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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엘리야와의 만남 (왕하1:9-18)

주하인 2006. 9. 28. 11:15

 (열왕기하1:9-18) 


13 세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 오십 인들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 수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주님은 가장 좋은 만남을 허락하십니다.   나와 엘리야... )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수많은 기적을 행하고 있는 자이지만 15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위로할 정도의 두려움을 느낄 상황에 빠져 있다.

그래서 주님 경외치 않는 자들에 대하여 마구 불을 쏘아 내리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냥 순종한다.

 

 이때, 산 꼭대기에 앉아서 엘리야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왜 산꼭대기에 앉아야 했을까?

산기도가 은혜롭고 좋은 걸 알지만 그 외에 또 왜일까?

 그는 두려워 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고 있는 자이지만 세상의 위협속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듯 싶다.

천사의 위로를 들어서 잘 알 수 있지만 아마도 그는 100명의 군사들을 태워죽여서라도 왕의 보복성 부름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듯 싶다.

아마 그래서 가장 잘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 앉아서 밑의 위험을 잘 내려다 보며 순간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잘 받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 심사는 어떠했을까?

당혹스럽지는 않았을까?

그럼에도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불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 왕에게 나아가는 결단을 내리는 데도 주님의 결정을 기다린 게 귀하다.

 

 아침에 약간의 질타성 소리를 윗분에게 들었다.

상황이 묘했던 관계로 벌어진 일임에도 결과가 그러니 가만히 들을 수 밖에 없었지만

들어가며 몇가지 생각이 들어왔다.

' 정말 난 잘못 많이 하는 자인가 보다.

  너무 지나치다.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잠시지만 뒤엉켜 오는 생각으로 마음이 혼란 스러웠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말려들어가 답답해 하지는 않았다.

오랜 묵상 덕인가?

 

 의지를 발휘해서 묵상집을 쳐다보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즐겨하는 구절로 대처해 보았다.

고후12:10)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분명히 약해지는 상황이고 능욕을 받는 상황이다.

그러나, 기뻐하라신다.

그게 그리스도를 위하는 기회란다.

그런 여러번의 승리가 지나면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도...

 

그러나...

그리 깊게 들어오지 않았다.

싸움이 마음 속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러면서

산 정상에서 고뇌하며 불을 토하는 '엘리야'의 두려움에 의한 분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 즉 정체성이 다시금 확실히 그 영혼에 자리잡고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 내 좋아하는 말씀이 살아서 나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 말씀을 하자 즉시 왕에게 내려가는 담대함으로 바뀜을 보았다.

 

아..

이것은 그 행동의 신학적 평가를 떠나서 나의 상황을 그대로 나타내 보여주며, '자 주하인... 이리 해보면 어떻겠냐?'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살아계신 주님의 인도하심인 것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

묵상하는 동안 '약한 것을 기뻐하자'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참으로 편하다.

그 분은 또 일례를 들어가며 어린아이를 인도하듯이 인도하신다.

 

요런 몇번의 묵상과 현실의 절묘한 접속 이 되풀이 되면 언젠가는 저 분과 비슷한 인지체계가 완성이 되고 그게 내 삶 속에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며 늘 주님의 기쁜 눈을 인식하고 살아가게 될 기회가 아닐까 싶어지니 잠시의 혼란은 이제 사라지고 내 속은 편안하다.

기쁘다.

약함이 기쁨이 맞다.

그리고 그 분의 질타에 맞추어 내 행동을 변화 시켜 보겠다는 다짐이 스르르 든다.

 

이게 주님의 살아계신 증거이다.

난 조금 약해졌다.

내 속의 힘이 조금씩 빠져가고

주님이 그 자리에 조금씩 들어 앉으시는 듯한 느낌이다.

 

주님..

저도 '하나님의 정말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게 될 때까지 붙들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적용

 

1. 계속 기뻐할 것이다.

   두려워하거나 좌절하도록 하는 감정을 기뻐하겠다는 선택과 결정으로 바꾸겠다.

   나머지는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2. 주님 말씀을 묵상하겠다. (고후 12:10과 오늘의 장면)

 

3. 앞으로 바꿀 것은 과감히 남들이 원하는 쪽으로 바꾸겠다.

 

4. 전인치유에 임하시는 주님 뜻을 묵상하겠다.

 ( 질타에... 믿음이 있으면서...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게 아프다.

   그래서 더 주님의 뜻을 생각하겠다. )

 

 

 

 

 

 


 
  우리는 은혜 위로 걷고, 은혜를 호흡하며, 은혜로 살고 죽는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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