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화평을 위한 불[눅12:49-59] 본문
49.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불'
뜨겁다.
아프고 힘들다.
주변을 태우고 자신을 태우는 위험한 것이다 .
불이라 함은 '화', 분노, .. 51절의 '분쟁'을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은 모든 걸 태워서 없애니
어쩌면 태워지는 게
분쟁의 대상이
썩어가는 것, 불필요한 것, 도저히 손댈 수 없이 회복불가능한 것들이라면
꼭 '불'의 의미가
나쁘지만은 않다.
50.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불현듯,
이해가 힘든 말씀을 삽입하신 느낌이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
더 깨끗해져야 하고
더 온전해야 하는 데
'그것이 이루어지기 까지'
'답답함'이 말도 하기 힘들다. .. 심.
자꾸만 깊은 부분이 건드려진다.
자다가 꿈을 생생하게 꾸고 일어나는데
그동안 깊이 묻어 두었던
과거의 것들 이다.
51.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이
가끔은 이율 배반적인 말씀을 하신다.
화평.
분쟁.
분쟁은 불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불은 위의 기술처럼 안좋은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 .
하지만... 한편으로
고난과 고통을 통해
완전한 새로움... 기름진 땅을 가져올 수 있다 .
불가피한 도전,
주님 나라를 방해하는 그 어떤 것을 위하여서는
'분쟁'을 통한
진정한 '화평'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
50절의 '받을 세례'.. .온전함을 위한 마지막 과정이 아니겠는가?
괜한 의분... 이라는 이름으로
'분노'를 잘 내는 자.. (나 ^^;;) 들이 있다 .
그런 그들에게 '화' '분노' '불'은 익숙하지만 위험함을 알기도한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빠지는 것 싫어한다. ^^;
이율배반적으로..
그러한 그들,
나에게
주님은 불, 분쟁, 의분에 대하여 오늘 묵상하게 하신다.
진정한 옳음..
완전한 세례를 위하여 남은 고난.
불같이 위험한 '분쟁'이 필요한 때.
그를 말씀하신다.
57.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진정 '옳은 것'을 위하여
'불'을 뿜는 것이
옳을 때가 있음이다.
불 , 분쟁을 무조건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옳은 것'이 옳은 것임을 온전히 안다면
그것은 갈등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화평'을 위함이다.
그리고,
그 판단.
그 판단의 기준은
'옳은 것'이다 .
'옳은 것'은 당연히도 '하나님 나라'를 위함이다.
'자아'의 가면이 아니고
진정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다.
그게 ..
반드시 남들 앞에서
위대한 명분.. 하나님 나라를 온 세계에... 등의 이름으로
남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일 필요는 없다.
내 안의
하나님 나라에 반하는 성품들..
그게
때론 '가족애' , 무조건 조용함.........을 반하는 때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 어떤 일도.......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으면
(때로는 구분 힘들 때도 있다. ... 그러기에 이 말씀을 주시기 까지 주님은 많은 인내로 날 참으셨으리라.. ^^*)
'불'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진정한 '화평'을 위하여..말이다.
주님.
아직은 혼돈스럽습니다 .
어디까지 인내하고 어디까지 참을 지요.
전.. 너무 익숙한 '불'의 세계 ^^;;에 살아왓던 바.. .
그 위험과
그 후의 혼돈을 잘 알기에
가능하면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하고
가능하면 그런 때 무조건 참기를 결단하곤 합니다.
비록 순간.. 무너져
또 주님 앞에 너무 죄송스럽고 스스로 당혹스러우며...
그래서 그 자체가
제게는 큰 족쇄 이기도 합니다.
주님..
주님은 그 '불'의 고통을 아시기에
오늘 저를 읽어 주시는 듯합니다.
밤에 자다가 불현듯
너무도 생생한 꿈에 놀라 깨어 일어나길
며칠 한 것을 잘 아시고
그 안의 제 당혹스러움을
이리 읽어 주시는 듯합니다.
그래 주하인아
그 불을 직면하거라.
그리고 진정 옮음을 위하여
화평을 위하여
불 같이 마주해야 할 필요도 있다. .. 심 같이 들립니다.
주여.
정확히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나머지의 세례를 위하여
이 온전함을 이루기 위하여
마주할 ..
스스로 흔들리지 않고
타인에게도 왜곡된 어려움을 주지 않는
옳은 분노의 방향을 알게 되길 원합니다.
주여.
오직 주의 나라에 반하는 것만 분노하길 원합니다.
주여.
그리고 그 방향과 방법에 대하여
조금은 더 지혜롭고 규격 잡힌 옳은 방향이 되길 원합니다.
허락받은 불이라고 마음대로 뿜어내는
그 자아의 횡포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소서.
주님 말씀 따라 살길 원하지만
진정 '화평'의 삶을 살길 원하지만
제 안에 왜곡된 깊은 부분을
주여
맞이 하여 싸우길 원합니다.
예수님.. 도우소서.
십자가 보혈로 씻으시고
성령으로 도우사
옳은 방향의 '분쟁'만 하게 하소서.
가능하면 제 내적 싸움에서만 그리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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