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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이드로의 양떼(출3:1-12)

주하인 2015. 1. 28. 10:15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모세.

왕자이었던 남자가

광야에서 '양'을 기르고있다.

나름.. 많이 적응했다.

그것도 ' 이드로의 양떼'다.

제 것도 아니고 남의 것이다.

바닥까지 떨어져

그 삶에 완전 적응했다 .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이드로의 양떼.

의미하는 바가 크게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명퇴하는 베이비부머들이 많다.

그들 중 적응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자도 많지 않겠는가?

그런데 모세는 그 신분의 급변이 너무나도 극과 극이면서도

 '남의 양'까지 쳐가면서 그 삶에 완전 적응했다.

 

이게 '영웅' 인듯하다.

돈을 많이 벌고 , 성공하고, 떵떵거리며 뒤로 젖히며 살다가

나이 들어 가면서 그 것의 부재를 염려하는 불안의 눈빛을 가진 사람 들보다

없어도 고요한 눈빛을 소유한 사람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나는...

 

모세는 철저히 낮아졌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그 모세의 행로 앞에

떨기나무가 불타는 장면이 마주쳐졌다.

그런데 그 불은 예사롭지 않다 .

여호와의 사자가 그 불 안에서 나타났다고 했을 정도로..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하지만 그 모습은

인간 모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타지 않는 떨기나무' 만 보였다.

그러면서 그런다.

 

' 이 큰 광경'을 보리라.

 

광야에서

그것도 '나락으로 떨어진 보통'의 좌절한 자들이라면

자세히 보지 않으면

타지 않는 불 가운데 의 떨기나무를 발견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도

대단한데

그것을

' 이 큰 광경' 이라는

감탄의 소리로 본 것도 놀랍다.

 

희한하기는 하지만 나 같으면

'어 이상한데...'하고 호기심을 발휘는 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런 감탄의 감성이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 모세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는지 이해가 된다 .

 

그는

온갖 풍상과 영화를 다 경험한 자다.

그러고 나서도

자신을 다시 세우고

감성 까지 온유하고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감성은

' 불꽃 속의 하나님 사자'는 비록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 깊은 영감으로 이끌리었을 것이다.

이게 좋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 사자,

하나님으로 예표되는 그 사자가 그런다.

'네 선곳이 거룩한 곳이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

광야의 삶을 산다.

누구라도 안그럴까?

이 유한한 인생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천국 여정'의 길일 뿐이다.

누구도 그렇지만

갈길 모르고 광야에서 흥청거리며

죽음이후를 두려워 하여 방황하다가

썩어져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아는 자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갈바 몰라 갈팡 질팡하지만

우리의 '숙명'은

반드시 예수님 계신 그 천국으로 가야 하는

인생 광야의 과정을 밟아야 할 게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자 숙제'이다.

 

그 과정에서

고저와 등락이 있을 수 있고

영화와 좌절의 능선을 넘나들어야 한다 .

누구라도 그렇다.

물질로 안그러면 심리적으로라도

영적으로

100%편할 수 는 없다.

뉴질랜드의 꽃, 온실의 꽃은 풍랑은 덜하지만

향기가 약하다.

그들은 인생의 진짜 복을 경험하지 못하기에 그렇다.

 

진짜 복이란 무엇인가?

 

그 광야에서 받는

고난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불가운데의 연단으로 작용되어

불순물이 빠져나가고

그 영혼 속에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허락하신

순금같은 빛이 발현되게 되는

그 과정을 이루어가며

내 영혼 속에서 나오는

성령의 강력한 운행으로 인한 그 빛이

어째도

어떤 상황에도

'행복','감사, '은혜'...의 매일이 되어가는 것이

진정한 복 아닐까?

광야 40여년의 막바지에

모세는 자기 소유가 없이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몰았지만

그는 내면의 빛을 소유하고 있는 자였다 .

그에게 더 이상 흔들게 할 인생의 고통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이제 그에게

' 떨기나무'에서 '하나님' 이 나타나신다.

그 많은 좋은 , 멋진 위용의 장소를 물리치시고

떨기나무, 그것도 광야 떨기나무에 불가운데 보이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연단 받은 자의 눈에만

보이시도록

그의 하나님으로 내밀하게 나타나시는 것이시다.

세상의 그 누가

그 떨기나무 불을 알아 볼 수 있는가?

그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알아 볼것인가?

 

이제 그에게 하나님은 그러신다.

'네 서있는 곳이 거룩하다.

 신발을 벗어라'

 

그렇다.

서 있는 곳이 '하나님'의 임재 장소이다.

내 거하는 곳이 하나님의 성전 안이다.

내가 '성전'이다.

 

 

 나.

오늘 부터 이곳에서 진료 시작하였다.

오전 중에 그리 적지 않은 환우 분들이 오셨다.

이전보다는 시골이고 산속에있는 병원이라서 인지

한가롭기는 하지만...

 

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으려 한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드로의 양떼'가

그리 내려 가는 것은 아니고

더 높이 올라가는  과정임을 가르쳐 주신다.

그렇다 .

하나님이 전제되지 않으면

절대로 '의미'를 알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들은 현재 상황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불안과 불행을 전담하지만

하나님을 만나

진실과 진리에 눈을 뜬 자들은 다르다.

이드로의 양떼를 모는 이전의 황제 였어도 , 왕자였어도

흔들릴 일이없다.

내가 그렇다.

나보고 그러신다 .

말씀을 통해서...

 

이제 내가 할 일이 있다.

난.. 떨기나무 불꽃을

광야 멀리서도 알아볼 영적 훈련을 해 오고 있다.

묵상.. 말씀..기도.. 하나님..은혜..

그러기에

조금더 오늘 이후 신경 쓸것.

발에 먼지를 털고

늘 주님 앞,

코람데오로 살 마음을 더 지녀야 한다 .

감사하다.

 

주님.

이드로의 양떼를 통해

저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헛되이

제 마음을 사로잡으려던 논리들이

좌절입니다.

이드로 양떼의 의미 였습니다.

그래서 속상하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다시 섰습니다.

아니..오히려 더 힘을 얻고

나아갈 오늘의 방향을 잡습니다.

 

부디 제 있는 곳이

그런 자리가 되게하소서.

이 병원이

떨기나무 불이 있는 곳.

 

믿습니다.

저로 인하여 그리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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