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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의 자유(고전10:23-11:1 )

주하인 2008. 7. 20. 09:56

제 10 장 ( Chapter 10, 1 Corinthians )

 

 

 그냥 이대로

 

 그냥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비록

한송이일지라도

이 애처로운 

꽃을 피우다

그냥

주님이 부르시면

생명가득한

주님의 품안에서

이 모습 이대로

소롯이

잠들었으면 합니다.

 

주여.

정말

간절합니다.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주님 안에서 난 '자유자'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유를 위하여

나에게 유익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제한 한다.

그게

주권적으로 제한할 힘을 가진

진실한 자유다.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남의 유익을 구하련다.

쉽지는 않았다.

남을 위하여 살려면

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속에서 들끓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가능키나 하는가?

 

 그러나,

이제는 그리살려 한다.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의심하지 않겠다.

 

얼마나 나쁜 환경인가?

얼마나 좋지 않은 음식들도 많이 도는가?

광우병도 그렇고

음식에서 나오는 불순물들도 그렇고

묻지 않고 먹기는 더욱 힘들다.

그러나,

조금씩 그렇게 한다.

 

묻지 말고 먹으라는 의미는

의심하지말라는 말씀이다.

의심하지 않고는

손해볼 위험성이 많고

바보가 되는 것 만 같다.

그래서

요새 사람들은 

많이도 영리하다.

그래서 촛불시위도 하고..

병원에 와서 소리치는 분들도 많다.

매사에 의심하여

이 병원 저병원 쇼핑하시는 분들도 많다.

 

옳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옳지 않다.

똑똑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니 좋기는 하지만

나라의 집중된 힘이 분산되고

자신으로 보아도

자신의 에너지를 깎아 먹고

괜한 힘듦을 초래한다.

그 마음은 어떨까?

 우울증이 지독히도 많다.

민심은 흉흉하다.

 

 의심탓이다.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하지만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을 당위성이 있다.

 의심하지 말고 먹으라는 것이

주님의 지상명령이시니 그렇다.

그 분이 책임 질 것이기에

저런 명령하실 것임을 알기에 그렇다.

그 분이 만드시고

그 분이 운행하시는 원리 안에서

허락된 것이니

그 것으로인한 결과는

다 주님이 알아서하실 것이 아니신가?

그래서 그런다. 

 

걸어서 퇴근하다 보면

시장이 바로 앞에 있다.

가다가 이 음식 저 음식 잘 사먹는다.

가다 보면

'모이x'

'x'스 분식'등

2000원 -지금은 2500원으로 올랐다 -짜리 저급 ..ㅎㅎ..음식들도 많다.

안양 역 앞에 걷다 보면

먼지가 앉을 듯 한 음식들이 유혹한다.

 예전 같으면

조심하며 먹었을 것을

그냥 잘 사먹는다.

주님이 의심치 말라신다.

까짓것 중국 김치 기생충이 들어 있는 싼 것이면 어떠랴.

혹시 1000원 음식에 대장균이 득실대면 또 어떠냐?

주님이 의심하지 말라해서 안하는 게 더 중요하지.

다행이도

아직은 먹고 큰 부작용 낸 적은 없다.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의심과

의심치 않는 단순함과의 차이는

'양심'이다.

 

 양심이란

누구의 강의에서 듣게 된 바

두 가지가 있다 한다.

 하나는

사랑을 받고 자연스레이 형성된 진짜의 양심이다.

그 사랑은 부모의 사랑, 선생님의 .. 다양하고 진실한 사랑이 있지만

무엇보다 진실한 변하지 않고 변개치 않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형성된

양심만이 100% 진실한 양심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혼나고 강제적으로 마음에 형성된 '하지말아야 한다'는 강압적 가짜 양심.

전자는 편안한 가운데 선택이 이루어지고

그 선택을 통하여 자존감이 자꾸 높아지는 반면,

 후자는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하면서도

할 때 마다 속이 상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그러다 보면 가슴앓이가 많아진다.

누르면 더 하고 싶다.

규율이 강해질 수록

사회가 그래서 더욱 거세지고 암울해진다.

현대의 사회가 그렇다.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묵상 구절에는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는 소리가 많이 나온다.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이제

성경에서 양심에 대하여

본질을 찔러가기 시작한다.

양심에

내 양심이 있고

남의 양심이 있다지 않은가?

 

내 양심은

사랑으로 보고 배워 동일시 됨으로 생기는

자신의 진실의 양심이고

남의 양심은

남의 강제적 소리에 의하여

알게 모르게 형성된

자아의 왜곡된 틀, 내지 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가짜 양심.

 

 이 두가지 양심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진실한 양심을 통하여

주님의 도우심으로

단순하게 삶을 쳐다보고

조심하고 인내하는 것이

삶이 행복해지는

기본 출발선이다.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한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자신이 주권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분노나 내재된 갈등이나 속상함 보다는

감사할 수 있고

힘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은

영혼에 진실로 형성된 '양심'에 의하여

삶을 사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남들의 소리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비방에 아무렇지 않다.

괜히

속상함에 촛불들고 길을 나서고

그러다가 폭력에 쉽게 물들지 않는다.

괜한 비교로

남들에 대한 우위의 감정으로

험담이나 손가락질 할 이유가 없다.

