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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이상하다( 고전9:1-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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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이상하다( 고전9:1-18)

주하인 2008. 7. 16. 09:12

제 9 장 ( Chapter 9, 1 Corinthians )

 

 어떤 상황에도

주님의 십자가를

잊지 않도록 하소서.

 주여......

 

 


1.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강력한 자기 인식.
  
 
 
3.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비난에도 당당하다.

확실한  논리적 배경이 있다.

 

 

 

4.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7.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권리에 대하여도 온전히 이해한다.

당당하다.

 

 

 

12.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그는 참는다.

범사에 참는다고 결심한다.

아니

정말 잘 참는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있다.

그것을 위해

그는 그의 전 일생을 헌신한다.

전력투구한다.

 

 

 

 바울이 참 이상하다.

 

공개적으로

사도에 뽑힌 적이 없음에도

저렇게 자기가 사도라고

주장하고

무지하게 대단한 일을 해낸다.

전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대 역사를 이루어 낸다.

 그 과정의 고초가 어마어마하다.

본인의 고백에 의하여

태장을....로 성경에 나온다.

 어느지역에서는

돌로 맞아 죽은 줄 알았었는데도

그 날짜로 일어나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한다.

오늘 묵상에서는

자기의 권리를 다 포기하고

직접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삐지지 않는다.

성경을 통해서 본

그의 행적은

'역동적'이다.

'파워풀'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늘 당당한 것 만은 아니었다.

그의 고백처럼

'죽도록 불안에 떨었지만

 성령으로 인하여 .. ' 견뎌 나왔다는 구절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 고백처럼

늘 당당하고 변함없이

주님의 일에 열심일 수 있는 이유는

그는

자신이 '예수님'과의

드라마틱하고 개별적인

만남이 있은 이후 생긴

확실한 '사도'로서의 자기 인식 탓이다.

거기에

늘 '주님을 위하여'라는

대명제로 그의 가슴을 채우고 있어서

그것을 위하여

그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수 있었기에

이러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늘 그런 그가 묘하다.

 

 난 어떠한가?

열심히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확 지쳐 버린다.

열심히 변하는 가장의 모범을 보이다가도

어느새 지쳐 버려 가만히 있고만 싶다.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남의 도우미가 되겠다고  열심을 내고 주님을 증거하려 하다가도

지칠 때가 있다.

수년간 블로그 글 써오면서도

수차례나 고만하려던 적도 많다.

그럼에도

그렇게 그렇게 이끌어져 왔다.

 

 생각이 빙빙 돈다.

  

 왜일까?

왜 나는 사도 바울이 오늘 묵상의 서두에서

강력하게 자신의 사도직과

권리에 대하여 피력하고

그에 대한 포기하고 열심을 내는

그 열심을 지속하지 못하는 걸까?

 

  고백에 의하여

찬양을 통하여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다.

제발로 교회에 나간 불신자도

고부간 갈등의 해결도....있다.

블로그 글을 통하여

위안 받고

변화되었다는 고백도 비밀글로 받았다.

수차례.

실은 그 글들을 써 감에 따라

내 신앙고백이 싸여가고

내 삶의 틀이 변화가 되어 가고 있다.

진료 현장에서

건네는 몇마디 말이

놀랍게 회복되는 치유의 경험을 도우고 있음도 있다.

전도도 많이 했다.

그러하기에

이전의 '나 같은 것이.. '라는 자책성 자의식이

이제는 '나 같은 것도..'라는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울님처럼

변화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당당하고 힘있는

소명까지는 유지하기가 힘들다.

 

아니.

돌아다 보면

가끔..이것이 헛된 신기루가 아닐까?

또 다른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힘이 들고

외롭다고 느껴질 때

이제 그만 하고 싶고

그냥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단,

위에 적은 긍정적인 것 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말이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

모든 일을 그냥 내려 놓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냥

마냥 쉬고 싶다.

 그럼에도

바울님은 그렇지 않은 가 보다.

 그의 고백이 범상치 않다.

그가 이상하다.

그는 왜 다르지?

