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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하여[잠24:23-34] 본문

구약 QT

나를 위하여[잠24:23-34]

주하인 2015. 6. 16. 09:08

어떻게 보니

적은 저 꽃술에

햇빛이 걸린 듯하다

 

일상의 삶을 운용해감

그 하루의 사소로움

 

어찌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저 꽃 같은 존재가

바로 나일 지 모르나

 

그가

꽃잎으로

햇살을 붙든 것처럼

나도

내 삶에서

어찌하여야

빛을 머금을 수 있을까

 

오직 예수

그 분 말씀대로

주 안에서

내 일에

최선을 다한 하루

 

그것이 어쩌면

진정 나를 위하여

내 집을 세우는

일이 될 듯 하구나

 

 


27.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

'내 일'

무슨 일이든 내 일.

삶이 영성이 되면

그거를 통해서 '연단'을 이루어 내게 됨이

확실히 인식이 되고

매일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제사' 가 되게 사는

온전한 일이 되리라.

 

그를 위해서

'밖에서 다스리는' 게 필요하다 .

밖에서 다스린다.

일이 곧 예배가 되고

예배가 곧 생활이 되는

일상의 영성을 이야기 한다.

 

이제는 뜬구름 잡는 말의 유희가 아님을

난 십여년 가까이 체험하여

내 영혼에 깊숙이 받아 들이고 있다.

 

 나.

사는 것이 곧 하나님 앞에 가는

연단의 과정이고

그러기에 매일매시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삶에 그 분의 뜻을 적용 시키어 가려는 노력을 하는

매일을 산다.

(비록 성공률이 10%나 될까 하는

 아주 부족한 나이지만.. .^^;; )

 

 어쨋든 그러기에 

내게는 하루 하루가 의미가 된다.

눈에 뜨이는 '세상의 업적'은 없지만

내 삶은 의미로 가득찬다.

 

늘 그러함이

내 의식을 차지하면

진정 좋겠다.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라'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러함을

말씀을 통하여 잊지 않도록

다시 환기시키시는 듯하다.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

 

'나를 위하여'

그렇다.

아직은 우리는 '나를 위함'이

우리의 존재와 하는 모든 일의 이유가 되고 있다 .

아무리 '테레사'나 무슨 '신부'의 남을 위한 일이

대단한 것 같아

그들을 '신앙 시 '까지 하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의 가장 윗 단계는

' 자아의 완성' ,

결국 자기 만족이다 .

가장 겸손하려 함은 가장 교만함과 통한다고 그랬다.

 

인간.

인간 모든 행동의 동기는 '날 위하여'다.

 

오직 유사이래 '예수 그리스도'만 빼고

모두 그 움직임의 배경이 자신을 위함이다.

아닌가?

자신이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기분 좋게 움직일 수 있는가?

자신이 없어지는 것은 빈 깡통이다 .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궁극의 목적이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온전한 제자화 되어

모든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온전한 영혼'을 지니길 바라시었다.

 

 그러한데

이런 벗어날 수 없는 '나를 위하여' 사는 인간 본성의 욕구와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가르치심, 성경의 말씀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잇는가?

 

 그것은

말씀이신 하나님의 매일 하시는 말씀이

내 일상의 지표가 되고

그렇게 하다가 일상의 영성을 통하여

하나님 원하시는 내 영적 수준에 자연스레이 올라감이 목표가 되면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영적인 만족감을 아주아주 크게 줌을 알게 되는 것,

그게 '영적 샬롬' , 즉 평강의 의미임을 알아

그것 이외 그 어떤 기쁨도

그들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 진정한'

'나를 위하는 것'이 됨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밭에서 준비'하라신다.

그게 '나를 위하는' 길이라 하신다.

 

 오늘 내 밭.

이  CJ  병원에서 경작하여야 할

나를 위한 일은 무엇이던가?

 

무엇이던

나를 마주해 오는 일,

사람들과의 상관관계

내적인 요동.............등

그를 마주할 때

내 본능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더 '그들을 위하여'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져진 생각을 하고

나은 모습을 유지하려는 것,

비록 그것이 내 본성에 '위선'으로 느껴질 속 간지러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밭을 가는 것'이라 하셨으니

더 착해질 이유가 생긴것.

그것이

오늘 '나를 위하여 '밭을 가는

'내 밖'에서의 '내 일'이다.

 

 

'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

그 후에 라 셨다.

 

내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다.

우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 안에서 타인이 먼저 좋아하는 대로.. 다.

그게 '나 자신을 위하는 길'임을

내 영혼이 깊이 깨달아

매사에 매 생각과 매 행동이

너무 자연스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먼저 하는 것이

'나를 위하여 ' 진정으로 하게 되는

그래서 진정 행복하고 진정 기쁜 일임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그 후에

내 '바램'

내 하고 싶은 것을 본격적으로

노력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 후에 내 집도 세우자.

 

어찌보면 '그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리라'시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듯하기도 하다.

모든 말씀이 말씀 한마디로

이 인생들에게 다 이루어지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만..

주하인의 변천사를 보아도

십여년 트레이닝 한 후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제 눈이 트여

겨우 산등성이에 걸터 앉아 흐르는 땀 식혀가며

뒤돌아 보니

돌아오는 길이 지름길도 있었고

그때 들었던 그 말씀이 그말씀인 것 같음을 이해하게 되는

여유가 생기는 것과 유사하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능선 가에 땀 식히고 있는 내게

이렇게 '지도'를 하고 계신다.

다정히 말이시다. ^^*

 

주님.

주하인.

자꾸만 잊고

자꾸도 되풀이 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죄성을 보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우셨고

얼마나 지루하셨습니까?

비만이라서 땀을 너무 흘리며 한발자국 씩 옮기기도 힘든

영적 비만같은 저를

말씀을 통하여 매일 매일 인내하시며

한참을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다시 말씀을 걸어 오십니다.

주하인아..

네일을 밖에서 열정을 다해서 마무리 해라.

네 관심은 어쩌면 네 집... 네 안에만 있을 지 모르지만

너를 위하여

네 밭을 더욱 기경하라.

그리하고 나서

네 집을 다스리고

네 것을 생각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다 이루리라... 시는 듯합니다.

제 땀을 닦으시며

제게 갈증을 해소시킬 생명의 물을 건네시며 말씀입니다.

 

주여.

이 부족한 자.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차분하고 기쁩니다.

말씀을 붇드는 동안도

밀려오는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이 느껴집니다.

 

 주여.

오늘 하루

마주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더욱 인내하고

그들을 더욱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제 자아를 먼저

주님의 성령으로 붙드시고 누르소서.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만족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을 위함이

진정한 제 자아를 만족시키는 일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명령대로 타인을 먼저 생각함이

제 기쁨이 되게 하소서.

 

주여.

온전한 기경.

온전한 밭을 갊

온전한 나를 세움.

 전혀 다르지 않음을 제가 알게 하소서.

알지만 더 깊이 적용하는 삶이 되어가게 하소서.

내 주여.

 

미운자 .

싫은 자

버거운 자 .. 없게 하소서.

모든 거.. 다 과거의 잘못된 반영임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성령으로 그리하시고

예수 흘리신 보혈로 씻으소서.

우리 주여.

 

매일 부활하는 자,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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