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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또 다시 밟을 새로운 이 길[수3:1-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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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또 다시 밟을 새로운 이 길[수3:1-17]

주하인 2019. 9. 5. 08:23

이전에

가보지 않았다고

정말 갈 수 없을까

 

날 어두웠다가

진정 보이지 않을까

 

내가 할

오직 한 일은

 고개들어

주를 보는 것

 

그리고

인도하시는 대로

한걸음 씩

발걸음을 떼는 것 

 

때 되어 마침내

맞이할

그 어떤 순간이

 되고나면

 

내 주님

강물 가르고

땅을 말리시면서 까지

나를 반기시리라

(▲ 과거 묵상에 올렸던,아끼는 사진이고 글이라서 다시  ....^^*)


 
4.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

 지금껏 그랬지만

우리는

우리는

우리 인생,모두는

한번도 지나지 않았던 내일을 또 오늘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오늘은 또 쉼없이 '어제'로 바뀌어 간다.

 그렇다 .

매일 매일을 우리는 '이전에 한번도 지나보지 못한 길'을 지나가는 것이다.

 참 놀랍다.

그 사실을 , 그 진실을

왜 잊고 살았던가?

오늘

새삼

주께서

"주하인아

이전에 한번도 지나가지 못했던 길을

이제 또 지나가리라.

하지만.. .그 길은

이전에 그냥 그렇게 그렇게 지나보내던 그런 길이 아니다 .

'이'길이다.

한번도 지나보지 못했던 ..길' 말이다" .. 하심같다.


 '이전에 한번도 지나보지 못했던 이 길'

새삼 가슴에 온다 .

지금 나는

잊고 살았던,

어쩌면 또 잊고 그리그리 살

이전에 밟지 못했던 이 길을 살아가게 될 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 길이 '이 길'로서 의미가 있어진다 .

하나님으로 인하여..



5.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그러기에

난 '오늘'

한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이 길'을

더 성결히 살아야 한다.


 그 렇다 .

'이전에 한번도 지나보지 못했던 이길'

주님의 살려주심으로 인하여 새롭게 살아오게 된 이 길.

또 하루 허락되어진 이 땅에서의 '하루'를

난 '성결'히 살아야 한다.


 '새로운 하루'

내 허락되어진 수명까지 되풀이 허락되어질 그 새로운 날.

'희망'이고 '소망'이다.

날로 새롭다.

예수님의 부활로 허락되어진, 자격주어진

성령의 깊은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자들에게만

더 실제적인

'한번도 지나보지 못한 이 길... 이 하루'를

난 또 ..

더 성결히 살아야 한다.


 
15.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

    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그렇다면

성결히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그냥. .. 철학적이고 언어 유희적, 정신적 레벨에서 머무는

그런 그러함이던가?

'율법주의자'.. '수도자'... 들 처럼

자신을 절제하고 치고 가난하게 살고, 세상을 도외시 하는 .. 그런게 성결이던가?


 왜 우리가 성결히 산다는 것에 대하여

마치 우리와 동 떨어진 얘기, 고리타분한 세계.. 의 그러한 의미로 만 받아질까?


 어쩌면 세상과 하나님의 말씀을

이중으로 생각하는 '니골라당' 의 생각,

믿고 신앙생활하면서도

'설마.. ' 하는 마음으로 아직도 '신행 불일치'의 생각으로 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인가?


 불현듯

어제 퇴근 전 오후 '회진'을 가면서(계단으로 오르내린다.. 자주.ㅎ. )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더라' 생각이 들다가

'에이.... 일에 집중해야지.. '라는 나도 모르는 생각이 번뜩 들면서

마치 하나님 말씀을 '억지로나마' 기억해낸 것이

어이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마음이 한 구석을 스치려 했다 .

 번뜩.. 그것을 캐치해냈다.

"아..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신행일치의 삶'을 생각한다는

나 조차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이야기 책 속의...로 치부하겠는가?" 생각이 들면서

다시 내 환우 만나면서 내게 부딪쳐올

영적 부딪침을 적용하겠다는 다짐으로 올라갔고

더 친절히.. 말씀으로 인하여 더 나를 낮추고

그러한 날.. 기쁨으로 받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

'성결'하게

이전에 한번도 지나보지 못한

또 하루를

말씀대로 살려 결심하는 것,

그것이 '성결'의 내재화,

내 영혼이 단 한번의 승리로 끝나는 간헐적, 단발적 행태가 아니고

늘 .. 항상 ... 주님의 말씀에 맞추어

세상에 날 적용시키는 것..