그런 단순한 사람들이 늘어날 수록

세상은 점차로 맑아지고

천국같이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이렇듯

행복하고 건강해 질 수가 있는가?

누구나 진실의 양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가?

누구나 다 이렇게

단순하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단 말인가?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답이 있다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 있으면 된다.

 

이것도 가능한 일인가?

말은 쉽지?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후자의 경우의 분노에 해당한다.

 

난,

두 마음 다 경험했고 하고 있다.

오랜 역기능 가정의 성장으로 인한 혼란과

주님의 강력한 사랑의 체험으로 인하여 

내 마음이 녹아져 나가며

그 간극을 '진짜 양심'으로 채워가는

그 과정에 있다.

주님의 사랑으로 녹아 날 때는

세상은 다 아름답다.

하지만 아직도 구습이 날 사로잡을 땐

어둡게 보이고

의심이 사로잡고

불행해 진다.

내 속이..............

이 제 그 비율이 

점차로 주님 쪽으로 커가고 있다는 게 사실이지만...

 

 주님의 사랑을 알 수록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대 명제가

어떤 강박적 관념보다는

그 분을 위한 삶이

기쁘고

기쁘게 순종하다 보면

더 큰 은혜가 사로잡을

그 선순환의 원리를 알기에

주권적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싶다.

'주님의 영광' 소리 들으면..

답답함 보다는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지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다.

 

 

 적용

 

1. 성경 여섯 장 읽겠다.

 말씀은 주님의 명령을 잊지 않는 지름길이다.

내 양심이 선해지는 기본 이다.

주님이 부드럽고 선한 아버지로

자리 잡는 출발이다.

 

2. 단순해진다.

말씀으로 내 영혼을 질서를 잡겠다.

그리 선택한다.

나머지는 주님이 알아서 시키신다.

단순히..

 

3. 난 자유자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 임을 믿는다.

 이게 아니면 늘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다 .

그것은 억울함이나 자기연민의 기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난 자유자다.

 

4. 그러나, 난 내 선택적 의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했다.

 결정한다.

 늘 잊는다.

 그러나, 그리하지 않도록 도우심을 믿는다.

 

5. 남을 위해서 산다.

 그러려고 최선을 다 한다.

 내속에서 들끓는 가짜 양심을 내려 놓는다.

 

6. 양심에 대하여 묵상한다.

 오늘 하루 종일...

 

7.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은 아무리 옳은 이유로 들이 닥쳐도

사단의 영역이다.

주님은 의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길이다.

 

8. 손해를 보아도 주님의 뜻이면 쫓는다.

 의심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앙탈일 뿐이다.

주님이 하라는데 손해를 보겠다고 선택하면 된다.

나는 자유롭게 손해도 보겠다.

 

9. 비난을 물리친다.

내가 결정한 일이다.

그냥 가만히 있겠다.

내가 선택하고 비난은 받아 들이겠다.

 그 비난에 대답할 논리는 가지겠다.

하지만 입은 닫겠다.

주님은 그것을 원하신다 .

오늘 하루 그리하자.

 

10. 내가 감사함으로 선택하는 것은 비방 받을 일이 없다 .

 그래도 그들 문제일 뿐이다.

 난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감사하자.

 주님 안에서 선택적으로 손해보자

 

기도

 

주님

단순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의혹이 있어도

의심하지 않으려 합니다.

속이면 속아주렵니다.

속지 않으려 몸부림치지도 않겠습니다.

그게

주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양심 때문임을 이해하고

주님이 단순하게 사는게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길이고

주님 말씀대로 따르려는 오늘의 의지가

주님의 기쁨을 맛보는 지름길임을 알기에 그리하겠습니다.

자유하나

자유를 내려놓는 자유를 맛보길 원합니다.

그 것은

주님이 내 선택의 어떤 것도 존중하신다는

자유로움을 의미합니다.

내가 어떠한 죄책감으로 부터도

묶이질 않길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스스로 날 제한 하는 것이

더 자유로움을 압니다.

그래서

그 속박의 자유를 선택합니다 .

주님

인도하시면

그대로 따릅니다.

남을 위하여

오늘 하루 살기를 최선을 다해 명심하겠습니다.

억지로 찾기보다

나에게 다가오는 상황 안에서 그리하겠습니다.

그 마져 강박적으로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

그 마져

주님 안에서 자유로운 상황이 되길 기다리며 그리하겠습니다.

굳이 허락되지 않으면

그 마져 자유로이 내려놓겠습니다.

주여.

아픔이 올라오면

내려 놓게 하시고

주여

답답함이 가로막으면

날 풀어주소서.

주님

속상함이 올라오려면

주여 깨닫게 하시고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안에서 해결할

지혜와 의지를 주소서.

그것이

정말의 기쁨임을 알기에

가슴 떨리는 흥분으로 좇게 하소서.

주님의 명령이

명령을 넘어서서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평강의 선물을 위한

전초도구임을 이해하게 하소서.

그래서

무조건

말씀대로 좇게 하소서.

 그리할 은혜의 마음을 제 안에 허락하소서.

진짜 양심

주님으로 인한 진실의 양심이

소록소록 제 안에 자리잡게 하소서 .

그래서

그게 좋아서라도

제 삶의 모든 행태가

군살을 제거 하고

결과적으로 주님 안에서

정말의

자유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주님께 이 주일의 영광을 올리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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