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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도 쓰시는 군요( 고전 7:29-40 )

주하인 2008. 7. 14. 14:41
 

진료실 창틀에 놓인 화분들

강렬한 햇살 아래있지만

왜 화면은

검게 나왔을까?

 

 주님 안에 있어도

늘 밝기만 한 것일까?

 

 어찌 해야

그 빛남을

그대로 받을 수 있을까?

 

 '어두움 속에 빛이 있으시라던 그 하나님께서...'

주여.

빛을 비추소서.

이 어두운

모든 인간의 마음에................요.

 

 

 

 

제 7 장 ( Chapter 7, 1 Corinthians )

 


29.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 DJ ' 사모님이 들르셨다 갔다.

이 분은 폐경기 우울 증과

믿음과의 관계 속에서

더 깊은 아픔을 체험하고 있다가

몇 년전에

본과에 들러 몇마디 상담 후

전인적 원리에 대하여 설명 듣고

홀몬 요법을 쓰시면서

놀랍게도 변화되셔서

많은 분들을 소개 해주시고 계신 분.

쾌활하시고

눈빛이 밝아서

뵙기에도 기쁘신 분이었는데

그 분이

5분 만 시간 내달라시면서

바쁜 과정 중에 상담을 요청하셨다.

 

 얼굴 표정이 말이 아니시다.

그 속의 답답함이 짐작이 갈 정도다.

 

 이분의 말씀 왈..

수년간 하시던

홀몬 요법을 멈추었다가

다시 사용하신 지 20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밀려오기 시작하여

그 좋은 남편 목사님께 폭언을 퍼붓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예전에 볼수 없는 표정으로

진하게 우신다 .

 갑자기 서운해지고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속상함이 밀려오셔서

견딜수가 없었단다.

남편 목사님께서 주무시다가

등만 돌려도 화가 나신다고...

 말씀을 가만히 들으면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

 'Bonding..

 그리고 거기에서 탈피위한 주님의 배려...

 남들과는 다른 관점의 허락.. '

 

오늘 묵상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 29.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라는 말씀.

그래,

마지막 종말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하여

이처럼 처절히 삶도 필요하다.

그러나, 꼭 그리만 되는가?..가

묵상 구절을 읽어가며 드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그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적 생각..........

아내에게

남편에게 마음이 빼앗겨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음의 여지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하기 위해서

아내 보기를

남편 보기를 돌같이 하여야 하겠지.

그게 이론적으로 맞는 얘기처럼 보이지만

어딘 지 모르게 감정적으로

잘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냉랭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인가..

어찌 할까?

주님은 사랑이시라며

사랑을 더욱 돈독히 하다가

주님 오실 때

주님 앞에 같이 손잡고 가는게 도리가 아닌가?

걸리는

이 영적 치달음

수도적 생활

한쪽으로 비대해진 경건생활

종말론적 생활에 대한 유혹..

그리고

그러지 못하는 우리의 좌절감......

이게

오늘 묵상을 들으며 드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하려 했다.

 

 사모님과의 상담을 통해서

난 불현듯 깨달았다.

 그 좋은 부부,

더구나 신앙까지 돈독하시고

애교많은 부인과

자상하고 자애로운 -실제뵈니 그리 느껴졌다.- 남편 목사님께서는

아마도

서로 '경계선 boundary'이 없이

하나로 '융합 bonding'이 되어서 살았을 것이다.

아마도

어딜 가더라도 같이 하였을 것이며

무엇을 하더라도 상의하였을 것이고

어떤 것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없으면 안될 것 같은..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며

삶이 점차로 외부와 폭이 넓어지고

그에 반하여

자신은 육체적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근육에 힘이 줄어가며

상대적으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자꾸만

본드의 접착력이 떨어지듯

융합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며

초조해진 것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어디까지 둘이 하나로 다닐수 있고

둘이 같이 행동할 수 있는가?

그것은 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목사가 사모인지

사모가 목사인지

남편이 아내인지

아내가 남편인지 모를

모호한 책임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태 속에서 살았을 것이고

당연히 그 경계는

아이들이 커가고

사회 활동의 범주가 커지면서

조금은 다른 활동 범위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같이 있으려는 의존적 욕구에서 나오는

상대적 박탈감 탓일 것이다.

더구나 폐경기의 격변 상태니.. ..

본딩은

두 영혼이 하나로 뭉게지는 것이며

거기에

하나님이 들어갈 틈이 없어지는

좋지 않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당장 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이런 상태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님이 ' 아내 없는 자'처럼 살아 보라고 하시는 것은

독립적으로 한번 서 보라는 말씀이시다.

아내나 남편의 영역을 인정하고

테두리를 긋고

서로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실 틈이 생기시는 것이다.

같이 바라보는 하나님이지만

매일 같이 둘이 속삭이는 바람에

주님이 개별적인 말씀의 공간이 없는 것이다.

 

게제에 주님이 허락하신 '연단'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뜻인 줄 알고 가벼이 받아라.

더구나,

그 혼란은 '더구나, 사모로서..'라는 무게는

죄책감을 하나 더 얹어

더욱 심한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다.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라 하시지 않는가?

그러한 혼란은

마치 배지난 후의 강물처럼

아무 흔적이 없어질 것이다.

염려 하지 마라.

주님의 말씀이다.

 

요새

내가 겪는 혼란의 이야기를 해 드렸다.

아내에 대하여

말도 하기 싫은

내 자신의 자괴감...

 그러면서

오늘 묵상 구절을 말씀드렸다.

'이 보세요.

 난 무슨 일이든

주님이 이렇게 소근 소근 말씀하세요.

정확히요........'

  그리고

내 일생에 관여하시는

큐티의 말씀을 드렸다.

오늘 묵상구절 '고전 7:29-40' 읽어보라 권해드렸다.

 

 눈물을 흘리신다.

들어오실 때는

너무도 당혹스러운 눈물이었지만

지금은 '이해받은 자'의 기쁨의 눈물이었다.

 나가시면서

아침에

갑자기 오늘 '주하인'에게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니

오셔서

2번째 해결을 받고 간다고

감격해 하신다.

위에서 말씀하신 대로

처음 오셨을 때의 깨달음과 이어

두번째의 감격..........

나를 위해서 기도하신단다.

 

주님의 말씀에 매일 같이 서자..고 권유해 드렸다.

 

 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조언을 하는 동안

머리가 복잡하였던 묵상 구절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다.

 주님이 살아 계심을 가끔

이처럼 불길같이 느낄 때가 있다.

 생전

그 사모님은 

우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씩씩하신 분이신데

해필,,

오늘

머리가 복잡할 때 오신다나?

며칠 째 계속 말도 하기 싫을 정도로

집에서 속상해 있는데..

내 문제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아까 말씀 전해드린대로

쓰시기 위해

본딩을 풀 연단으로 주신

이 혼란을 이리도 쓰시는 군요.

 

 주여.

마음이 나뉘지 않게 하소서.

주여.

주님 안에서

당신을 향한 에너지가

사단의 발길로 인하여 이리 나뉘지 않게 하소서

주님

도우소서.

지금까지 그토록 본딩이 되어서

견딜수 없는 외로움과 분노에

시달리는 지혜없음에

더이상 시달리지 않도록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님.

아내가 있어도

아내가 없는 자 같이 하라는 그 말씀이

자유로운 결혼생활

주 안에서 손해 없는 담백함.

본딩없는 책임감 있는 결혼생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줄 압니다.

말하기도 싫습니다.

그 냥 속상했었습니다.

그게

주님

본딩의 또다른 모습인 줄 압니다.

도우소서.

변화 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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