그것이 주님의 은혜.. 늘 함께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 되어

이제는 살아서 움직이는 어느 순간에도

주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는 것이야 말로

'성결'한 영혼이 되는

지나보지 못한 길을 제대로 잘 가는 것 아닐까 싶다 .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의 매일에 적용시킨다는것은

과연 쉬운가?

 

아니다 .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

난.. 그렇다 .

하루 중

말씀대로 따르고 살려는

아주 적은 의식(意識,   하루의 대부분 .. 죄송하지만.. 잊고 산다.. ^^;;;)의 순간에

막아서는 저항들이 있다 .


 '자책'(내 잘못함에 대한.. ) , 결점(분이 잦다..육신이 강했던 것 비례로 본능이 강하다.. ㅠ.ㅠ;;)

주변과의 예기치 않은 관계의 문제.........등으로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데

아주 '저항'이 심하다.

그것..

이제는 말씀에 맞추려는 노력의 시간이 오래 됨에 따라

조금은 가능하지만

아직도

내 삶은

'도도히 흐르는 요단강물'처럼

불가능할 것 같이 막아선다 .

그래서..............!...

성결이란

내게 (아마. .. 대부분 많은 분들도.... )

거의 의미없이 저항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던 (마치 일본인들이 방사능 공포로 눈앞에 후쿠시마 방사선이 온 열도를 덮어가는데도 입에 올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의식 밑에 눌러두듯.. ) 단어가 맞으리라.


그런데..

그런 성결함을

새로운 하루를 위해 결심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러신다.


일단

성결함의 이유와 결심을 하게 되니

먼저 다가오는 요단강 물결에 발을 딛어라.. (순종, 믿으라는 훈련의 말씀)신다.

그렇다.

의심이 가고,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말씀이 있으시니

따르고 발을 디디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


 깨달음이 감사하다.


주님

성결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제게 , 우리에게 다가올

요단강 물결 같이 거부하기 어려운

여러 실제적, 심리적이고 영적 문제들이 가로막을 듯 싶습니다.

주여.

하지만 말씀에 있사와 따르려 하오니

'발을 딛을 수 있는 ' 힘을 주소서.

먼저 '성결'의 의미를 실제적으로 느끼게 하소서.

주여.

그리고 하루를 허락받았사오니

이 가 보지 못한 길을

힘껏 성결의 발을 내딛게 하사

제 발밑이 갈라져 마른 땅을 보듯

그리 되게 하소서.

주여.

믿사오니 잊지 않게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 묵상 (2013.11.13)



끌려만 가자

이전에

가보지 않았다고

정말 갈 수 없을까

 

날 어두웠다가

진정 보이지 않을까

 

내가 할

오직 한 일은

 고개들어

주를 보는 것

 

그리고

인도하시는 대로

한걸음 씩

발걸음을 떼는 것 

 

때 되어 마침내

맞이할

그 어떤 순간이

 되고나면

 

내 주님

강물 가르고

땅을 말리시면서 까지

나를 반기시리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여호와의 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가까이 하지 말라.

그 분을 앞서지 말라.

따라가라.

 

그렇게 되면 "알리니"

알게될 것 이니..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다.

지나보지 못했던 길이다.

지나보지 못했던 길은 '두려운' 길이기도 하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그럼에도

오늘 그 지나보지 못했던 길을 인도하실 것에 눈길이 간다.

하나님이 먼저 앞서 가시면

자연스레이 따라가질

그길.

 

그길은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길이기에 '해법'이기도 하다.

그것은 희망이란 이야기다.

 답답하고 머리 복잡하려는 상황에

'새로운 길'에 대한 말씀을 눈에 들어오게 하신다.

 

소망.

두려울 소망.

하지만 하나님이 이끄시니

따라가기만 하면 될 '길'.

진정한 소망.

 

 

15.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

    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요단 건너편이 비옥하나

요단 강의 물결은 두려움이다.

그러나 궤를 멘 제사장,

말씀을 매일 듣고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그냥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발을 '물가에 잠기게 하자'

 

 

17.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강이 물이 멈추어지고

강바닥이 '말랐다'

 

참 .. 대단하다.

물이 갈라져 '홍해'처럼 되는 것도 모자라

땅이 말랐다신다.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 맞으시다.

온전하신 '축복'.

 

 

이정도면 된 거 같고

요 정도면 만족하는 것은

어쩌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낮은 자존감 탓 아닐런가?

하나님은

믿고 따르기만 하면

온전하게 나를 책임지실

그래서 수량 풍부한 요단 강을 가르시는 것도 모자라

뽀송뽀송한 마른 땅을 마련해주실 분이시다.

