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진정 가난한 자[잠22:1-16] 본문
이 가녀린 풀꽃은
홀로 있어도
그리 추해 보이지 않는다
저 분홍의 몸태는
강렬하진 않지만
그리 약해 보이지도 않는다
부하고 가난함
그 모든 것이
내 영혼 속에서
결정되어 나온다
하나님이
날 보고 계시고
난 매일
그 분을 뵙는데
내 어찌 가난하고
내 어찌 슬프랴
난
가난하고 여린 자가 아니다
진정 부요한 자다
그게 나다
2.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난 가난한 자인가?
부자이던가?
만일 내가 누구, 부하다고 생각하는 자를
질투하거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내 없음이 억울하거나 하면
그게 바로 '진짜 가난함'일 것이다.
가난과 부는
가지고 못가지고의 차이라기보다는
가진 자를 질투하고
그렇지 못한 자신을 속상해 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만든 부모님들을 원망하면
그게 진짜 가난인 듯하다 .
그런데
가난한자와 부한자가
함께 산다고 하신다.
그것을 지으신 이가 여호와라신다.
그거.
받아 들이기 힘들 겠지만
부한 것도
그렇지 못하여 가난한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란 것이다 .
함께 산다는 것.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당연한 원리 아닌가?
그것을 원망하며 속상해 하는 것,
질투하고 열등감 느끼는 것.
그러면서 삶을 좀먹는 것.
그게 병이 아닐런가?
반드시 그 가난과 부가 물질에만 있을까?
매사에 모든 일에 다
그런 많음과 적음은 존재하지 않는가?
지식,
지혜.
자식들의 그러함.
명예..
모두 다 똑같다는 것은 가능할 이야길 건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받아들임' 아닐까?
그것의 근본 이유가
하나님이 그러시도록 하셨기에
그 분 하나님은 무조건 '선'한 이유가 잇으시기에 그렇다는 것 말이다.
이 나이가 되니
조금씩 이해가 간다.
내 부족했음이
꼭 부족함이 아니었다는 것 말이다.
눈이 조금씩 펴지면서
덜 흔들린다.
다행이다.
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마땅히 행할 길'
이거.
당연히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 지혜의 근본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일상에서 넘 뜬구름 잡는 것 같아서
어제 퇴근 후 자전거 타고 충주댐이 내려다 보이는
휴식터에서
KBS FM 에서 나오는 멘트를 들은 것이 생각나서 적어본다.
내용인 즉슨
'원칙'을 알면 삶이 힘이 있어진다는 것이다.
혼란이 있을 때
나름의 원칙이 있으면
에너지를 덜 사용하고도 빠져나갈 수 있다.
잘 정리된 도서관에서
책을 찾기가 쉬운 것 처럼..
하나님이 하시라는 대로 살면
그 삶은 반드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밤새 꿈을 꾸었다.
졸업 시험이 오늘 시작인데
준비를 하나도 안한 것이다.
의대 시절인 듯했다.
아주 익숙한 당황함..
늘 궁지에 몰려야 시험을 준비를 했다.
당일치기.. .ㅎ
그 어려운 과목들도 심지어는 시험장에 들어가서
앞 친구들이 열심히 적어 외우는 소리를 들어가며
초절정의 집중력을 발휘하던
그 시절들...
그러면서 다행이도 시험은 잘 통과해나오긴 했지만...
그때의 초조함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꿈속에서 고스란히 다시 밀려오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덜컹한다.
그런데 그 과목이 '대학 수학'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외워서 되지 않는 과목이라서 그런가?
어쨋든 너무 심한 당황을 하며
식은 땀 흘리기 직전 깨어났다.
그리고는 가만히 생각했다.
이런 '선명한 꿈'은
내 인생에 몇 되지 않는 경험이었다.
영적인 꿈.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란 생각.
그게 내 머리를 때렸다 .
다 밝히진 못하지만
이리 저리 재고 당기는
머리 복잡한 일이 있다 .
분명코 상대의 잘못이긴 하지만
노회한 분을 상대로 하기에
잘못하면 큰 손해를 입을 뻔 했던....
하지만 금방 내 마음은 자리를 잡았고
이리저리 내 머리속은 분주히 움직이며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정확히 분리해 대처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의 '패'가 패색이 짖어짐을 느끼게 되는 상황.
그런데 그게 내게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하나하나 더 늘어갔다.
