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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고난(고전10:1-13 ) 본문

신약 QT

눈에 보이는 고난(고전10:1-13 )

주하인 2008. 7. 18. 10:59

제 10 장 ( Chapter 10, 1 Corinthians )

 

 서 있는 흰꽃처럼

 

 이

흰꽃처럼

비록 적어서

그리 볼품은

없을 지라도

어둠 속에서도 환히 보이는

그런

하얀 꽃을

피우고만 싶다.

 

 고난이 와도

주님이

피할 길 허락하실 줄 알기에

그냥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한들한들

거릴 수 있길 바란다.

 

심한 강풍이

혹여 불어도

흔들리기는 하되

꺾이지 않길 원합니다.

넘어지지 않길 원합니다.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늘 조심해야 한다.

경계가 불분명한게

이 땅 살면서 지켜나가야 할 믿음의 경계다.

 

 선 줄로 알고 교만하면

교만한 줄도 모르고 교만하다가

어느새 넘어질까 두렵다.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

      하게 하시느니라
 
 아침에 환자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몇 분의 환자 분과 얘기를 했다.

 한분은 기독교인 선생님.

둘째의 '홈스쿨링 후 진학'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들.

그에 따른 삶과 교육의 문제.

믿음을 유지하는 문제들..

답은 없었지만 말이 통해서 뿌듯했다.

 한분은 불신자 .

가정폭력 후 얼굴이 다친 가운데

집을 나와

혼란한 마음과 분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병원에서 결백 증명하겠다고 오신 분.

나름대로의 정리된 길을

안내 해드렸다.

그리고는 손잡고 기도했다.

 또 한분은

며칠 전 타과에 입원하여

진찰한 환자인데

잠시 진찰실에 앉혀 놓고

(찬양동영상을 켜 놓고 있는 상태로) 다른 환자 진찰하고 나온 사이

눈물 흘리며 울고 있어서

당황해서 물어 보니

노래가 심금을 울려서 그런다던 불신자 분.

 오늘 오셔서

찬양을 왜 안트냐는 소리에 그제야 알아보게 되었는데

그 분이 마음이 우울 해 하신 것 같아

이것저것 대화하며

근본적인 치유에 달할려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그 이유로는

찬양에 울먹일 수 있는 영혼은 선택받은 영혼임을

강조했다.

나가시는 뒷모습에 대고 화살 기도 했다.

 또 한분.

아니.. 한 아이.

몇년전에 수면제 먹고 자살시도할 정도로

심한 가정의 풍파와

반항의 시기를 거칠 때

나와 대화를 하였던 아이.

그 아이가 출산한 후 왔다 .

출혈이 계속된다고..

기도해주었던 사실을 잊지 않고 기뻐하고 있었다.

아이가 나가려더니

주저 앉아 상담을 요청한다.

 들어보니

아이는 남편(18살)이 도망간 후 시댁에 맡기고

어머니와 살던 중

다시 나타난 남편이 살자고 한단다.

 아기를 생각하자니 살고 싶지만

어머니가 반대하신다고

어쩌면 좋겠냐 한다.

 그 아이는 교회를 다니던중

반항하던 시절에

목사님과 교회 선생님들의 지나친 질타로

상처를 깊게 입고 있었던 바다.

아이에게

어떻게 하고 있냐니까

틈날 때 마다

밤에 운동장 에 가서 기도를 혼자서라도 한단다.

그러면서

머리가 너무너무 복잡하다고 하소연한다.

아이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하고

'선택'의 개념에 대하여 정리 해주었다.

그리고는

그 선택에 고려할 사항은

예수님과 타인에 대한 고려..를 말했다.

내려 놓음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그리고 기다리라고........

 

 세분 사이의 공통점이 이것이다.

모두

기로에 서 있는 분들이다.

시험이다.

인생에 누구나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문제가 되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험을 내가 혼자 건너서려고 하면

절대로 하지 못할 시험.

기도하면 될 것을 이라 쉽게 말하지만

기도의 원리 내지

그 기도에서 주님이 받으시고자 하는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더욱 심한 부담감만 되게 하는  그런 시험.

.........

그런 시험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이다. 

 

 불신자들은

절대로 인생의 이러한 크리티칼한 경계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처절히 움직이고

자신이 알 수 있는 조직을 통하여

열심을 보이지만

그들의 육신에 남는 것은 '고혈압'과 '한숨' 뿐이고

그들의 영혼에 남는 것은 '우울한 마음'과 부정감 뿐이다.

기독교인이라고

모두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주님께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고는

오히려 '죄책감'이란 중한 짐이 하나 더

그 영혼에 놓여지는

답답함이 더해진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려 노력하는 순간

약속의 말씀은 모두

진실이 되어 간다.

'감당치 못할 시험이 허락된 바 없다'고 하신다.

그것을 믿으려 노력하지 않고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의뢰하는 순간 믿어진다.

믿어지는 체험이 쌓이며

영혼은 자연스레이 믿어지게 된다.

믿음은

평강을 말한다.

평강은 기쁨이다.

놀라운 기쁨 .

화려한 기쁨.

촉촉한 기쁨.

 

 세 분 들이 그렇다.

주님을 믿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 후

주님 앞에 내려 놓는 결단을 해야 한다.

그 분이 해결하는

피할 길의 체험이 이루어져 야한다.

그리고나서

하나님 만이 놀라운 피난처이고

그 분 만이 유일한 행복의 길임을

고백하게 된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구절이

헛것이 아닌 살아 있는 체험이 되게 된다.

 그 분들.

아침 부터

그 끝의 절망에서 서 있는

그들을 보며

난 그길 을 넘어오고 있는 자로서

조금은 차분한 관조의 모습으로

그들을 보아낼 수 있다.

그래서 여유로운 선택의 길을 제시할 수 있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해 낼 수 있는

영혼의 버퍼링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고난.

 

 요사이 이러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의뢰하시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 대하여

가슴이 찡하는

선한 감정이 내 속에서 살아나와

참 기쁘기도 하다.

 난

 내가 서 있는 사람 같다.

 주님 앞에서..

 그게 날 기쁘게 한다.

그럼에도

주님은 오늘 묵상구절에서 '선 줄로 알면 넘어질 줄 조심하라'라고

나오며 조신하고 겸허하길 경고 하신다.

 명심할 일이다.

실은 그보다 그들을 위해

한번이라도 더 기도할 수 있는

영혼의 넓이가 생겼으면 한다.

 

 

적용

 

1. 성경 여섯 장 읽겠다.

 

2. 오늘 어떻게 할까요?

 주님.....

 

3. 세 분을 위하여 잠시 기도한다.

 

4. 기도원 가겠다.

 

5. 서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루가 되겠다.

 

5. 넘어지지 않게 조심한다.

 죄를 지어도 즉시 주님 앞에......

 짓지 말아야 하지만..........

 

 

 

 

기도

 

주님

속이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그게 꼭 감당치 못할 어려움도 아니고

어려움이

꼭 그리 고통 만은 아님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동안

나랑 유사한 흔들림이라고 생각될

몇몇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보아

정리된 주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는 기회이기도 하고

나의 혼란과

나로 인한 내 주위의 어려움이 모두

주님께서 그냥 헛되이 쓰이지 않음도 알기에

피할 길

감당치 못할 시험이 없음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주님

예전에는 틀림없이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그럼에도

주님 

그냥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 말씀에 의거하여 걱정하지 않으려 하오니

주여

아시지요?

아울러 저희 방에 드나들었던

그들 고난의 분들에게

주님 구원의 손길을 내미소서.

특별히 힘든 세분 아시지요?

강하게 잡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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