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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위에 은혜(요1:14-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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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위에 은혜(요1:14-28)

주하인 2006. 1. 2. 10:42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 성경말씀 ,로고스, 하나님, 예수님.. 다 동일한 의미이시다.

여기서 말씀은 예수님이 영으로 계신 상태를 의미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은 '성육신'하셨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의미는 하늘에 계셨던 그 분이 인간으로 변하셔서 지구상에 내려오셨다는 의미이다.

 

우리가운데 거하신다는 의미는 특별히 우리의 모든 고민, 갈등, 욕심, 일상....   인간들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경험하시고 같이 누리고 계신다는 의미다.

 

 

 산부인과의사로서  임신과 출산 전 과정을 다 알고 있다.

 

과연 우리 주님께서 이 과정을 슬쩍 신통력을 발휘해서 건너뛰고 세상에 뿅하고 태어 나셨을까?

 

십자가를 몸소 견디신 그 분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  태아시기를 그 분은 건느셨다.

 

 10개월의 뱃속의 갖힌 생활 중 겪을 꽁꽁 묶이는 체험은 아마도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갖혔을 때 그가 가사상태로 묶여 있었을 당시에 상기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 때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또한 태어날 때의 태아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다.

아기는 산도라는 그 좁은 공간을 8-9cm 정도 시간당 1cm의 속도로 내려올 때 두개골이 약 0.5cm 정도 서로 접히는 지독한 체험을 한다.

이때 온몸의 뼈란 뼈는 오그라져서 그 좁은 동굴에 맞춰진다.

 이뿐인가?

위에서 자궁은 약 0.5톤의 압력으로 내리 누른다.

 이 압력은 용달차 하나가 순간적으로 밟고 지나가는 압력이다.

 

이 시간을 보통 초산부는 12시간 정도 경험한다.

특별히 '마리아'께서는 성경험이 전혀 없는 성처녀 이셨기에 아마도 보통의 초산부의 산도보다 훨씬 더 좁은 길을 내려와야 했을 것이다.

 

 

 예수님 그 분은 이런 모든 과정을 몸소 받으셨을 것이다.

 

신께서 의식이 없으리란 것은 짐작하기 힘들다.

 

그리고..

 

신생아 시기 1년간은 거의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말도 못한다.

오직 할 수 있는 소리라야 '응애' 밖에 더 있을 까?

엉덩이는 자주 똥을 놓치고

오줌을 놓쳐서 축축하고 냄새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옛날이 지금과 같이 신생아에 좋은 환경일까?

 

하기X...등의 좋은 기저귀도 없었을 것이고

엉덩이를 뽀송하게 만드는 분도 없었을 것이다.

 

기저귀를 할 말한 부드런 천 재료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유아기를 몸소 체험 하셨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의미는 신으로서 난자가 '정자'의 도움 없이 오직 말씀이신 예수님이 직접 자극을 함으로써 난자에 들어가셔....세포분열을 유도하심으로 배아 상태와 태아 상태 , 출생을 거쳐 신생아 시기 유아기 그리고 30년의 청년기를 통하여 '우리 인생의 모두를 경험하신 우리 인간의 모든 중심을 다 아시는 그러하신 체험을 가지신 온전한 인간체험 하신 후에'라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 십자가 사건은 '하루의 엄청난 고통'이시지만 신으로서 인간의 육체를 쓰시고 인간의 모든 삶을 체험하신 30년도 또한 어마어마한 고통이셨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한 체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글로 표현이 된 것이고 그러한 말씀 한 구절로 그 분의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 녹아져 있음을 볼때 감동의 전율을 금할 길이 없다.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그 분은 인간으로 변하여 이 모든 고통을 그냥 받으실 수 있겠는가?

그 분은 인간의 상태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걸 감내하실 수가 있음을 몸소 실천하여 보이신 것이다.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태아 상태로 부터 30년 공생애를 마치신 후 '어마어마한 은혜의 충만'의 상태로 세상에 나서셨다.

 

이 표현이 '그의 충만한데서'라는 표현에 나와 있다.

 

 이처럼 몸소 겪으시고 몸소 은혜의 시범을 보이시고 세상에 당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지실 때는 '꽉찬 은혜'로 세상에 나오신 것이시다.

 건드리기만 해도 , 아니 옷을 스치기만 해도 그 은혜는 마구 세상에 펼쳐질 정도로서, 마치 물잔에 잘름잘름 물이 넘치기 직전의 상태같이 은혜 충만하신 상태 이셨을 것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던 여자가 '귀신 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여자의 '부스러기'사건 아닌가?

 

 '은혜 위에 은혜러라'에 이러한 주님의 충만한 은혜를 잘 표현하고 있다.

 

 

 "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 받는 자드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2:18)"

 

 

 

주님은 새해를 맞이하여

희망적인 모습을 주신다.

 

 

주님 예수님은 모든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여 인간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가지시고 또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생기는 넘치기 직전의 , 폭팔할 듯한 '성령충만'한 은혜를 지니시고 세상에 나오신 것이다.

 

 2006년은 우리 중에 계시는 그분,

 은혜 짱 그분,

사랑의 그분을 새로 인식하고 가슴에 담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힘내자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한해입니다.

늘 그러셨지만..

또 주님은 상기 시켜 주십니다.

 

우린 혼자가 아니다.

 

넘치는 성령충만의 예수님이 바로 내 곁에 계시다...라고..

 

 

힘냅니다.

감사합니다.

 

늘 동행하시는 주님.

늘 위안하시는 주님.

예수님께 감사하며 기도올립니다.

 

아멘

 

 

 

 

 

 

 

 


 
  
 
 
  평생 복음을 크게 외치는 삶을 살라
.

- 샤를르 드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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