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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요1:1-16]

주하인 2016. 9. 27. 11:10


 
3.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영적 감성이 뛰어난 자이고

하나님이 말씀을 내리시는 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다.

아.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자... 다.

방자한 성격..?

그보다는 아직은 덜 다듬어진 ,

하나님을 아버지 처럼 만난

사춘기 혼돈을 겪는 아들 같은 태도를 보이는

실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 라는게 옳다.


 놀랍다.

아버지와 대화하는데 뛰쳐나가서 도망하는 사춘기 아들이 골머리 아프긴 하지만

그 아들이 배타고 다른 곳으로 도망하다니

어처구니 없고 재미지기도 하다.

한편...

그 겁없음이 놀랍고.

하나님의 공의.... 생각만 해도 두려운 것을..ㅎ



5.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그는 이런사람이다.  

정말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어찌 깊이 잠들 수가 있는가?


아니다.

실은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제대로 믿고 있는 사람이다 .

무슨 이야기냐고?

아버지는 절대로 자신을 죽이지 않으실 분, 버리지 않으실 분임을 알고 있고

그 온전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믿고 있으니

자신의 육신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팍~'하고 터지는 '화'를 막아볼 생각도 못한체...

아니 그 화를 막아보려 노력햇지만 수도 없이 넘어지고 갈등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요번에는 특히 하나님이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니느웨 백성들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말씀하시니

그 자신의 내적인 갈등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도망쳐 나온 것이고

도망쳐 나와서 하나님이신 아버지께 죄송하긴 하지만

절대로 자신을 죽이지 않으실 것이고

이 '풍랑'은 하나님이 자신을 붙드시는 사랑의 회초리 임을 알기에

그는 그냥 '사춘기의 질풍노도'같은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그의 행동의 본질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아버지'로 온전히 마주함으로 나오는

그래서 철저히 믿는 자의 행동을 하는

조금은 미성숙한 성품을 가진 모습이라는 것이다.




6.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다른 사람,

대부분의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태도.

올바르다고 배우는 모습들.


당연하지...이렇게라도 하나님을 만나야지.

고난이 유익이 맞다.

그래서래도 하나님을 떠나지 못하게 해야지.

그래도 이들은 하나님을 정면 거부하는 '어이없음'은 행하지 못하지 않는가?ㅎ 


 아버지 앞에 데면 데면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함?ㅎㅎ  홍길동... )

그러면서 지키는 '아버지 앞의 예의',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질 일시적 두려움에 의한 믿음... 과

엉터리이지만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과

과연 어느 것이 '아버지' 된 자로서

이쁜 자식일까?




12.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보라.

그런 추정이 무리가 아닌 것.

'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나를 버리라.. 잖은가?


얼마나 속에서 '니느웨'에 대한 화가 넘치고

얼마나 그 기본 성품이 거칠면 ^^;;( 결정이긴 하지만 '죄'는 아니지 않을까? )

저런 태도를 보일까:?

그럼에도 그는 그런 사람이다.

'철저히 하나님을 믿는 자.

 자기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내리시는 징벌 이심을 확실히 믿는 자' 이다.


  

  16.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다른 사람들.

대부분의 그냥 믿는 자들은 끝까지 이렇다.

물론, 기도는 하고 경외도 하고 예배도 드려야 한다.

이건 기본이다.


그런데 그냥 '경외'만 하고 축복이나 기복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와

아버지로 하나님을 만나는 자,

코람데오 신앙을 가진 자들의 실수를

하나님의 입장에서 진정 기뻐할 자는 누구일가.. 말이다.


더 좋은 사람.

더 훌륭한 신앙인.

더 주님께서 바라시는 자..들은

저러한 믿음을 가지고

인격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자가 맞지만

어차피... 아무리 해도 자기 속에서

자기 만의 특질이 나오면

그런 자신을 받아 들이고 인정함도 필요치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며

요나와 닮은 듯한 나를 본다.

그러면서도 요나의 거친 그 모습을 반성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심을

다시금 말씀으로 확인해주시니

그 얼마나 감사한가?
 

주님.얼마나 감사한지요.

이 거친 사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데는 차이가 없구나.. 함을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자꾸만 일상에서 제가 원치않는 죄로 인하여

삶이 꼬이고

말씀이 그로 인하여 강하게 임하지 못하는 듯하고

자꾸만 마음이 빈한해져 가는 듯할 때

주께서 그러한 나를 자책하지 않도록 하시고

그러함에도 사랑하심을 보이십니다.

주께서 주시는 환란이

물론 나를 위한 사랑이심도 깨닫고 있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이 안계시면 이 죄 많은 주하인..

어찌 다시 일어나 힘을 내겠나이까?

매일 부활의 삶을 살게 하시니

우리 주님이시여.

우리 예수님이시여.

우리 성령님이시여.

온전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요나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뜻처럼

고생 덜하게 어서어서 바뀔 수 있도록 하시되

주님의 영으로 그리하게 도우소서.


주여 .

전 이런 사람입니다.

거친 사람입니다.

덜 다듬어진 사람입니다.

주여.

분이 많과 화도 많은 자입니다.

그러나.. 주여.

다행이게도 주님의 이유로 제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히 아는 자 입니다.

제게 임하신 말씀이 저 분 요나처럼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살아가면서 매일 주시는 레마의 말씀으로

서서히 밝혀가는 좁은 길을 가는 자 입니다.

내 주여.

주님.. 이 과정에서 발 헛디뎌도

주님 보시기에 엉터리 같으셔도

저로 자괴하지 않게 하시고

어서 회개 하게 하시어

주님 뜻대로 잡혀 사는 자 되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삶의 이유임을

가슴 깊이 새겨 새겨 살수 있도록 하소서.

주님.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내 가서 주님 곁에서 영생을 누리는 전 단게의 과정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내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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