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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어쩌면(출2:11-25)

주하인 2015. 1. 27. 09:53


 
13.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모세는 자기가 ' 히브리 사람' 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정체성의 혼란을 이겨내고

드디어 그는 '히브리 사람'을 동포로 사랑하는 경지까지 올랐다.

그래서 그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동포끼리의 싸움을 안타까워 했다.


 대단한 성장이다.

애굽의 왕자로서의 온갖 유혹을 이기고

히브리 사람으로서 저렇듯 성장할 수 있었음은

성경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성을 지키는 것보다 힘들다'는 표현처럼

그 대단함이 놀랍다.

자랑스러워 할만하다.

그래서 그는 동포들 앞에서

놀라운 자랑의 , 사랑의 마음으로

'네가 어찌하여.. '했을 것이다.



14.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이질 시 받아 들였다.

그리고는 그리도 비밀리 해온 일을 가지고

추궁을 한다.


탄로.

죄라 생각지 않았던 일의 '죄'됨.

그 놀라운 소름끼침.

그는 '파국'을 맞이했다.

현실적.

심리적.

영적.......

전 분야에서 그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광야로 도망쳤다.

신문에서 '가진 자'가 좌절할 시 가족을 죽이는 사고를 치는

극악의 절망을 보았다.

가진 자들의 우울증이 심하다.

가진 자들은 재기가 힘들다.


그는 그런 좌절을 맛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살아 냈다.

부인을 맞이하고 아들을 낳았다.

그게 '사랑스러웠을까?



23.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그 40년의 광야 생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을 만큼 힘들었지만

모세는 그보다 훨씬 큰 '고통의 광야'를 맛보았다.



25.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그러나, 모세도 이겨냈다.

'하나님'이 있으시기에 그러했다.

세상의 절망은 절망으로 끝이지만

믿는 자는 믿는 자에게 붙드시는 손이 있다.

그들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여 '믿는 자'란 이름을 붙혀진 자,

그래서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자,

성령이 함께 하시는 자들은

'넘어지나 엎드러지지 않음은 주가 붙드심'이기 때문에

넘어지지 못하는 자들이다. ^^*


모세는 '기억'되었다.

하나님께 기억되었꼬

그의 고통은 이스라엘 백성 속의 '모세'로 기억되었다.


그의 고통은 소망을 넘어

다른 '기억'의 이룸을 위한 준비였다.


그렇다.

모세의 머리,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절망이다.

그러나, 그는

그 광야의 40년이 헛되이지 않았다.


자신의 우월함,

자아의 뛰어남,

교육의 결과로 인한 ' 정체성'의 깨달음과 유지는 가능했지만

그 과정은 '모세, 그의 우수함' 뿐이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자아'가 죽어

예수님 십자가에 같이 못박히는 자다.


오늘 매일 성경 묵상 주석에 이리 나와 있다.

" 최근에 내린 내 선택은 믿음에 따른 선택이었습니까?"


나.

"그렇다. '

최소한 부하지는 않은 듯했고

번개가 번쩍하는 듯하고

하나님이 바위를 날리는 폭풍 속의 뚜렷한 음성은 아니었지만

기도하고 기다리며

(나름의 내 본성적 부족함에 죄송해했지만 ^^;;)

영적 '고센' 지방으로 간다는 말씀을 묵상해가며 결정한 일이다.


'어제'

짐을 다 꾸려 이곳 '충주'로 내려왔다.

시골.

생각보다 썰렁한 병원.

기대는 크게 안한다 했지만

안개 짙게 끼고 비마져 부슬거리는 겨울의 늦은 오후에 내려와

아무도 없는 병원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생각되어지는 바가 많다.

'걱정'.

야곱의 고센의 생활이 그리 풍족하지 않을 것이지만

뒷방 늙은이는 아닐 것,

오히려 풍성한 깊은 영성을 기대는 했지만

그래도 .... 이다.


마음이 조금 혼란 스려우려 했다

기도했다.

마음이 가라앉기는 했찌만

잠이 잘 안온다.

자리도 바뀌고....

결국 내 속의 모든 잔잔한 요동은


어쩌면


그리 생각지 않으려 해도

'모세'의 광야 도피같은 심정이 일말이나마 남아서 인듯 하다.

이전에 비해서..

확연히 더 좋지는 않다.

그렇다고 크게 현실적.. ㅜ.ㅜ;;...이다.


저녁 늦게까지 필요한 물품을 더 사고

차트 들여다 보고

새로 맞닦드릴 환경에 준비하다 보니

새벽 4시 넘어서야 잠이 겨우 들었다.


아침에 들여 다 본 묵상에서

묵상 주석에서

하나님은 뚜렷이 다시 한번 내게

위안의 말씀을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나..

기도하고 왔다.

그런 선택을 했다.

그렇다면 흔들릴 일이 없다.

어쩌면...

아니.. 난.. 확실하다고 믿으려 했지만

내 부족한 믿음은 '어쩌면.. '이란 단어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내가 잘 들은 것이 맞을거야.. ' 라는 의구심을

다시한번

아니..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다.. 라는 도장을 찍으시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어쩌면 조금은 미성숙한 믿음의 단어처럼들리는

'어쩌면'이라는 어감을

그래도 '네' 수준이면 훌륭하다.. 라는 느낌으로 받으시는 듯...

감사하다.


이제 할 일이 많이 남아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자챠트 , 내게 맞게 정리하고

오후에 '초음파 '기구 설명을 들어야 하고

같이 근무하실 선생님과 진료 시간을 조율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차도 좀 청소하고...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혼자 이리 있으니

이 나이에..

홀로...

이 외진 곳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눈치..

이전에 비교해서..............라는

부정적 언어들이 머리 속을 자꾸 뒤집으려 해서

자꾸만 눈을 감고 주님을 찾게 됩니다

주여.

나름의 혼란은 싫고

마치 광야에 떨어진 듯 속상한 마음도 들려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이 '모세'의 허락된 고통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십니다.


저.

모세 같이

누구를 위해 크게 쓰이기 위하여

강력하게 '연단' 받는 것은 아님은 알지만

어쩌면

나의 인생에

나와 주님 만이 아시는

내 인생의 '지금 시간'임을 깨닫습니다.


마음이 편합니다.

주님 주신 말씀으로 가슴 한구석에서

다시 따뜻하고 기분 좋은 나른함이 올라옵니다.

주여.

제게 성령으로 임하실 때

주님이 기뻐하실 때 오는

나름의 느낌임을 압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다시 힘을 내어

내 머리로는 이해가지 않는ㅇ

인생의 변화에

힘을 내어 적응하려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어떤 연단을 받아왔는지

그래서 어떤 때 쓰임을 받았는지

잊지 않고 받아 드리게 하소서.


저도 이곳에서

낮아지고

약해짐을 기뻐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자아의 성숙을 기대합니다.

옛 자아는 무너져 십자가에 못박히고

주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다시 부활한 새로운 영혼이 되길 원합니다.

언제까지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르지만

주하인...기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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