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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누리는 자유와 기쁨 (렘 16:1-13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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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누리는 자유와 기쁨 (렘 16:1-13 )

주하인 2009. 10. 7. 09:35

제 16 장 ( Chapter 16, Jeremiah )

 

 

 세상의 풍성함과

그들의 번잡함이

그리

부럽지 않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주님의 품안에서

주의 주신 생명을

소롯이

키워낼 수만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여호와의 말씀이

'또'

뚜렷이 확실히 임하는

나도

된다면 정말 좋겠다.

두렵고 무섭기도 하지만....

 

 

2.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5.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8.  너는 잔치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인간 史 행위의 모든 것.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죽고

잔치를 베풀고

이 들 인생 길흉사 모두에

기르고 같이 가서 울고 함께 앉아서 먹고 마시는

세상의 모든 행위들.

세상 사람들은 주님을 의식하지 않아도

마치 개미들이 바글바글 대는 것처럼 잘도 살아간다.

그 개미들.

사는 목적은 있는 것인가?

그냥 열심히 사는 것이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다는 게 그 것이 전부인가?

그것 하려고 세상에 왔던가?

그냥 서로 서로 관계 맺고 열심히 열심히 일하다가

자식을 하나 잘 기르고 - 지금 세상은 잘 길러도 대우 받기 힘든 세상이다 ㅎ - 그냥

그렇게 죽어가는 게 잘 사는 것인가?

 

  
10.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고요한 항해 만은 아니다.

풍파가 치고 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한번이라도 생각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는 누구엔가 한번은 항변할 것이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구 !!! '

 

 

 

11.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

     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12.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13.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정말 죄가 없을까?

정말일까?

'죄'의 기준은 무엇인가?

요즈음 처럼 '포스트 모더니즘'시대에 죄의 기준은 더더욱 없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희 선조가 죄를 지어왔고

 너희가 죄를 지어왔다.

 그 죄는  여호와의 법을 지키지 아니함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따르지 아니함이다.

 그래서 나는 은혜를 베풀지 않겠다. '

 비록 말씀이 '종말적 선언'이시고

그 이유가 주님을 배반하는 자들에 대한

아주 오래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간의 습관적이고 오래 유전되는 인식하지 못하는 죄에 대한

분노가 주제이지만

입장을 바꿔 '인간의 깨닫지 못하는 죄'를 짓는 나에 대하여 생각케 해 본다.

 

 

 

 아침에 일어나

다 큰 아들 둘 하나씩 하나씩

자고 있는 아이들 머리 잡고 축복 기도하고

강제로 (^^*) 허깅을 시키고

조금은 다루기 좋은 ^^* 둘째 아들은 문 밖까지 끌고 나와 마중시키고

늘 그렇듯 하천 변으로 나와 한참을 걸어 대로 변으로  나왔다.

날씨가 참 맑다.

바람은 가을 날씨다.

말라 붙어 가던 하천 지류에 이상하게도 물이 잘도 흐른다.

도로변에 올라서 안양대교를 건너 신호등을 건너면 버스 정류장이다.

기다리며 신호등에 어깨를 기대고 비스듬이 다리를 꼬고 기다리고 있다.

어깨와 머리에 내리는 태양빛이 너무도 온화하다.

기분이 좋다.

차분해진다.

순간적이 아닌 평화로움이 날 감싼다.

오랫동안..

그 기분에 날 맡기고 가만히 있으면 평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평안은 흔들리지 않는 수면이 바람이 불면 곧 흐트러지는 것 같

일시적인 감정의 흔들리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자주 느끼는 이 아침의 평온함은 '평강'을 의미하는 듯 하다.

아니, 평강이라면 이런 감정이 증폭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참..기쁘다.

참... 든든하다.

참.. 차분하다.

누군가에게 내 기쁨을 알리고 싶다.

조용하고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살살도는 용암의 에너지 같은

그런 힘이 도는 듯한 느낌.

무엇인가에 억제 당하고 있던 것이 '자유'로이 터져나올 것 같은

홀가분함..

이것이 확연하고 뚜렷하고 강해지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평강'이라고 난 확신한다.

그게 '샬롬'이다.

 

 그런데 기대어 서있는 동안에 '내가 어찌 하여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솔직히 난 열심히 사회생활을 잘 했던가?

들여다 보고 나온 묵상 구절처럼

세상사람들 처럼

결혼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자식들을 길러

타의 모범이 되는 아빠고 남편이며

자식들은 일류대에 쑥쑥들어가고 내 뒤를 이어 의사라도 만들어 놓았던가?

인간성이 좋고 사귐성이라도 좋아

이곳 저곳 잔치집에 가서 마시고 먹으며

그들과 함께 웃고 울기는 자주 했던가?

장례식 장은 단 한곳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찾아 다녔나?

...................

 난 돌아보면 성공을 할 조건은 하나도 없다.

자식들도 ........

나의 노후 대책도.....

가진 것도.........

 

 그러나, 그럼에도 왜 나는 행복할까?

단순한 일시적인 감각적 만족이 아니고

왜 나는 스스로 평강이라고 정의할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 잠시 며칠 뒤를 돌아가 생각해보면

어찌 나는 불행할 조건 속에 있었을까?

 수일 전 나는 아이들의 부족함에 대하여 가슴앓이를 하였었다.

내 스스로 내 부족함에 대하여도 속상해 했었다.

물론 아주 잠시이고 이전에 비하면 너무도 경미했지만.. 

 왜 그런가?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나에게 가져오게 하는가?

 

 두 가치관이 아직도 내 안에서 공존하여 싸우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관.

주님 나라(영적) 가치관.

