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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인내하여 기다리며(막9:30-37 )

주하인 2011. 1. 28. 13:22

제 9 장 ( Chapter 9, Mark )  

눈이 와도

참아내야 하다

 

바람 불어도

인내해야 한다

 

조금 있어

새벽이 되면

 

저 멀리 산등성이에

해는 떠오르고

 

이제 세상은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새로와 질것이기 때문이다.

 

30.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갈릴리 , 그 익숙한 곳에 다니시며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으셨다.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이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을 특별히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심지어 무서워 하기까지 했다.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것 뿐인가?

그들은 '베드로 사단 사건과 또 오늘의 가르치심'에도 불구하고

토론한 것이 겨우 '누가 크냐'다.

현실적인 것, 지위, 자리, 공적.........에만 관심있다.


 
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그래도 잠잠한 것은

어린 아이들이 잘못 되었음을 알기는 아는데

깨닫지 못하고 겁먹은 듯한 뉘앙스다.

 

그래도 주님은

지치지도 않으시고 말씀하신다.

가르치신다.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지 않고는 ' 들어갈 수 없다하신다.

 


  무엇이 느껴지는가?

엉터리 같은 제자들에게

끝없이 기대하시고 가르치시고

또 변화없이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가르치시고 또 가르치신다.

그들을 위해 '갈릴리'

그 특별한 장소 - 첫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고 , 나사렛도 갈릴리 지방에 있다-에서 조차

몸을 나타내시지 않으신 이유가

그들 제자들에게 당신의 세상에 성육신 하신

궁극적인 이유,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드디어 비밀을 풀어주실 목적이시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겨우 한다는 것이

'노중에서 누가 크냐 토론'했을 뿐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일임에도

주님은 아무렇지 않으신 듯 가르치시니

그 사랑이 놀랍다.

그 인내가 놀라우시다.

그 분은 결국, 사도행전에 보여질 그들 제자들의 모습을

미리 보고 계신 것이시다.

 

배울 것이다.

그 분의 인내를 배우고

그 분의 가르치심을 배우고

그분의 사랑을 배우고

그 분의 미래를 보심을 배울 것이다.

감사하다.

 

 온통 '의경' 문제로 신문이 시끌 벅적하다.

갑자기 6개월 이내의 의경 신병들을 몇천명씩 영등포 서에 모아

그들 만의 '소원수리'를 듣고

그들이 해꼬지 당할 것을 방지하고자

따로 '신병도보대'를 만들어 부대를 꾸린다 한다.

 아들이 '서울의 의경'이다.

나름 겨우겨우 인내하고 기도하며 참아 오며

이제 중급의 고참으로 자리잡으려 하는데

한꺼번에 12명의 신병 들이 빠져 나가니 당황되는 모양이다.

그로 인하여 다시 부가될 스트레스가 걱정인 모양이다.

아이는 어제 내 방에 글을 남겨 기도해달라 한다.

 

 세상이 어찌 이리 마구 잽이인가?

하극상이 벌어지고

윗 사람들은 근절되지 않는 구타와 모욕으로 일관하고

결국은 모범을 보이고 순서를 잡아야할 정부에서

아랫 사람들 끼리 모아서 따로 부대를 만든다는

초유의 이해하기 어려운 '분란'이 일어났다.

거기에는 '가르침'이라든가

'기다림'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인내'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것을  의경, 젊은 아이들을 차치 하고라도

어른 들의 모이고 모여 정화를 이루어낸 '정부기관'에서 조차 저런다.

저를 어찌할까?

정말 이를 어찌할까?

저들이 저렇게 시간이 지나 새로운 부대를 이루고

또 시간이 지나면 또 상관이 될 거 아닌가?

그러면 또 새로운 부대를 또 만들 것이던가?

참 답답한 일이다.

저 단절을 어찌할까?

나.

반성한다.

자식들에게 조차

그리 인내하지 못했다.

내 마음대로 횡포하였던 폭군이었었었고

조금씩 나아지는 지금도

그리 인내하고 기다려 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맞다 .

성령의 도우심으로

훌륭한 아버지

좋은 사회인

귀한 선배

훌륭한 의사가 되려 하지만

그리 오래 기다려 주고 참아내며

좋은 멘토가 되어보지 못했던 것을 고백한다.

 

오늘 .

주님이 보이시는

그 특별한 사랑과 선배와 스승으로서의 모범을 배우길 원한다.

지속적 인내와 긍휼의 눈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주님 안에서 그러한 사랑을 받았음을

다시한번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것도 필요하다.

부족한 나.,

정말 모자란 나,

아무 자격이 없는 내가

주님의 그 십자가 사랑으로 거듭났고

아무런 세상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던 나를 인내하고 기다리고 권면하셔서

이제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

그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놀랍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적용

 

1. 인내한다.

 . 일곱번이라도 참자.

 

2. 십자가 복음을 전하자.

 . 때를 불문하고 전파하자.

 

3. 기다리고 가르치자.

 특히 젊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자.

 

4. 성경 세장 읽자.

  말씀은 생명이다.

 

5. 예수님의 인내를 묵상하자.

 

6. 의경 문제가 잘 해결되길 기도한다.

 선배는 후배를 사랑으로

 후배는 선배를 존경으로 대하게 되고

 사회는 그들을 잘 가르치게 하소서.

 

7. 난 주님이 아끼시는 특별한 자다.

 날 위해 주님은 갈릴리에 모습을 나타내질 않으셨다.

 주님은 그러신 분이시다.

 나도 그런 자다.

 내 자식도 그렇다.

기도

 

주님

귀하신 분.

너무나도 대단하신 분.

십자가 사랑과 부활을 보이시고

그만큼 기다리시는 인내를 가르치시는 분.

그 분이 내 하나님이심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돌아보면 저는 그 많으신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따르지 못하여 왔음을 고백하나이다.

불쌍히 여기시고 도우소서.

사랑합니다.

이제라도 회개하오니

제 마음을 잡으시사

부족한 자들에 대하여 인내하고 사랑하는 눈을 주소서.

간절히 비올 것은 과정에서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쓸데 없는 마음을 하감하사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소서.

나 자신을 받아 들이게 하소서.

제가 주님의 사랑을 그토록 받고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제 아들, 의경으로 있는데

너무 어렵지 않게 하여 주세요.

아이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여 주시고

주님,

주님의 원리 안에서

아이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사회의 정도를 보게 하소서.

흐르는 원리를 알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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