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의로워도 될 이유[잠24:1-22] 본문
난 의롭다
주님의 빛이
날 매일 비추시고
난 매일
말씀을 붙들기에
그러하다
이제 내 삶은
더욱 자유롭고
더욱 힘있어 지리라
그게 내가
의로웁다 믿어도 될
그런 이유다
16.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의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인정받고
매일 성령으로 새로워지는 자들.
그래서 스스로 의로움을 인정하기 시작한 자들.
그게 타인을 위한 함부로 해도 된다는 도장이 아님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자들.
또, 삶이 예수님의 향기로 채워지는 자들.
그런 자들에게는 넘어져도
매일 '부활'이 있다 .
잘못은 있을 지언정
그거로 넘어져도 다시 굳건히 새로워질 수 잇는 자들.
온전히 죄없는 자라기보다
점점 그리되어 가는 자들.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하는 순간
그러한 자격이 주어졌고
그러함은 매일 예수님을 인식하고
그 분의 말씀을 통해 오시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게 되어
그로 인하여 점차 삶이 힘이 있어지는 자들이다.
악한 자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똑같이 넘어져도
넘어질수록 그 아픔은 크다 .
의지하던 세상 것이 너무 컸으므로
부러짐으로 인한 아픔과 그 상실감은 더욱 더 크리라.
그리고 그들은 본질적으로
생명과는 거리가 멀다.
인생의 누구나 그렇듯,
태어나는 순간 죽어간다.
그러니 '세상의 이룸'으로 버텨가는
보통의 그들은
아니,보통보다 더 세상을 의지하던 그들은
훨씬 더 아프고 좌절이 클 수 밖에 없다.
소위 세상의 눈이라는, 객관적 관점으로 볼 때
악인이라 오늘 이름 붙힌
잘나가는 성공하는 자들은
안 아팠겠지만 한번 넘어지면 일어날 당위성이
난 할 수 잇어...라는 소위 자기 최면이 아니고는
더 이상의 비전이 없다.
그러나, 의인으로 표현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옳은 우리들은
넘어질 수록 새로와 진다.
늘 '소망'이고
늘 '선한 것'이다.
그게 우리가 의로울 이유기도 하다.
17.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네 원수'
원수가 꼭 만화의 주인공 같은
철전지 원수가 원술까?
괴롭고 속상할 때 나와 다른 형통을 누리는
더구나 좁은 길을 걷는 우리와 다른 행로를 누리는
세상에 열심인 자들이 '원수'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진 않을까?
그거.. 우리 안의 질투나
무지한 신앙의 어림으로 인한 속상함.. 말이다.
그래서 그가 엎드러질 때 기뻐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은
비단 '질투의 폭팔'이라는
어두운 죄의 결과물이란 것을 떠나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함이니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가?
사촌이 땅사는 것도 배가 아픈게 인간 본성의 원죄적 현상이다.
믿는 자인 나라고 안 그럴까?
누르고 자제해서 그렇지
고소하지 않을까?
더구나 내 어려울 때 .. 말이다.
그를 통하여 위로 받고 싶은 상대적 보상심리는 아닐까?
18.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하지만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않으신다신다.
나.
의로운 자.
의로운 자임을 느끼고 확신해가는 연습단계.
그것을 훈련시키는 매일의 연단단계.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가 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이리 설명하신다.
그것은 '죄'니
그러지 말라..
19.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악한 자를 분노하지 말라.
그들이 잘나가도 질투하지 말라.
20.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그들은 장래가 없다.
위에 말하지 아니하였던가?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하는
잠시의 허울일 뿐이다.
결국, 그들의 불은 꺼지나
너는 다르다.
너는 매일 부활이다. '
그렇다.
의로워도 될 이유다 .
의로운 자의 소망이다.
어째도 난 선하다.
내 결국은 승리다.
난 매일 새로워진다.
'보라 이전것은 갔으니 새로운 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십자가 앞에
성령으로 인하여
말씀을 흐르는 성령의 인도로 인하여
매일 매시 다시 주님의 새로움으로 새로 부활하는 우리는
생명력이 넘치는 자들이다.
그러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정결화 되어 가는 영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가게 된다.
거기에서 다시 부활된 몸으로 영생을 사는 것.
그게 우리의 운명이니
이 땅을 부러워 하거나 두려워 하고
속상해 할 이유가 없다 .
난.. 의로운 자다.
그러니 난 매일 새롭다.
주님.
주님의 부활의 원리가 이리 삶 마져 자유롭게 합니다.
넘어져도 다시 매일 일어나 새로워질 자격을 갖추었고
그게 일상에서 적용되니
어찌 내 삶이 희망이 넘치지 아니하오리까?
이제
어려움에
두려움에
어두움에 고정되어 답답하던 삶의 행태가
새로움에
매일 달라짐에
더욱 발전함에 집중되어
고난이 와도
그를 통하여 더욱 발전할 기회가 되는
말 그대로의 생명의 현상으로
내 삶의 행태가 변함을
스스로 느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주여.
이 생명의 원리.
이 의로운 자의 기쁨,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되는 이 부활의 원리를
세상 모든 자들이 같이 깨닫게 하사
주님 안에 몰려드는 역사들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이 땅에
어두움, 더러움, 썩은 것들로 가득참을 봅니다.
마구 마구 발전하는 물질의 것들에 반하여
더욱 마구 마구 따라 붙는 오염들을 봅니다.
메르스도 그렇고
에볼라도 그렇고
곧 대규모로 있을 동성애 축제 (06.28) 도 봅니다.
기후의 변화,
화산의 폭팔
가뭄
폭풍... 지진...
나라간의 다툼,
경쟁의 악화
세대간의 갈등,
노후의 두려움,
.............
셀수 없이 많은
인생의 넘어지면 일어날 수 없을 도전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 계시록적 시대의 암울함에
영화도 전부 '종말'을 암시하는 내용만 나옵니다.
그들은 모르지만
그들의 영혼은 알기에 그렇습니다.
황홀한 세상이지만
넘어지고 스러지면 더 이상 일어날 희망이 없을 것을
그들의 불신 영혼들이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믿는 우리,
의로운 자들을 향해 더욱 강한 압박과 유혹으로 자극합니다.
이제 저희가 해야할 일들이 더욱 뚜렷합니다.
주님의 의로움 앞에
우리는 의인 임을 깨닫고
더욱 의로운 자격을 유지를 위하여
마음을 집중하고 살아야 할 듯 싶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의로운 자로 주신 생명의 현상을 기뻐해야 겠습니다.
허탄한 세상 것에 대하여 질투를 내려 놓게 해주세요.
지혜를 주십시오
주여.
이렇듯 알고 마음 먹어도
세상의 일에 파묻히면
저도 모르게 질투와 허무한 속상함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려 할 때가 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빨리 털어버리고
주님의 기쁨이 절 더욱 잔잔하게 채워가지만
아직도 그럴 수 있사오니
주여
더욱 강건한 의로움의 의식으로 절 채우소서.
그것으로 교만하여질 이유가 없음도
더욱 지혜로 채워주시고
더욱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채우시사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제가 되도록 하소서.
제게서 생명의 말을 전해 듣는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
동일한 선함과 의로움의 씨가 발아되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 자녀로 거듭나는 그런 도구가
제가 되게 하소서.
지금도 그리하시지만
더욱 그리하소서.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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