한 영적 부분에 대한 전세계적 공통 부분이 많음을 들어도,

또한 보다 더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니'하는 성경의 증거 부분을 들어서도 알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물질 문명이 마구 발전함에 따라 ,

성경 속의 물질이 풍족하고 별 문제 없을 편안할 때의 예를 따라 보아도,

또한 오늘 날 잘 살기시작한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 등의 물질 문화가 풍요한 나라의 영적 현상이 예외 없이 점차로 냉랭해지는 것을 보면 세 부분 중에 육신 부분이 커지면서 영적 부분이 소외되어서 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꾸 의혹이 든다 .

예배와 생활이 분리되어야 할 것 같다.

세상은 열심히 살고 예배는 가서 드리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마치 니골라 당 이분설 처럼....

그래서 육적으로 마음대로 생활하고 세상일 열심히 하고

일요일 교회가서 빌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그게 아니면 유치한 것 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

그게 마귀들 장난이 아니고 무엇인가?

니골라는 틀림없이 이단이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만이 진실인 것 처럼 언젠가 부터 그리 인정하게 되었다

과학 발전의 영향이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은사와 은혜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영적인 영역을 드러내고 얘기하는 것은 '우스운 , 유치한, 이상한' 짓으로 여기게 되어 있다.

 특별히 의사들은 증거를 위주로 하는 이과학문의 첨단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아주 최근에야 정신과에서 '영적' 질환을 비록, 아주 조금이지만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지 않은가?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체험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세상의  1/4을 넘어서는 이 시대에 영적인 그 분을 믿을 때 영적 현상을 인정하고 그 부분을 강하게 하기 위하는 모든 행동을 우습게 여기는 이런 어불성설, 논리 부재의 현상이 벌어지는 이중적인 일이 이 세상에 통념처럼 여겨지는 것이 너무나 희한하다.

너무 똑똑하면 너무 바보다

지금이 그렇다.

자가 당착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다.

인간은 누구나 바보다.

가장 똑똑한 사람은 가장 바보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부 베드로 등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가장 현명하시다.

 

 각설하고

그러해서 직장에서 전도라도 하려면 비단 같은 기독교인 입에서도 여기가 교회냐..라는 질타가 나온다.

가끔 내가 약해져 있을 때 '그래 그게 맞을 수 있어'하며 혼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기도는 정해진 시간에만 해야 하는 걸로 생각되고 일과시간 이후에야 전도가 맞는 걸로 생각이 되기도 한다.

성장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은 의미없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그러나...

일상에서의 성화가 내 목표이고

내 서있는 곳이 주님 앞이며

늘 주님을 인식하고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길게 써놓은 '의혹'과 '현실'이라는 이름하의 방어들을 건너 뛰어서 '진실'에 맞닦드려야 한다.

 

 다시 스스로 다짐하지만

진실은 주님은 살아 계시고

이 세상은 주님의 뜻대로 천국의 삶을 결정하기 위한 시험을 위한 거침터이며 

내 영혼과 몸은 영적 전쟁터이자 주님 성령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이며

마귀는 쉬지 않고 우리를 자신의 나라로 끌어들이기 위해 우는 사자와 같이 호시탐탐 노린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그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라는 의미가 범상치 않게 들린다.

늘 주님을 잊지 않기 위해 사람은 어떤 요식 행위를 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안식일은 특별히 주님이 명령하신 날이다.

그 날을 범하는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율법의 위험성 때문에 율법을 폐할 수는 없다.

주님의 말씀을 지나친 몇몇 초자아 슈퍼맨의 오용으로 인하여 생긴 율법적 위험성 때문에 폐하려 한다는 것은 '벼룩을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불태운다.'는 얘기와 동일하다.

 

이제 우리는 기초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스캇펙 박사의 '아직 못다간 길'이란 책에서 완전한 자아의 성장을 위해서는 자아가 학습과 나름대로의 훈련으로 강하게 훈련되어진 후 자기 파괴 - 개인적으로  자기 부인이란 말로 대치하고 싶다.- 가 있어야 온전한 자아로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말 처럼.. 울리에게 온전한 자기 부인을 위해서는 '기초'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이 필요하다.

  너희가 어찌 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유치한 일을 회복시켜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늘 일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대하고 준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느헤미야 님의 유치한 듯한 안식일 타령(?)이 새삼 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자기의 부인을 통한 주님이 영혼에 순하게 자리 잡으실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다시한번 뻥튀기 되는 영적 성숙을 이룰 기회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 같다.

( 아기들은 다 천사 같애요... ^^*)

 

 

유치한 것은 고급스러운 것과 통한다.

우리가 어린아이 처럼 변해야 주님이 역사하신다.

우리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한 것이다.

 

 

적용

 

1. 유치함을 기뻐한다.

 

2. 남들의 손가락질을 더 기뻐한다.

 

3. 초심을 회복하려 노력한다.

 

4. 자아파괴를 통하여 주님이 새로운 질서를 내 안에 이루기를 바란다.

 

5. 성경 5장 읽겠다.

  무조건 웃겠다.

  아버지 학교 가겠다. (스텝 봉사가기 싫어서 꾀가 난다. )

  전인치유 점심기도 가겠다.

  내 아들과 집사람에게 따지지 않겠다.

  누구든 무조건 '그러려니 '하겠다.

 

 

 

기도

주님 도우소서.

주님 흔들리지 않는 기본을 허락하소서.

늘 주님 앞에 고정된 시각을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담대하고 흔들리지 않는 심성을 주시고

고요하고 가라앉은 눈빛을 주시고

편안하게 이완된 얼굴 근육을 주시고

늘 따사로운 등골 근육을 허락하소서.

 

이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흔적인 심령 천국의 현상임을 알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이

우리 주님을 늘 인식하는 주님 앞 의식의 결과임을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매일이 천국을 향해 가는 기쁜 여정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유일한 바른 접근은 경외와 공경이다.

 - 유진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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