당연히도 하나님의 말씀.
말씀을 보면 늘 용서하라, 이해하라.. .일거 아닌가?
그럼에도 난 하루하루 조금씩 자꾸만 말씀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내 자아가 더 튀어나옴을 느끼어갔다.
회개 하지만
그러고 나면 또 또 또..
주위 선배님들이 와서 조언을 하신다.
'용서해주라.'
그래야지요.
그러나 그러면 저런 행동들이 .. .?
...
밤에 꿈은 그런 내용이신 듯하다.
말씀도 그렇다 .
억울하다.
분명코 억울한 일이 맞다.
하지만, 용서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이제는 마지막 기회일 듯싶다.
시험공부 , 당일치기라도 통과하라..시는 듯 했다.
두말없이 아침에 메시지를 띄웠고
그 분을 만나 '대화'를 했다 .
듣고 보니 도저히 이핼할수 없을 듯했던
그분의 말씀도 일견 이해가 간다.
하나님은 나에게
조금은 이전보다 합리적이고
덜 당황하는 내가 될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 그러할 수록
내 자아는 더 강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는 멀어지는 것을
경고하는 듯하셧다.
그래서 꿈으로 보이셨고
억울함은
하나님 안에서 '얼른 '풀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얼른 마지막 끈을 잡았고
다행이도 현명하게 해결지었다 .
다행이다.
주님은 내게 확연히 보게 하셨다.
내가 더 잘난 성공을 왜 젊었을 때 하지 못했던가?
나는 나름 조건들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생시키신 이유,
즉, 내가 가난하지 않음에도
늘 결핍의 느낌...
즉 가난한 자의 마음으로 살았던가.. 하는 것이다.
모두 주었으면
지금 같은 깨달음이나
영적 고요함은
아예 생각지 못했을 것이고
더 가진 자들에 대한
더 많고 큰 좌절과 억울함과 상대적 빈곤감으로
내 가슴이 터졌을 것이고
하나님을 깊이 영접할 조건이 되지 못할
교만한 자이기 때문이었다.
감사하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음이
부요하지만 부자의 교만함이 내게 들지 못하게 하심이 말이다.
그리고 , 무엇보다
매일 말씀으로 붙드시고
끝까지 나를 기다리시고
때되어 안되실 거 같으면
이렇게 손을 붙잡으셔서
날 보호하는
공평하신 하나님이 계셔서 말이다.
주님.
놀라우신 내 주님.
잠언에서도
그간 하나님이 쓰시게 하셨던 경험으로 미루어
이처럼 글이 나올 줄은 알고는 있었지만
이 버겁고 속상한 때에
이 딱딱한 교훈 덩어리 잠언에서
깨달음 들이 깊을 줄은
잘 기대하지 않었던 것이 사실이나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뜻대로 모든 것 하심을
다시한번 깨닫고 있으며
그 하나님이 또다시 절 붙들어 인도하시는
세밀한 음성을 들으니
감동입니다.
주여.
다시한번 주님께 간절히 소원할 것은
더 깊이 주님의 뜻대로
이제는 십자가 지는 마음으로
자아가 부인되어도 참을 수 있는
인내로 절 붙드소서.
기도로 여기까지 왔사오니
기도로 부탁드립니다.
주여.
더욱 성숙하게 하시고
느리지만 성화되어가는 길목에 있사오니 주여..
인도하소서.
주위가 시끄럽습니다.
메르스까지
세상은 온통 걱정이 몰려서
다른 걱정을 누르고 잊게 합니다.
이럴 때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바라볼
원칙을
제 자식들에게 가르치려 노력했사오니
그게 살아서 저들에게 운용되게 하소서.,
절 변케 하신 하나님
제 아들들에게도
그들의 하나님으로 역사하소서.
큰 아들.. 아시지요?
둘째도 .. .아시지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역사를 그들 인생에서 베푸시고
늘 동행하소서.
이 부족한 아버지가
보여주지 못했던 아버지와 사회인으로서의 태도를 가르치시고
몸부림치는 신앙인 주하인의
이 옳은 몸부림을
그 아이들이 영혼으로 받아 들이게 하소서.
그래서 그들의 인생이
제가 그랬던
가짜 열등감과 거짓 억울함의 수렁에서
얼른 얼른 피해가게 하소서.
주님의 임재와
주님의 열정 안에서
늘 감동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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