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외로움 서러움 진실을 마주함[사56:9-57:13] 본문
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의인'은 옳은 사람이고 성경에서의 의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이며
더구나 '진실한 자'라면 세상이 인정할 만한 인격을 가진 사람일 텐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아무도는 말씀을 보면서 느껴지는 서운함이다.. 아마 감정 투영의 결과이리라 ㅠ.ㅠ)
마음에 두는 자가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다한다.
말씀을 읽으면서
'서운'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며
죽음 앞에서 누구나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이 그러함...
그러하기에 그것을 잊으려 사람들을 더 열심히 만나고 떠들고 ...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오히려 더 자신을 옴추려 가두고
그 반발로 서운해하고.. 뭐 그러한 마음이
슬쩍 하고 스치고 지나간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 살려 했는데
죽는데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죽어서 안타깝다.. 뭐 그런 마음은 떠나서
그의 죽음을 (어쩌면 나, 우리의 죽음을 .. ) 깨닫지 조차 못할 수 있다니
얼마나 속상한가?
이것.
나이가 들어가며
서서히 은퇴할 때가 다가오니
남의 이야기가 아닌듯 다가온다.
아니.. 솔직히 가장 나쁜 것, 가장 .. 그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던
불안 전문가 ㅠ.ㅠ..로
가장 불쾌한 상상을
오늘 말씀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심이다.
그런데
'죽을 지라도' '당할지라도' 라는 표현의 뉘앙스에
조금 .. 은 다른게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내가 나름 의롭게 살아오고 나름 진실하려고 몸부림 치며 살아왔는데
그렇게까지..........' 라는 뉘앙스가 하나이며
또 한면으로는
'그들, 세상의 인심이나 우리 주변의 냉랭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관없다... '는 두가지 상반된 뉘앙스로 다가온다.
그것..
어쩌면 의인으로 산다는 것..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의롭다하는 삶을 살려 노력하는 자들의 삶도
어차피 홀로 와서 홀로 가는
이 적신(赤身 = nude ^^*) 의 삶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며
그 삶은 그러기에 아무리 대단한 삶을 살았다해도
심지어는 죽을 때
누구나 본인의 감기(곳불^^;)나 손톱의 아픔보다는 적은 아픔을 주는게
인지상정이며
따라서 '외로움'과 '배반감'의 두려움은
의인이라도 내려 놓아야 할 부분임을
말씀을 통해서
오늘 묵상하게 하시는 포인트인듯 싶다.
그리고 그러한
너무나 숙명처럼 당연한 그러한 마음의 혼돈에도 불구하고
의인은 악인과는 달리 '불리어가'는
전혀 다른 운명을 가졌다는 점도 ... ^^* (위안이다. )
그렇다면
세상의 관심, 세상을 조절하고 콘트롤하려는
자아 충만의 추구를 아직도 붙들고 있다면
'죽을 지라도 ' '당할지라도'가
속상함과 외로움의 증폭을 의미하는 단어가 될 것이나
하나님 앞에 더 집중되는 쪽으로
이제 이후의 삶의 관점이 더 뚜렷해지면
설령 그들이 (세상의 그들.. )이 설령 그럴지라도 라는
' 깨달음'의 지경으로 가게 되는 것 아닐까?
2.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보라.
세상의 당연한 인심, 인지상정의 매몰참에도 불구하고
'의인'은 '평안'에 들어가고
편히 쉴.. .자연스러움 , 달관, 평강에서 쉬리라지 않으시는가?
그렇다 .
정말 바라기는
세상에 온 시선을 맞추고
그들의 평판과 반응에 일희 일비하며
매사 가슴조이며 살아오다가
드디어 떠날때가 되어가며
그들의 관심을 부여 잡고 놓치 않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의 관심에 맞추어 스스로 평가하는 것은
정말로 미련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말을 이리 쉽게 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내려 놓을 수 없었던
그러한 본질적 외로움과 두려움에 대하여
오늘 묵상하게 하시는 것이다.
의인.
진정한 의인.
진실한 의인은
하나님 앞에 모든 평판과 관심을 맡기고
그들이 그러하더라도
그들이 전혀 내 바램에 합당치 않음을 당연히 받아 드리고
주님 만이 아심으로 충분함을 깨닫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이제 곧 부르실 그날에
다 내려놓고 손들고 할렐루야 소천할 수 있어야 할것이다.
감사하다.
주님.
외로움, 서러움, 속상함.............
노년에 마주할 수 있는
인생의 모든 어이없는 흔들림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십니다.
주여.
서러우려 했으며
가끔은 슬프려고도
불현듯 속상한 마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옥죄임에 대하여
좌절도 하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내려 놓습니다.
어떤 일을 당할지라도
머리 속 생각에 어떤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죽을 지라도
주님 부르시면 불리어 가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부르신 그대로 잠들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내려 놓고 받아 들여야 할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주여주신 말씀..
쉽지는 않지만받아 들이고
가슴에 녹일수 있길 원합니다.
남들의 부요함, 내 기대함의 풍성함과는 다른
조용함과 고요함도
주님이 주신 기쁜 계획 안에 있음을
인식하고 사는 매일 되길 원합니다.
주여.
홀로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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