 

 세상에 눈이 고정되어 있을 때는

난 불안과 두려움과 비교에 의한 좌절과 

간혹 잘난체 하는 뒤가 깨끗하지 않은 교만한 마음... 으로 점철되었으나

 말씀이 나를 주장하시고

성령이 나를 위안하실 때

나는 오늘 아침같은 '평강'의 천국 감성으로 사로잡힌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드는 마음이 이렇다.

'세상을 포기하고 어찌사누?

 그것 너무 이상적 생각아닌가?

 어디까지 포기하고 사는 것이 '영적인 것'인가?'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 청종'이다.

그 말씀의 한계를 듣고 따르는 것도 실은 쉽지는 않다.

알아도 따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조금씩 영혼으로 내려 앉고 있음을 느낀다.

 

' 내려놓음'이란 표현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 앞에 내려 놓으려면 달려드는 걱정이 있다.

위의 고백처럼 생활에 대한 걱정,

손에서 놓는 허전함과 허탈함.

남들과 달리 살아야 하는 외톨이 감정....

 휘몰아치는 머리 속이 생각이 정리가 되어도

사단은 위의 마음 들로 잡아 다닌다.

 

 하지만 , 내려 놓음은 포기가 아니다.

내 손의 통제를 주님 손에 맡김이다.

내 주위의 모든 결과를 주님께 의지함이다.

그것은 허전함이 아니다.

자유다.

그것은 책임회피가 방기가 아니다.

믿음이다.

....

결과는 영혼의 평강과 현실의 이루어짐이다.

 

 어제,

그동안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과 기도문을

시화로 만들어 사진제작하고 액자에 만들어

試作品으로 '진료실'에 걸어 두었다.

참 사랑스럽고 귀하다.

하나님이 인도하심이 이룬 또 하나의 결실이다.

생전 카메라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고

글이라곤 '블로그'에 큐티올리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결실'을 생산해 내었다.

흐뭇하다.

남들 보기엔 아마츄어지만

나에겐 수년간 동행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신 열매로 보인다.

자식같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이 결실 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면서

난 느낀다.

주님은 내 영적인 부분 뿐이 아니다.

세상에도 날 매개로 하여 영향을 주신다.

그것은 당연하지만

세상의 먹고 사는 일, 자식 기르는 일,

세상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일....모든 육신의 부문에서 조차

주님은 책임지실 것이라는 것이다.

 전인적 축복의 하나님.

 

오늘.

묵상을 통하여 분노하시는 하나님은

이 원리를 놓치고

하루도 아니고

한 세대도 아니고

열조부터 지금세대까지

하나님 나라는 등원시 하면서

인간의 세상 살이 만 치중하면서

선데이 크리스찬으로 살아가는

이 어리석고 가치없는 불신앙의 삶을 질타하시는 것이다.

 

 다시한번 아침의 건널목 등 아래의 기분으로 돌아간다.

난,

그 아침의 평강을 자주 , 조금씩 오래 체험해 간다.

점점 더 확대되면

난 그만큼 고민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은 흔들리지만,

내 자식들이 곧 의사가 되어 있음을 볼 지도 모르고

내 자식 중 하나는 성우나 아나운서가 되어 있음을 볼 것이다.

그 들은 삶의 이유를

자신의 삶을 통하여 수많은 전도를 위함이 목표가 될 것이며

그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좀더 겸허하고 인내하며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남을 위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난, 그것을 볼것이다.

난 내 노후에 정말 주님이 필요한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을 직접 도울 수도 있을 수도 있고

그들을 후원할 수도 있을 수 있고

그들을 공감해주어 그들의 인생에 조금은 위안이 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참으로 감사하다.

아직은 주님의 질타에 자유롭지 못한 줄을 안다.

바로 며칠 전 만 해도 나는 죄를 듬뿍지었다.

하지만 그 보다는 미래를 본다.

주님의 질타 뒤의 사랑을 본다.

 

 이 아침 건널목 등아래서

나는 주님을 만나고 있었다.

 

 

적용

 

1. 세상의 것, 그냥 맡기자.

 내가 이 나이까지 몸부림 쳐도 붙들수 없었다.

 그냥 내려 놓자.

 

2. 비교 , 좌절... 아무 소용없음을 명심한다.

 주님의 뜻이다.

 고난도 좌절도 다 주님의 뜻안에서 보면 기회다.

 

3. 아이들의 장래.

 주님의 뜻대로...

 미래를 보고 희망가지고 기다리자.

 안되는 것 고민해보았자 할 수없다.

  잘될 것을 믿고 기다리자.

 

4. 주님은 기쁨이다.

 주님은 사랑이다.

 주님은 자유다.

 

 난 행운아다.

 

5. 성경 일곱장 읽겠다.

 

 

기도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기도해줄 수 있는 자격을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진실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제가 가장 행복하고 행운아임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현실과 상관없는 그 느낌을 이해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걸어다닐 수 있는 다리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침에....

 

주여.

주님 믿고 감사한 것은

감사할 마음을 가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여

상황에 상관없는 자유가 절 만지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내려 놓음이란 허탈한 것이긴 하지만

자유와 기쁨과 진리를 맞닥뜨리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일과성으로 끄치는 감정의 운동이 아니길 원합니다.

주여.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이 점차로 체질화되어 누리는

진리의 자유

진리의 기쁨이길 원합니다.

주여.

모든 것 다 맡기고

제 팔다리 힘을 풀겠나이다.

 

 또한 특별히 마지막 세대에 사는 저로서

조금은 더 절제를 할 수 있도록 의지와 명분과 사명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눈앞에 보듯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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