 

 묵상구절을 읽어 내려가며

그의 고백에서 다시 힘을 받는다.

12.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그도 참는다.

그도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닌 것이다.

위에 썼듯이 그도 '죽을 만큼 두려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참는 것이다.  

 실은

저 원리는 나도 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 본성이 아니고

내가 배워 온 것이 아닌 것을 참아 내야 하는 것이다.

그 분의 복음이

내 인내를 통하여

내 낮아짐을 통하여

더욱 널리 전파된다면

당연히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난 왜 못참는가?

알면서도 왜 못참는가?

사도 바울도 힘이 들었다 한다.

나도 힘이 들다.

그러나,  그는 참는다.

나는 못참는다.

 이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만

확고부동한 자기 인식이 있어서다 .

나도 그게 필요하다.

그리고

그도 참았듯이

그도 힘들어 했다는 사실로

예수, 그 분이 나를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는 그 분을 위하여

매일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나 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조금 더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할  당위성이

내 속에 확고 부동히 자리 잡아야 한다.

 난 참지 않아도 될 위치기는 하지만

주님을 위해서 참는다.

난 권리도 있고

내 자격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선행이 되어 야 한다.

그 인식은 '하나님'이 전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난 어떤가?

주님 안에서

주님이 나에게

몇가지 달란트를 통하여

이렇게 세우신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같은 확실한 자기 인식이

자만감이 아니고

겸허한 자존감이 되어야 한다.

 

 겸허한 자존감.

확고 부동한 자기 인식.

그러함으로 나오는

주님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경외감.

그 온전한 예수님에 대한 감사함으로 나오는  전도의 열정.

그 열정으로 나오는

모든 것을 참음...

 

 바울의 이상함이 이해가 간다.

 

나도

바울처럼 이상해져 버리고 싶다.

누가 건드려도

그냥 가만히 웃고 만 싶다.

주님 예수님을 위하여

주님 예수님 때문에

주님 예수님이 좋아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서.............

나를 귀히 여겨.....

 

 

 

적용

 

1. 바울처럼 이상해지자.

 누가 뭐래도 웃자.

  비난에

  힐문에 당당하자.

 

2. 이상한 것을 기쁘게 생각하자.

주님 때문에 이상해 지는 것이다.

 

3. 사람을 사랑하자.

그 영혼을 사랑해서 전도하자.

전도를 위해서 참자.

 

4. 내 힘듦을 기뻐하자.

 

5. 내 권리를 포기한다.

 보내지는 검진 환자도 기쁘게 맞겠다.

 쉬고 싶을 때 강요당하는 일도 참겠다.

 권리와 의무를 혼동하시는 분들에 대하여 인내하겠다.

  주님의 화합을 해치는 것은

 내 몸으로 받겠다.

 

6. 주님께서 내 어려움 아실 것이다.

 내 소임이 다하면 데려가시겠지.

 

 

 

기도

 

주님

가끔은

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길 싫을 때도 있습니다.

열심을 보이던 것들이

하찮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주여.

사도바울의 고백이

부럽습니다.

이상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는 그럴 수가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그의 변함없는 열정과

변함없는 자신을 낮춤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와 다른

그의 강력한 자기 인식이

주님 예수님과 직접적인 교류와

그 분의 3년간의 연단의 덕임을 알기에

부럽기도 합니다.

주님

자격되지 않는 줄 압니다.

하지만 소원할 것은

나의 자리에서

나의 소임을 확실히 인식하게 하소서.

주님의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모든 것을 다 인내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쳐도

하등 속상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비틀리지 않도록 하시고

걸림이 없도록 하시고

억울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주님 탓에

그냥 참아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하소서.

주님

그리 선택하게 하시고

날 깊은 소명의 의식으로 이끄소서.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소명으로 날 잡으소서.

그게 비록

단지 아버지로

단지 남편으로

단지 소시민으로서의 그것일 지라도

사는 동안

주님의 향기를 풍기는

소시민,아버지, 남편,의사... 가 되게 하소서.

 그 안에서

당신 때문에 참아가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소서.

간절히 빕니다.

간절히........

주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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