 

우리를 건너편 '요단'강에 옮기시는 것은 당연하고

그 과정 마져 가장 편안하고 최선으로 다 인도하신다는 의미다.

 

그거 .. 나.. 소심한 주하인이

가장 원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흔들리려는 찰나에

가장 시의 적절하신..?

따라가기만 하면

그토록 두려워 하는 새로운 상황을 인도하시는데

인도하심 마져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그러신다.

 

감사하다.

맡기면 알게될 일이다.

 

 

적용

1. 기뻐하자.

 . 하나님께서 내 모든 것을 아신다.

   늘 시의 적절하신 말씀을 주신다.

 . 내 두려움을 아신다.

. 나에게 정말 정확한 인도를 하실 것이시다.

 

2. 믿자.

 말씀을 믿음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인도가 내 '믿음'을 전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은가?

 약속이 '감동'으로 영혼을 찌르르하게 할 때

 그 약속은 내 삶속에서 이루어졌다.

 믿음이다.

 사단의 소리 대신 하나님의 소리를 믿음이다.

 하나님은 날 내가 가보지 못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확실하다.

 

3. 내 가보지 못한 길을 기대하고 묵상하자.

 요단 강 너머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하지만 , 두려움이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 하나님의 말씀 만 좇아 가면 결국 넘어가지게 되어있다.

 그냥 자연스럽고 힘들 일이 없다.

 내가 할 일은 '믿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일' 뿐이다.

 

4. 하지만 목표는 있어야 한다.

 요단 강 너머.

 가나안 땅.

 내가 갈 가나안 땅은 '천국'이나 영적인 도달점 이외

 현실에서는 어떠한 지점인가?

 그 현실의 목표점을 '하나님'도 원하시는가?

 

5.  하나님과 내가 원하는 목표가 동일해야

 요단강이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아는 것이다.

 

6. 당직 방에서 내가 할 일은 '기도'다.

 오늘 TV를 안보겟다.

 성경 읽겠다.

 기도하겠다

 이 마지막을 향해 치달리는 시간들에서

 하나님의 나에 대한 뜻을 여쭈어 보는 시간들을 늘여야 겠다.

 나의 하나님 안에서 큰 목표를 다시 한번 여쭈어 보아야 겠다.

 그리고 내 가는 길의 여러가지 변수들은

 그냥 인정하고 받아 들여야 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내 당황함을 아시고 게신다.

끌려만 오라.. 라 하신다.

 

7. 끌려만 가리라.

 

 

기도

 

주여.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당신의 모습을 저에게 또다시 보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강하고 강한 의구심 덩어리, 의심 덩어리가

이제 매일 같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모습을 캐취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믿음이 늘어나고

그러하면서 조금씩 더 담대해지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주님도 아시는 계곡이 있습니다 .

주여.

그 계곡에 들어가려 할 때

다시 하나님이 말씀으로 적절히도 잡으십니다.

그 계곡은 오래된 '습관적 '생각 들입니다.

난.. 그래서 안되고

난.. 이래서 그리될거야.. 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진 생각들 말입니다.

오래된 소리들.

그것을 전 잘 믿어왔습니다.

믿음이 아주 뛰어난 자였습니다.

주여.

그럴 때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 그냥 끌려만 오거라

 내가 마른 땅 밟아 가나안으로 인도하리라' 하십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제가 정말 잘하는 일은

가만히 넋놓고 쫓아가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해야할 것 같은 의무들이 머리를 복작거리게 만들어서

안절부절 못할 뿐이지요.

귀하신 하나님.

오늘 다시 '내려놓고 맡김'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보여지는

마른 강바닥의 체험을 허락하실 것이며

그런 후 '가나안' 땅을 밟는 체험을 다시 시키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믿습니다.

내 주여.

이제 '이 현실'에서의 가나안.

그 목적에 대하여 다시한번 마음을 집중하려 합니다.

제게 있는 그 막음들..

주님..

잘 아시지요?

그냥 맡기고 나가렵니다.

인도하소서.

오늘 .. 당직서러 갑니다.

마음과 몸이 모두 조금은 가라앉아 있습니다.

감기기운과 그에 따른 영적 흐림의 느낌...

인도하셔서 좋은 방향으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사고 나지 않게 하시고

너무 피곤치는 않게 하여 주소서.

믿습니다.

믿음을 깊이 주소서.

주님 말씀 때문에 행복해지기로 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 그러야 함을 알기에 그러합니다.

주여.

믿음을 더욱 키우소서.

 그래서 보여지는 말씀의 결국을 느끼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시고 사랑 많으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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